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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불시에 "ICBM 쏴라"…보란듯 '당일 발사' 과시한 北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쏘며 미국을 상대로 올해 첫 전략적 도발을 걸었다. 북한은 ‘불의(불시)적인 기습발사’라고 주장했지만, 북한의 ICBM으로 보이는 비행체가 공중에서 부서지는 듯한 장면이 일본에서 목격됐다. 북한이 아직 재진입 기술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ㆍ미는 발사 다음 날 미국의 전략자산을 동원해 맞대응을 벌였다.

19일 북한의 관영매체인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북한은 전날일 18일 평양 순안의 국제비행장에서 ICBM급 화성-15형을 발사했다. 앞서 합동참모본부는 18일 오후 5시 22분쯤 장거리탄도미사일 1발을 포착했다고 밝혔다.

 북한이 18일 오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5형을 고각발사했다고 밝혔다. 조선중앙TV 화면=연합뉴스

북한이 18일 오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5형을 고각발사했다고 밝혔다. 조선중앙TV 화면=연합뉴스

북한은 18일 화성-15형이 최대 고도 5768.5㎞까지 올라간 뒤 4015초 동안 989㎞를 날아 동해 공해 상의 목표수역을 정확히 타격했다고 주장했다. 정상(30~45도)보다 높은 각도로 쏜 고각발사였다.

일본 방위성에 따르면 미사일은 18일 오후 6시 27분쯤 홋카이도(北海道) 남서쪽의 무인도인 오시마 오시마(渡島大島)에서 서쪽 약 200㎞ 떨어진 동해에 떨어졌다. 일본 측은 탄착한 곳이 일본의 배타적 경제 수역(EEZ) 안이라고 추정했다.

장영근 항공대 항공우주ㆍ기계학부 교수는 “지난해 11월 3일 실패했던 개량형 화성-15형을 다시 발사한 거로 추정한다”며 “2017년 11월 29일 처음 쏜 화성-15형보다 탄두 중량을 줄이고 일부 엔진 성능을 개량했다”고 말했다. 일본 방위성은 정상으로 발사할 경우 사거리가 1만 4000㎞까지 늘어나 미국 본토 전 지역을 때릴 수 있을 것으로 분석했다.

불시에 명령 내려 9시간 후 ‘기습발사’

조선중앙통신은 전날 ‘대륙간탄도미싸일(미사일) 발사 훈련’이 미사일총국 지도로 제1붉은기영웅중대가 진행했다고 보도했다. 미사일총국은 지난 7일 북한 매체 보도에서 존재가 처음 확인된 기관이다. 북한 매체는 또 제1붉은기영웅중대를 지난해 11월 18일 신형 ICBM인 화성-17형을 시험발사한 부대라고 소개했다.

한가지 주목할 점은 18일 발사가 사전 계획 없이 당일 새벽 제1붉은기영웅중대에 대기 지시가 내려졌고, 오전 8시 김정은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장이 명령서를 내렸다고 북한매체가 강조한 것이다.

18일 평양의 순천 국제공항에서 제1붉은기영웅중대가 ICBM인 화성-15형을 발사 위치로 옮기고 있다. 북한은 이날 김정은의 명령에 따라 불시에 기습발사했다고 주장했지만, 명령 후 발사까지 9시이 넘게 걸렸다. 연합=조선중앙TV〉

18일 평양의 순천 국제공항에서 제1붉은기영웅중대가 ICBM인 화성-15형을 발사 위치로 옮기고 있다. 북한은 이날 김정은의 명령에 따라 불시에 기습발사했다고 주장했지만, 명령 후 발사까지 9시이 넘게 걸렸다. 연합=조선중앙TV〉

김정은이 갑자기 발사를 명령해도 곧바로 장거리 미사일을 쏠 수 있다는 사실을 안팎에 알리려는 것으로 읽힌다. 이는 북한의 탄도탄ㆍ대량살상무기(WMD) 사용 징후를 미리 파악해 선제 타격한다는 한국의 킬체인을 무력화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한다.

그러나 북한의 주장처럼 기습발사는 아니었다는 설명이 힘을 얻고 있다. 김정은의 발사 명령(오전 8시) 후 9시간 22분이 지난 오후 5시 22분쯤 발사가 이뤄졌다는 점에서다. 북한매체는 미사일의 제원을 밝히면서 발사시간은 뺐다. 군 관계자는 “한ㆍ미 군 당국은 미사일의 움직임을 사전에 포착해 감시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류성엽 21세기군사연구소 전문위원은 “ICBM의 경우 발사 명령 후 30~40분 안에,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은 더 짧은 시간 안에 쏴야 한다”며 “북한은 ICBM의 기술 수준이 낮기 때문에 당분간 선제공격용 무기로 활용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2017년에 이어 또다시 불꽃 장면 목격

일본 방위성은 항공자위대의 전투기인 F-15J가 전날 북한의 화성-15형으로 보이는 비행체의 영상을 촬영했다며 이를 공개했다. 사진과 동영상 속 비행체는 낙하 도중 두어 개로 갈라진 뒤 불꽃이 튀더니 곧 꺼졌다. 일본의 NHKTV 아사히에 따르면 전날(18일) 홋카이도 하코다테(函館)에서 비슷한 광경이 카메라에 담겼다.

