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박정호의 시시각각

진짜 연포탕을 먹고 싶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박정호 기자 중앙일보 수석논설위원
산낙지를 맑고 깨끗하게 끓어내는 요즘 연포탕.(왼쪽) 해장에 제격이다. 오른쪽은 두부를 닭고기 국물에 끓여 먹는 조선시대 연포탕. 다산 정약용 집안에 내려오는 음식을7대 종부 이유정씨가 재연했다. [중앙포토]

산낙지를 맑고 깨끗하게 끓어내는 요즘 연포탕.(왼쪽) 해장에 제격이다. 오른쪽은 두부를 닭고기 국물에 끓여 먹는 조선시대 연포탕. 다산 정약용 집안에 내려오는 음식을7대 종부 이유정씨가 재연했다. [중앙포토]

봄이다. 어제는 봄비 내리고 새싹 튼다는 우수(雨水)였다. 봄의 길목 입춘(立春·4일)을 지나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경칩(驚蟄·3월 6일)도 지척이다. 산도 들도 바다도 바빠지는 때다. ‘뻘밭의 산삼’ 낙지도 새 생명을 낳으러 개펄로 나올 것이다.

여야 모두 상실한 연대·포용·탕평
병든 소 살리는 낙지의 부드러움
“맛은 혀가 아니라 마음으로 느껴”

 강화도 시인 함민복은 낙지에게서 겸손함을 본다. ‘부드러움 속엔 집들이 참 많기도 하지/ 집들이 구멍이네/ (…) / 딱딱한 모시조개 구멍 옆 게 구멍 낙지 구멍/ (…) / 딱딱한 놈들도 부드러운 놈들도/ 제 몸보다 높은 곳에 집을 지은 놈 하나 없네.’(‘뻘밭’)
 병든 소도 벌떡 일으킨다는 낙지의 힘은 부드러움에서 나오는 모양이다. 그 낙지가 요즘 뉴스에 오르내린다. 국민의힘 대표 경선에서 ‘연포탕’이 등장하면서다. 김기현 후보가 ‘연포탕'(연대·포용·탕평)을 캐치프레이즈로 들고 나오면서 연포탕을 잘 끓였느니, 못 끓였느니 시비가 끊이지 않는다. 김 후보는 산낙지가 꿈틀거리는 연포탕을 기자들에게 내놓기도 했다.
 말랑말랑한 음식 하면 두부가 빠질 수 없다. 영양소가 풍부하고 소화도 잘된다. 하지만 조심하시라. ‘두부 먹다 이 빠진다’는 속담처럼 매사 성급하게 달려들면 일을 그르치기 십상이다. 낙지와 두부도 결코 함부로 대할 일이 아니다. 연포탕도 그렇다. 낙지와 두부라는 두 재료가 교묘하게 얽혀 있다. 낙지탕과 두부탕이라는 별개의 음식이 세력 다툼을 하다가 이제 ‘연포탕=낙지탕’ 공식이 굳어지게 됐다.
 연포탕은 원래 두부탕이었다. 한자 연포(軟泡)가 두부를 가리킨다. 지금도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연포탕을 찾으면 ‘두부와 닭고기 따위를 넣어 맑게 끓인 국’이라고 나온다. 조선시대 두부는 귀한 식재료였다. 주로 사찰에서 만들어 공급했다. 기름에 지진 두부를 꼬치에 꿰어 닭, 혹은 소고기 국물에 끓여 먹는 연포탕은 양반들이 연회에서 즐긴 고급 음식이었다. 이른바 연포회가 유행했고, 그 폐해가 커지자 영조는 금지령까지 내렸다.
 낙지탕은 왜 연포탕이 됐을까. 음식문화학자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의 설명이 흥미롭다. 한국의 장터를 순례한 그에 따르면 현재 연포탕의 뿌리는 목포·영암 등 남녘 바닷가에서 먹던 낙지탕이다. 1960~70년대 ‘서울로~ 서울로~’ 행렬과 함께 냉장유통 기술이 발전하면서 낙지탕의 북진이 진행됐다. 시원하고 칼칼한 맛을 주당들이 반겼고, 80년대 후반 이후 외식의 한 가지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주 교수는 연포는 ‘뽀글뽀글 거품’에서 비롯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이렇듯 연포탕 하나에도 한국의 도시화·산업화 과정이 담겨 있다. 광부들의 목구멍에 낀 탄가루를 씻어냈던 삼겹살이 축산업 발전, 도로망 확충 등과 함께 ‘국민음식’ 반열에 오른 것과 비슷한 행로를 밟은 셈이다.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는 시구처럼 ‘연포탕 함부로 말하지 마라’고 할 만하다. 더욱이 산낙지 값이 싸졌다지만 연포탕은 아직 서민이 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지 않은가.
 예부터 음식은 정치였다. 국민의 배를 든든하게 채우는 게 곧 정치의 알파요 오메가였다. 또 연대·포용·탕평, 소위 연포탕 정치는 동서고금을 꿰는 통치 원리였다. 여야와 진영, 특정인의 전유물이 아닌 것이다. 한데 현실은 정반대다. 구호와 실제가 어긋날수록, 그 틈새가 벌어질수록 정치에 대한 체념도 깊어질 수밖에 없다.
 봄은 왔건만 정치판은 아직 혹한기다. 윤심(尹心)의 실체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여의도의 혈투, 용산의 암투 속에서 연대·포용·탕평이란 명분은 연출·포장·탕진의 잡탕으로 전락한 꼴이다. 천길 벼랑 끝에 선 야당 대표는 말할 것도 없다. 요리가 취미요 장기라는 윤 대통령은 올봄 어떤 상을 차려낼까. 집권당의 ‘치프 셰프(명예대표)’에 오를 것인가, 아니면 국민의 ‘대령숙수(待令熟手)’가 될 것인가. 요리의 최고 경지는 무엇일까. “맛이란 혀가 아니라 마음으로 느끼는 것”(간디)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