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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풍 앞 줄선 2030 “이토록 현대적인 고미술 전시라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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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조선, 병풍의 나라 2’ 전시가 열리고 있는 서울 용산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사진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조선, 병풍의 나라 2’ 전시가 열리고 있는 서울 용산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사진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지난 18일 오후 1시 30분. 서울 용산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입구에 10여 명이 줄지어 섰다. 예매 관람객은 입장권을 찾았고, 일부 관람객은 현장에서 입장권을 구매했다. 전시를 보기 위해 미술관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들 대부분은 20~30대였다. 전시장 안에서 관람객들은 블루투스 헤드폰이나 이어폰을 이용해 작품 해설을 들으며 전시를 보았다. 미술관 애플리케이션을 다운로드 받아 각자 따로 작품 해설을 듣는 것이다. 이들이 다 같이 마주한 것은 조선 시대 병풍. 지난달 26일 개막한 ‘조선, 병풍의 나라 2’ 전시 현장이다.

BTS RM 방문…10대 고교생까지 줄이어

‘일월반도도 12폭 병풍’의 일부.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사진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일월반도도 12폭 병풍’의 일부.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사진 아모레퍼시픽미술관]

2018년에 열린 ‘조선, 병풍의 나라’에 이어 5년 만에 열리고 있는 후속 전시에 젊은 관람객이 몰리고 있다. ‘미술애호가’로 유명한 방탄소년단(BTS) 리더 RM은 개막 1주차에 전시장을 찾았고, 대학생과 회사원은 물론 심지어 10대 고교생까지 줄이어 전시를 찾고 있다. ‘고미술=어르신용’이라는 통념이 깨지고 있다.

청나라 귀족들의 사냥 모습을 담은 ‘호렵도 8폭 병풍’(18세기), 『삼국지연의』와 『구운몽』의 장면을 묘사한 ‘고사인물도 8폭 병풍’(19세기 후반~20세기 전반)이 타임머신처럼 관람객을 옛 공간으로 이끈다.

축원을 담은 궁중 병풍엔 현실보다는 판타지 세상 풍경을 담은 그림이 많다. ‘곽분양행락도 8폭 병풍’(19세기)이 대표적인 예다. 이 병풍은 중국 당나라 명장 곽자의(697~781)의 생일 연회를 묘사한 것으로, 8폭에 펼쳐진 풍경 자체가 사람들이 꿈꾸는 낙원 그 자체다. 85세까지 장수하며 많은 자식을 거느리고 평생 부귀와 복을 누린 그의 일생은 부귀공명, 수복장생의 상징으로 19세기 궁중 혼례용 병풍으로 쓰였다고 한다. 이국적인 건축물들이 눈에 띄는 ‘한궁도 6폭 병풍’(19세기 후반~20세기 초) 역시 신선들이 살 것 같은 상상 속 궁궐 풍경이다.

백납도 ‘10폭 병풍’ 중 고양이 그림.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사진 아모레퍼시픽미술관]

백납도 ‘10폭 병풍’ 중 고양이 그림.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사진 아모레퍼시픽미술관]

1795년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가 있는 화성에 행차한 모습을 담은 ‘화성원행도 8폭 병풍’(19세기 후반~20세기 초), 1902년 고종이 51세가 되며 열었던 4월의 궁중 잔치를 묘사한 그림 ‘임인진연도 10폭 병풍’은 웅장하고 화려했던 궁중 행사의 모습으로 왕실의 권위를 드러낸다.

장승업의 ‘홍백매도 10폭 병풍’(19세기 후반)도 관람객의 탄성을 자아내는 대표 작품 중 하나다. 대담하게 화면을 좌우로 채운 나뭇가지가 꿈틀거리는 생명력과 기개를 보여준다. 근대 병풍 중에선 가로 5m에 육박하는, 청전 이상범이 마흔 살에 그린 ‘귀로 10폭 병풍’(1937)이 압권이다.

‘고사인물도 8폭 병풍’ 중 1폭의 일부.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사진 아모레퍼시픽미술관]

‘고사인물도 8폭 병풍’ 중 1폭의 일부.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사진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이번 전시는 미술관 본래 공간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작품과 관람객 사이를 최대한 좁힌 공간 디자인이 특징이다. 임시 벽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고, 일부 작품은 아예 공사장에서 쓰이는 철제 구조물을 사용해 선보였다. 폐기물을 줄이기 위한 시도다. 병풍과 진열 유리 사이 간격을 5㎝ 미만으로 줄여 관람객이 병풍 그림의 각 부분을 상세히 볼 수 있게 했다.

현장에서 만난 관람객들은 미술관 건물 자체의 독특함과 작품의 디테일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전시 디자인을 큰 장점으로 꼽았다. 이 미술관은 세계적인 건축가 데이비드 치퍼필드(69)가 설계한 아모레퍼시픽 사옥 지상1층과 지하1층에 자리한 것으로, 로비에서부터 스펙터클한 공간감을 보여준다. 전시장 규모도 천장 높이가 5m가 훌쩍 넘는 규모에 개방감이 남다르다. 박수연(직장인)씨는 “병풍과 함께 현대적인 미술관 공간을 경험하는 즐거움이 컸다”고 말했다. 서현정(직장인)씨는 “우리가 흔히 보던 병풍이 아니어서 모두 신기했다. 아주 작은 것도 정교하고 재미있게 표현한 것이 놀랍고 신비스러웠다”고 말했다.

“레트로 유행, 전통문화까지 확장된 듯”

편지혜 큐레이터는 “RM이 오기 전부터 어르신들보다는 젊은 친구들이 압도적으로 많이 오고 있어 놀랐다”며 “2030 세대 사이에 레트로·빈티지 풍조에 대한 유행이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으로 확장된 것 같다. 새로운 공간과 고미술 전시라는 테마가 그들에게 새롭게 다가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전시는 4월 30일까지. 유료 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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