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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낮잠 좀 주무세요"…'불면 대국' 日 기업의 꿀잠 고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일본 도쿄에서 컨설팅 회사에 근무하는 회사원 A(46)씨는 업무 이메일을 보냈다가 등에 식은땀이 나는 경험을 했다. 회신 메일에 "수신자는 제가 아닌데 잘못 보내신 것 같다"고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확인해보니 A씨의 실수였다. 그는 "업무가 몰리면서 하루 5시간도 못 자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었다"면서 "하루 7시간 이상 푹 잘 때는 하지 않던 실수"라고 털어놨다.

 불면대국인 일본에서 최근 수면의 질을 높이기 위한 기업들의 노력이 일어나고 있다고 아에라 최신호가 전했다. 사진은 쪽잠을 자고 있는 일본 직장인의 모습. 사진 트위터 캡처

불면대국인 일본에서 최근 수면의 질을 높이기 위한 기업들의 노력이 일어나고 있다고 아에라 최신호가 전했다. 사진은 쪽잠을 자고 있는 일본 직장인의 모습. 사진 트위터 캡처

일본 아사히신문 잡지 아에라 최신호는 '불면 대국' 일본에서 직원의 '수면의 질'을 높이려 노력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잠을 잘 잔 직원이 기업 생산성 향상에 기여한다는 이유에서다.

일본 지하철을 운영하는 도쿄메트로의 경우 교대근무 직원이 많은 데다 졸음이 자칫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에 '질 좋은 수면'이 큰 과제다. 회사는 최근 4년간 수면 개선 강좌를 개설했다. 매년 150명이 8주간의 '수면 기술 배우기'에 참가한다. 첫 4주간은 스마트 워치인 핏빗을 착용해 수면 패턴을 조사한다. 나머지 4주간은 좋은 수면 습관에 정착하는 실전에 돌입한다.

도쿄메트로 직원들은 교대근무로 기상·취침 시간이 일정치 않더라도 수면의 질을 높이려면 기상 시간만이라도 일정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팁을 들었다. 수면을 충분히 취한 이들은 집중력이 높아지고 정확하게 정중하게 고객 응대를 하게 되는 변화를 실감했다고 한다. "사소한 일로 좌절하지 않고 여유 있는 마음으로 일하게 됐다"는 반응도 나왔다.

사람들이 늦은 시간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일본 도쿄 최대유흥가인 가부키초를 지나고 있다. EPA=연합뉴스

사람들이 늦은 시간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일본 도쿄 최대유흥가인 가부키초를 지나고 있다. EPA=연합뉴스

수면 개선 교육을 대행·운영하는 뉴로스페이스는 본인의 수면장애 경험을 바탕으로 고바야시 다카노리(小林孝德)가 2013년 설립한 기업이다. 그가 수면 개선을 지원한 기업은 도쿄메트로·미쓰비시부동산·산토리·파나소닉·야마하·요시노야 등 130곳 이상이다.

고바야시 뉴로스페이스 대표는 "수면 6시간 미만 상태가 1주일 이상 지속하면 뇌의 인지능력은 음주 때와 비슷해진다"고 말했다. 그는 아에라에 "그간 일본 기업에선 밤샘 근무가 미덕이었지만 이제는 직원이 잠 잘 자는 기업이 좋은 기업인 시대"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사람의 몸을 컴퓨터에 빗대 단순한 휴식이 컴퓨터를 끈 상태라면 수면은 컴퓨터가 열심히 '버전업'을 하는 상태라고 설명한다. 사진은 일본 한 기업체에 위치한 수면실. 사진 비즈니스 인사이더 저팬 캡처

전문가들은 사람의 몸을 컴퓨터에 빗대 단순한 휴식이 컴퓨터를 끈 상태라면 수면은 컴퓨터가 열심히 '버전업'을 하는 상태라고 설명한다. 사진은 일본 한 기업체에 위치한 수면실. 사진 비즈니스 인사이더 저팬 캡처

바쁜 직장인들의 수면 시간 확보법 중 하나는 낮잠 자기다. 아오야마·오모테산도 수면·스트레스 클리닉 원장인 나카무라 마사키(中村真樹)는 "수면 장애가 없는 사람도 점심을 먹은 뒤 오후 2시는 졸음이 일어나기 쉬운 시간대"라며 "이때 15~20분 파워냅(Power Nap·활력을 주는 짧은 낮잠)을 추천한다"고 전했다. 다만 낮잠은 30분 이상 자지 않는 것이 포인트다. 밤에 깊은 잠을 이루기 위해선 오후 4시 이후 쪽잠도 금물이다.

