"사표 써" 7번 반복, 해고 아니다?…대법은 그날 오전 주목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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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동 대법원. 뉴스1

서울 서초동 대법원. 뉴스1

“저기 가, 사표 쓰고.”

“사표 쓰고, 퇴근하고, 통장 계좌번호 넣어주고 가요.”

직장 상사가 이렇게 말했다면 해고된 것일까, 아닐까.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사표 쓰고 가라”는 관리자의 발언을 “해고가 아니다”라고 판단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대전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9일 밝혔다.

“사표 쓰라” 말 7번…해고로 알고 출근 안 해

운전기사 A씨는 2020년 1월 직원 7명 규모의 전세버스 회사에 입사했다. 출퇴근 전세버스 운전을 맡았던 A씨는 그달 30일 한 차례 무단으로 운행을 하지 않았고, 다음 달 11일에도 버스 운행을 한 차례 더 누락했다.

그날 오후 관리팀장은 A씨를 사무실로 불렀고 언쟁이 벌어졌다. 팀장은 “저기 가, 사표 쓰고”, “사표 쓰고, 퇴근하고, 통장 계좌번호 넣어주고 가요”라고 말했다. A씨가 “해고시키는거요 지금?”이라고 되묻자 “응, 그만두라니까, 사표 쓰고 가라니까. 왜 해고 해, 사표 쓰고 가요. 당신은 회사에 도움은 안 주고 피해를 줬기 때문에”라고 말하는 등 “사표 쓰라”는 말을 총 일곱 번 반복했다.

A씨는 이튿날부터 출근하지 않았고, 그해 5월 1일 전남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했다. 그러나 지방노동위원회는 “‘해고’가 존재하지 않는다”며  A씨의 신청을 기각했다. 재심을 신청해 간 중앙노동위원회도 같은 결정을 내렸다.

A씨는 이후 대전지법에 중앙노동위원회의 결정을 취소해 달라는 소송을 냈지만 패소했다. 2심도 마찬가지였다.

‘해고’ 인정 안 돼 ‘부당해고’ 못 다퉜다

노동위원회 판단은 A씨가 해고된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회사 측은 “근무태도를 질책하며 출근하지 말라고 했지만, ‘성실히 근무해달라’는 뜻이었고, 해고의 의미가 아니었다”며 “서면으로 해고 의사를 표시하거나 대표이사가 승낙한 적이 없다”고 A씨에게 통보했다.

1심 재판부도 이 주장을 받아들였다. “‘사표를 쓰라’는 표현은 무례한 언행에 대해 화를 내는 과정에서 쓴 우발적 표현”이라며 “사직서 제출을 종용하는 것일 뿐 근로계약관계를 끝내겠다는 것이 아니다”라고 판결했다. 관리팀장에게 해고 권한이 없고, A씨가 언쟁 후에 사표를 실제로 쓰지도 않는 등 분명히 의사표시를 한 적이 없다는 점도 언급했다.

대법 “상무 대동해 버스 키 회수…‘사표 쓰라’는 해고 맞다”

사건은 다시 대전고법으로 돌아가게 됐다. 중앙포토

사건은 다시 대전고법으로 돌아가게 됐다. 중앙포토

그러나 대법원은 “사표 쓰라” 발언 이전의 사정을 짚으며 “회사 측의 일방적 근로관계 종료 의사 표시가 맞는다”고 판단했다. A씨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2월 11일 오후에 언쟁이 벌어지기 전인 그날 오전, 관리팀장과 관리상무가 함께 A씨를 찾아가 “버스 키를 반납하라”고 한 뒤 직접 키를 회수해 갔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이에 대해 “근로자의 노무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의미로 평가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또 “‘사표 쓰고 나가라’는 발언을 여러 차례 반복한 것도 우발적 표현이 아니라 근로관계 종료의 의사표시”라고 해석했다.

근로기준법은 ‘서면 해고 통지’를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대법원은 “서면 통지 여부는 해고의 ‘효력’을 판단하는 기준이지, ‘해고 의사표시의 존재’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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