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 한병 더요" 하다 흠칫…내가 알던 그 가격 아니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직장인들이 소주로 건배하고 있다. 중앙포토

직장인들이 소주로 건배하고 있다. 중앙포토

 지난 15일 오후 8시 서울 서초동 교대역 인근의 한 삼겹살집. 퇴근하고 동료와 ‘삼겹살에 소주 한 잔’ 하려던 직장인 황재현(41)씨는 삼겹살보다 소주 가격에 놀랐다. 메뉴판에 소주 한 병 가격이 6000원이라고 적혀 있어서다. 식당 주인에게 가격이 오른 것 같다고 물었더니 “물가가 너무 올라 어쩔 수 없었다”는 답이 돌아왔다. 황씨는 “무심코 ‘소주 한 병 주세요’ 하려다 멈칫했다”며 “소주도 마음대로 못 마실 것 같다”고 말했다.

비교적 싼 값에 즐길 수 있어 ‘서민의 술’로 불리는 소주는 물론, 맥주와 막걸리까지 각종 주류 가격이 줄줄이 올랐다. 제조 회사가 출고 가격을 올린 데다 유통 과정을 거치며 판매점은 물론 식당에서 가격을 더 올려 잡아 체감 폭이 더 커졌다. 무엇보다 올해도 가격 인상 요인이 줄줄이라 주당(酒黨)에겐 우울한 한 해가 될 전망이다.

19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서 소비자물가지수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소주·맥주·탁주·양주 등 주류 가격이 1년 전보다 5.7%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겪은 1998년 주류 가격 상승률이 11.5%를 기록한 뒤 24년 만에 가장 많이 올랐다.

연도별 소비자물가 상승률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통계청]

연도별 소비자물가 상승률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통계청]

주류 물가 상승률은 1998년 두 자릿수를 찍은 뒤 하락해 2003년(4.7%), 2009년(4.2%), 2013년(4.6%), 2017년(4.8%) 등 4%대 상승 폭을 제외하고는 매년 2%대 이하에 머물렀다. 그러다 지난해 6% 가까이 치솟았다. 특히 소주가 7.6% 올라 2013년(7.8%) 이후 최고 상승률을 기록했다. 맥주는 5.5% 상승해 2017년(6.2%) 이후 가장 많이 올랐다.

소주는 원·부자재 가격 상승이 출고가 인상을 부추겼다. 특히 소주 원료인 주정(에탄올) 가격이 지난해 10년 만에 7.8% 올랐다. 맥주는 보리 등 원·부자재와 에너지 가격, 물류비·인건비·환율이 줄줄이 오른 것이 출고가 인상에 영향을 미쳤다. 세금도 지난해 4월부터 L당 20.8원 올랐다.

제조 회사 출고가가 오르자 CU·GS25·세븐일레븐·이마트24 등 편의점과 이마트·롯데마트·홈플러스 등 대형마트도 일제히 1병당 판매가격을 100∼150원씩 올렸다. 참이슬 소주 기준 편의점 가격이 기존 병당 1800원대에서 1900원대, 대형마트 가격은 1200원대에서 1300원대로 각각 올랐다.

위스키·샴페인 같은 양주도 4.2% 상승해 2013년 4.8% 이후 가장 많이 올랐다. 약주도 4.8% 올라 2013년 5.2% 이후 최고 상승률을 기록했다. 2021년 12.8% 올랐던 막걸리는 지난해 7.2% 올랐다. 과실주는 1.1% 내려 유일하게 가격이 내려갔다.

올해 주류 가격도 인상 요인이 줄줄이다. 소주는 지난해 10년 만에 주정 가격을 올렸는데도 주정 회사 영업이익이 크게 줄어 올해도 올릴 가능성이 높다. 제병업체의 소주병 공급 가격도 병당 180원에서 220원으로 20% 넘게 올랐다. 맥주는 올해 4월부터 세금이 L당 30.5원 또 올라 L당 885.7원이 된다. 주세가 오를 경우 출고가 상승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 2021년 주세가 0.5% 올랐을 때 오비맥주·하이트진로는 출고가를 평균 1.36% 인상했다.

무엇보다 현장서 체감하는 주류값 상승 폭이 훨씬 클 전망이다. 주류 유통은 주류제조사·수입업체→주류 취급 면허 도매상→소매점→소비자로 이어지는 구조다. 주류 회사는 원·부자재 가격, 물류비, 공병 취급수수료, 제조경비 등이 올라 가격을 올려도 주세를 고려하면 크게 이익이 남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소매점은 '플러스 알파'의 인상 효과를 가져간다. 주류 업계가 출고가를 올리면 편의점·마트 등 소매점 판매가가 더 큰 폭으로 오르고, 식당에선 그보다 더 오르는 ‘나비 효과’가 일어날 수 있다. 병당 500원·1000원 단위로 가격을 매기는 식당에선 이미 지난해 병당 4000~5000원대였던 소줏값을 병당 5000~6000원대로 올린 경우가 늘었다. 지난해 외식산업연구원이 일반음식점 외식업주 130명을 조사한 결과 55.4%가 소주 출고가 인상에 따라 소주 판매가격을 올렸거나 올릴 예정이라고 답했다.

식당에서 병당 5000~7000원대인 맥주 가격도 병당 6000~8000원대로 오른 경우가 많다. 소주 1병에 맥주 1병을 시켜 일명 ‘폭탄주’를 마실 경우 1만원을 훌쩍 넘어 1만5000원에 육박한다는 얘기다. 서울 송파구의 한 양꼬치집 주인 이모(53)씨는 “물가, 인건비 상승에 대응하려면 음식값보다 덜 민감한 술값을 올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조용래 기획재정부 환경에너지세제과장은 "지난해 높은 물가상승률(5.1%) 등을 고려해 정부가 할 수 있는 가장 최소한으로 주세를 올렸다"며 "주류값 상승은 주세 인상보다 원재료·에너지 등 원가 상승 요인이 더 크게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