미쓰비시 부동산은 2018년부터 '낮잠 활성화'를 위해 사내 수면실을 정비했다. 비즈니스 인사이더에 따르면 미쓰비시 부동산 수면실에는 각 부스 내에 리클라이닝 소파가 있다. 소리에 예민한 이를 위한 귀마개도 갖췄다. 온라인 사전예약을 통해 낮 12시부터 오후 3시까지 최대 30분 이용할 수 있다. 거의 매일 예약이 찰 정도로 인기지만, 도입 초기에는 이용자가 적었다고 한다. "졸려서 수면실 좀 다녀오겠다"고 말하기 어려운 분위기여서다. 고바야시 대표는 아에라에 "(기업 문화 개선을 위해) 상사가 먼저 적극적으로 낮잠을 자는 것도 방법이다"고 전했다.

일본 미쓰비시부동산에서 운영하는 리클라이너가 놓인 수면실. 사진 비즈니스 인사이더 저팬 캡처

일본 미쓰비시부동산에서 운영하는 리클라이너가 놓인 수면실. 사진 비즈니스 인사이더 저팬 캡처

미쓰비시부동산 관계자는 "20대부터 임원급까지 남녀 모두 이용한다"면서 "낮잠은 '땡땡이(할 일을 안 하고 게으름 피운다는 속어)' 치는 것이란 인식이 바뀌었다"고 전했다. '낮잠 덕에 작업 생산성이 좋아졌다'고 응답한 비율은 3분의 2가 넘었다.

일본 기업들이 수면 개선에 나서는 데는 국가적 배경도 한몫했다. 지난해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정권이 발표한 '새로운 자본주의 실행 계획'에는 첫선을 보인 이색적인 제도가 있다. 하루 근무가 끝나고 다음 날 근무까지 일정한(예컨대 11시간) 간격을 확보하라는 '근무간 인터벌(interval·간격 혹은 중간휴식) 제도'다. 기업이 직원의 수면 시간을 확보할 것을 의무화한 제도로 인식되고 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로이터=연합뉴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로이터=연합뉴스

나라까지 나서서 수면을 챙기는 이유는 일본인들의 수면 부족 때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일본인의 평균 수면시간은 7시간 22분으로 회원국 30개국에서 최하위였다. 한국인 역시 7시간 41분으로 하위권이었다. 미국 랜드연구소에 따르면 수면 장애로 인한 일본의 경제손실액은 연간 15조엔(약 145조원)으로 나타났다.

잠을 잘 잔 직원이 기업에 보탬이 된다는 연구 결과도 속속 나오고 있다. 지난해 발표된 야마모토 이사무(山本勲) 게이오대학 교수의 연구에서는 상장 기업 700곳을 조사한 결과 직원의 수면 시간과 질을 제대로 확보한 기업일수록 이익률이 올라갔다.

와세다대학 정치경제학술원 연구(2021년)에서도 수면의 질 향상이 생산성 향상을 가져온 것으로 나타났다. 오완 히데오(大灣秀雄) 와세다대학 교수에 따르면 1인당 생산성을 연간 800만엔(약 7700만원)으로 환산할 때 직원 개개인 수면의 질이 올라가면 1인당 연간 12만엔(약 115만원)만큼 생산성이 더 좋아졌다. 집중력, 업무성과 등 생산성 종합 지표도 5% 이상 개선됐다. 고바야시 대표는 "최대한 수면의 질을 높여 직원들이 꿀잠도 자고 고(高)성과자도 되게 하는 노동 환경을 갖추는 것이 기업의 책무"라고 했다.

밤잠이 잘 오는 법 5가지

1. 저녁 식사는 자기 3시간 전까지
늦은 저녁 식사는 수면 리듬에 영향을 줘 잠의 질이 나빠진다. 좋은 수면을 위해 식사는 취침 3시간 전까지 끝낸다.
2. 밤 10시 이후 조명을 어둡게. 블루라이트 피하기
빛 양을 줄이면 자연스레 졸음이 온다. 생체 시계에 악영향을 주는 PC·스마트폰의 LED 디스플레이의 블루라이트는 피한다.
3. 자기 1~2시간 전 38~40℃ 미지근한 물에 목욕
체온이 올라갔다가 떨어질 때 졸음이 온다. 단, 고온의 물은 몸을 각성시켜 역효과다.
4. 취침 전 강도 높은 운동은 금물 
근육 운동 등 강도 높은 운동은 취침 2~3시간 전에 한다. 다만, 스트레칭, 요가 등 가벼운 운동은 수면에 좋다.
5. 술의 힘을 빌리지 않기

(자료=다이이찌 산쿄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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