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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어질때 낙법 하라"…실내암벽장 추락사고 누구 책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국내의 한 암벽등반장 모습. 연합뉴스

국내의 한 암벽등반장 모습. 연합뉴스

취미로 스포츠 클라이밍(암벽등반)을 시작한 20대 직장인 A씨는 지난해 말 실내 암벽장에서 등반을 하다 발목이 부러졌다. 실수로 손을 놓쳐 2m 이상 높이에서 떨어진 거다. 암벽장 아래 매트가 깔려 있었지만, A씨의 부상을 막지는 못했다. 곧장 구급차에 실려 간 A씨는 뒷 발목뼈 골절과 인대 파열을 진단 받았고, 10일간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클라이밍 경력 1년 차인 30대 박모 씨도 지난해 실내암벽장에서 추락해 발목 뼈 세 개가 골절되는 부상을 입었다. 수술을 받은 박씨는 지금도 재활 치료를 받고 있다.

젊은 층 사이에서 스포츠 클라이밍이 유행하면서, 인공암벽장 추락 사고 또한 속출하고 있다. 신한카드 빅데이터연구소가 2021년 1~9월 신한카드 결제 건수를 분석한 결과, 클라이밍 관련 결제는 전년 동기 대비 183%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한 산악계 관계자는 “등산 뿐 아니라 스포츠 클라이밍에 도전하는 20~30대가 많이 늘었다. 동시에 관련 사고도 계속되고 있다”고 했다. 질병관리청이 추락·낙상 퇴원 환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운동이나 경기 참여 중 부상을 입었다’고 답한 환자는 2019년 기준 약 1만3400명에 달했다.

대부분 면책 동의서 서명해야 입장…“안전요원 없는 곳도”

국내 한 클라이밍 업체 모습. 연합뉴스

국내 한 클라이밍 업체 모습. 연합뉴스

스포츠 클라이밍은 실내나 실외에 인공적으로 만든 암벽을 오르는 스포츠다. 15m 높이 이상의 인공 암벽에서 정해진 시간 동안 누가 더 높이 올라가는지를 다투는 ‘리드’와 15m짜리 암벽을 누가 더 빨리 오르는지 겨루는 ‘스피드’, 로프 없이 높이 5m 이내의 암벽에서 정해진 코스를 얼마나 빨리, 많이 통과하는지 경쟁하는 ‘볼더링’ 등으로 종목이 나뉜다. 최근 청년층에서 유행하는 건 상대적으로 초심자가 하기 쉬운 볼더링 종목이다.

젊은 이용자가 늘자 인지도도 높아지고 업장도 많아졌지만, 사고가 잇따르며 업계의 불안감도 함께 커지고 있다. 체육시설법상 인공암벽장은 체육지도자와 안전관리요원이 1명 이상 상주하면서 안전 수칙을 안내해야 하지만, 지키지 않고 있는 업장도 많기 때문이다.

최근 클라이밍을 시작했다는 B씨(30)는 “처음 갔을 때 직원이 ‘떨어질 때 뒤로 넘어지면서 낙법을 하라’고 설명을 해주긴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배운 적은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볼더링 도중 추락 사고로 골절상을 입었던 40대 이모씨도 “(벽 아래에 있는) 매트가 너무 딱딱해 맨바닥에 떨어진 것과 다름 없었다”고 회상했다.

손해배상 소송전도…안전관리 여부가 과실 가른다

게다가 대부분 업장이 손님들에게 ‘사고가 나도 업체 책임은 없다’는 내용의 면책 동의서를 작성하게 하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B씨 역시 “클라이밍장에 처음 갔을 때 각서 같은 걸 써야한다. 거부하면 들어갈 수 없다고 해서 불안했지만 써야 했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사고가 발생하면 법적 분쟁으로 번지기도 한다.

다만 전문가들은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선 동의서 작성 여부가 아니라, 클라이밍 업체가 안전관리 의무를 다했는지가 쟁점이 된다”고 밝혔다. 이수철 손해사정사(해연손해사정)는 “사고가 나면 업체 측에 보험이 있는지 확인하고 배상 책임이 있는지 검토하게 된다”며 “처음 이용하는 사람에게 충분히 안내했는지, 그리고 제공받은 장비에 하자가 있었는지, 초급자가 난이도 있는 코스에 도전하는 걸 그냥 두고 봤는지 등을 종합적 따져 과실을 계산한다”고 말했다.

SNS에 올라온 스포츠 클라이밍 관련 사진들. 부상 관련한 사진도 많았다. 사진 인스타그램 캡쳐

SNS에 올라온 스포츠 클라이밍 관련 사진들. 부상 관련한 사진도 많았다. 사진 인스타그램 캡쳐

실제 2021년 5월 서울중앙지법은 2019년 5월 실내 암벽장에서 강습을 받던 중 추락해 발목이 부러진 30대 손님 C씨가 업체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손님의 손을 들어주고, 업체에게 약 1452만원을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업체 측은 법정에서 C씨가 서명한 면책 동의서를 근거로 “손해 배상 청구는 권리 남용 및 신의칙 위반”이라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신 사고 당시 강습생이 6명이고 강습 시간은 1시간에 불과해 C씨가 낙법을 익히기 어려웠던 점 등을 이유로 업체 측에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당시 재판부는 “문서의 내용은 운동 중 일어나는 사고와 관련하여 피고(업체)에게 과실이 없는 경우, 즉 원고(손님)만의 과실로 발생한 사고 또는 누구의 과실이라고 할 수도 없는 사고에 대해서는 피고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산악계 관계자는 “스포츠 클라이밍은 부상을 당하기 쉬운 운동이라 스트레칭도 충분히 해줘야 하고, 안전 교육도 제대로 실시하는 등 업체들이 이용자 안전을 위해 노력을 많이 해야한다. 또 이용자들 역시 스스로 자신의 실력과 몸 상태를 잘 체크하고, 안전 장비를 제대로 갖춘 시설인지 꼼꼼히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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