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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아빠 되는 구본길, "항저우에서 역대 최다 금메달 도전"

중앙일보

입력

구본길(34·국민체육진흥공단)은 세계 최강으로 군림하는 한국 펜싱 남자 사브르 대표팀의 일원이다. 김정환(40), 김준호(29), 오상욱(27)과 함께 '어펜져스(어벤져스+펜싱)'로 불린다. 이들은 2년 전 도쿄올림픽에서 단체전 금메달을 합작하면서 큰 인기를 얻었다. 지난해 8월에는 아시아 국가 최초로 세계선수권 단체전을 4연패하는 역사도 썼다.

16일 충북 진천 국가대표 선수촌 홍보관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한 펜싱 국가대표 구본길. 진천=프리랜서 김성태

16일 충북 진천 국가대표 선수촌 홍보관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한 펜싱 국가대표 구본길. 진천=프리랜서 김성태

늘 이들과 함께하던 구본길이 최근 특별한 경험을 했다. 지난 13일(한국시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끝난 남자 사브르 월드컵에 후배 하한솔(30)·도경동(24)·박상원(23)을 이끌고 출전했다. 오상욱은 발목 수술로 재활 중이고, 김정환과 김준호는 팔꿈치가 좋지 않았던 탓이다. 그런데도 다시 단체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구본길은 "모두 마음을 비우고 갔던 대회라 더 얼떨떨했다. 후배들이 정말 기대 이상으로 잘 뛰어줬다"며 "다른 나라 코치와 선수들도 '저 선수들 대체 몇 살이냐'고 물으면서 크게 놀라더라"고 자랑스러워했다.

후배들의 쾌거는 한국에서 응원하던 '어펜져스' 멤버들에게도 뜻밖의 기쁨이자 새로운 자극제였다. 그는 "다른 세 명 모두 진심으로 뿌듯해하면서 '축하한다'는 인사를 많이 해줬다"며 "그동안 '한국 남자 사브르가 강한 게 아니라 저 네 명만 강하다'는 시선도 많이 받았는데, 그 편견을 지울 수 있는 계기였다. 우리 역시 자극을 받고 더 열심히 해서 후배들과 함께 더 강해질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16일 충북 진천 국가대표 선수촌 홍보관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한 펜싱 국가대표 구본길. 진천=프리랜서 김성태

16일 충북 진천 국가대표 선수촌 홍보관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한 펜싱 국가대표 구본길. 진천=프리랜서 김성태

올해는 코로나19 여파로 1년 미뤄진 항저우 아시안게임이 열리는 해다. 구본길은 동료들과 함께 9월을 바라보며 달리고 있다. '1등만 해도 본전'으로 여겨지는 아시안게임은 오히려 올림픽보다 심리적 압박감이 더 크다. 특히 그에게는 이번 대회에서 꼭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 개인전과 단체전 2관왕이다.

아시안게임 개인전 진출권은 2명만 얻을 수 있는데, 최종 엔트리 제출 전 세계랭킹 순으로 결정된다. 구본길은 19일 현재 한국 선수 중 순위(5위)가 가장 높다. 2010년 광저우 대회부터 개인전을 3연패한 그는 "내가 이번에도 출전할 수 있게 되면, 한국 선수 최초로 4연패에 도전하고 싶다"고 했다.

금메달 두 개를 따면 더 큰 이정표도 따라온다. 구본길은 이미 아시안게임 금메달 5개를 손에 넣었다. 역대 한국 선수 아시안게임 최다 금메달 기록은 박태환(수영), 남현희(펜싱), 류서연(볼링)이 공동 보유한 6개다. 세 선수는 모두 은퇴했다. 구본길이 이들을 뛰어 넘어 최다 금메달리스트로 등극할 기회다. 구본길은 "이렇게 특별한 기회가 왔으니, 꼭 도전해보고 싶다"고 했다.

16일 충북 진천 국가대표 선수촌 홍보관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한 펜싱 국가대표 구본길. 진천=프리랜서 김성태

16일 충북 진천 국가대표 선수촌 홍보관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한 펜싱 국가대표 구본길. 진천=프리랜서 김성태

한동안 개인전 성적이 좋지 않았지만, 지난해 한국에서 열린 아시아선수권 개인전에서 우승하면서 자신감이 붙었다. 구본길은 "그 전까지는 내 안에 어느 정도 안주하려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성적이 안 나니까 나도 모르게 나 자신과 타협하려고 했다"며 "그런데 원우영 코치님이 대표팀에서 와서 옛날의 나를 이끌어내 주셨다"고 털어놨다.

원 코치는 2012년 런던 올림픽,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구본길, 김정환과 함께 단체전 금메달을 딴 '원조 어펜져스'였다. 13년 전부터 가까이서 지켜본 구본길의 성향과 특성을 누구보다 잘 안다.

구본길은 "나는 원래 공격을 앞으로 길게 쭉 뻗어서 하는 스타일인데, 그러면 아무래도 몸이 힘드니까 점점 끊어서 하거나 다른 동작으로 대체하려고 했다. 코치님이 '너는 그 동작을 해야 다른 것도 다 된다'고 하셔서 예전처럼 하게 됐다"며 "잊고 있던 과거의 장점을 되찾으니 경기가 잘 풀렸고, 그러면서 자신감을 되찾았다"고 고마워했다.

16일 충북 진천 국가대표 선수촌 홍보관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한 펜싱 국가대표 구본길. 진천=프리랜서 김성태

16일 충북 진천 국가대표 선수촌 홍보관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한 펜싱 국가대표 구본길. 진천=프리랜서 김성태

구본길은 다음달 초 아빠가 된다. 2019년 10월 결혼한 뒤 3년 여만에 첫 아들을 얻는다. 그는 "아직 내 아이가 세상에 태어난다는 실감이 잘 나지 않는다. 그래도 가장이 된다는 책임감과 자랑스러운 아빠가 되고 싶다는 열정이 더 커졌다"며 활짝 웃었다.

이제 30대 후반으로 접어들지만, 현재 40세인 절친한 선배 김정환보다 "무조건 1년 더" 선수로 뛰고 싶다는 의욕도 숨기지 않았다. 그는 "조카가 유치원에서 '우리 삼촌이 구본길'이라고 자랑했다는 소리만 들어도 뿌듯한데, 나중에 내 아들이 친구들에게 그렇게 자랑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고 했다. 또 "아들이 나중에 펜싱을 한다고 해도 말리지 않을 거다. 내가 가장 많은 걸 알려주고 물려줄 수 있는 게 펜싱이기 때문"이라며 '초보아빠'의 열정을 불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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