공통점은 불덩어리 같은 것이 떨어지다 사그라졌다는 것이다. 이춘근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명예연구위원은 “미사일이 대기권에 다시 들어온 뒤 공기 밀도가 높은 고도 10~20㎞에서 불이 붙어 둘로 갈라지면서 탄 것처럼 보인다”며 “대기권 재진입에 실패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북한이 2017년 7월 28일 발사한 화성-14형도 홋카이도에서 여러 조각으로 쪼개진 뒤 화염이 꺼지는 모습을 보였다.

18일 일본 항공자위대 F-15J 전투기가 촬영한 화성-15 낙하 장면. 두 개로 갈라져 불꽃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 이 불꽃은 곧 사라졌다. 일본 방위성

18일 일본 항공자위대 F-15J 전투기가 촬영한 화성-15 낙하 장면. 두 개로 갈라져 불꽃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 이 불꽃은 곧 사라졌다. 일본 방위성

조선중앙통신 기사에서 당 중앙군사위가 실전능력을 높이 평가했다면서도, 강평에서 '우'를 줬다는 대목은 북한이 18일 발사를 100% 만족하지 않았다고 에둘러 나타낸 것이다.

ICBM의 탄두부는 대기권을 뚫고 정점고도까지 올라간 뒤 떨어지면서 다시 대기권에 들어온다. 속도는 마하 20을 훌쩍 넘고, 온도도 최대 1만도 가까이 올라갈 수 있다. 그래서 탄두부를 보호하는 탄소복합재가 필요하다. 정상적으로 탄착했다면 불꽃이 직전까지 보여야 한다.

북한은 ICBM의 사거리를 늘리거나 핵탄두를 탑재할 정도로 작게 만드는 문제는 해결했지만, 재진입한 탄두부가 목표에 정확히 폭발하는 기술(재진입 기술)은 아직 확보하지 않았다는 게 한ㆍ미의 평가다. 국방부는 지난 15일 펴낸 『2022 국방백서』에서 “탄두의 대기권 재진입 등 (북한의) 핵심기술 확보 여부는 추가 확인이 필요하다”고 기술했다.

이춘근 명예연구위원은 “탄소복합재 재료가 대부분 일본에서 생산하고 수출통제가 엄격하기 때문에 북한이 입수하기가 힘들다. 또 북한이 기본적인 탄소복합재 기술은 갖췄으나, 탄두부를 보호할 만큼 정밀하게 만들 수준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래서 북한이 ICBM을 핵타격 대신 EMP(전자기펄스) 공격에 동원할 것이란 전망도 있다. 강력한 전자기파인 EMP는 전자장비 회로를 태울 수 있다. 북한이 서울 상공 40㎞에서 160㏏(1㏏은 TNT 1000t 위력)의 핵폭탄을 터뜨리면 전북 군산~경북 김천~강원 동해를 잇는 한반도 중부 지역의 모든 전자장비를 망가뜨릴 수 있다.

한ㆍ미, B-1B 앞세운 연합훈련 진행

한편, 한ㆍ미는 19일 미국의 B-1B 전략폭격기가 참가하는 연합 공중훈련을 실시했다.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으로 들어온 미국의 B-1B를 한국의 F-35A, F-15K와 미국의 F-16이 호위하면서 연합 편대비행을 하는 형식으로 이뤄졌다.

북한의 ICBM 발사 다음 날인 19일 미국의 전략 폭격기인 B-1B 2대가 한국 방공식별구역(KADIZ) 안에서 한ㆍ미 연합 편대의 호위를 받으며 날고 있다. 합동참모본부

북한의 ICBM 발사 다음 날인 19일 미국의 전략 폭격기인 B-1B 2대가 한국 방공식별구역(KADIZ) 안에서 한ㆍ미 연합 편대의 호위를 받으며 날고 있다. 합동참모본부

합참은 이번 훈련은 미국 확장억제 전력을 적시적이고 즉각적으로 한반도에 전개하는 능력을 보여주며, 미국의 철통 같은 한반도 방위ㆍ확장억제 공약 이행 의지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미국의 B-1B 편대는 한국과의 연합훈련을 마친 뒤 일본으로 날아가 항공자위대와도 연합훈련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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