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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관측기구, 세계 곳곳에 퍼져있다…'회색지대 전략' 뭐길래 [Focus 인사이드]

중앙일보

입력

미국이 자국 영공을 침입한 중국의 기구를 격추하면서 두 나라 사이에 갈등의 골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 미국은 처음에는 위협이 아니라고 했지만, 곧 중국의 정찰용 기구라면서 격추를 선언했고, 민간인 지역 피해가 없는 바다 위에서 격추했다.

정찰용 기구로 의심되는 미국 상공에 나타난 중국의 성층권 기구. 출처 미 하원

정찰용 기구로 의심되는 미국 상공에 나타난 중국의 성층권 기구. 출처 미 하원

중국은 처음에는 침묵으로 일관하다가 민간의 기상 관측기구라고 주장하면서 국제적 관례를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중국이 이런 관측기구를 보낸 것이 처음이 아니며, 세계 곳곳에 퍼져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중국의 민간 관측기구라는 주장은 설득력을 잃었다.

중국 회색지대 전략의 새로운 수단

이번에 중국의 기구가 비행한 고도는 약 18~20㎞ 정도로, 대류권 위에 있는 성층권에 속한다. 대류권과 성층권 모두 대기권에 속하는데, 여기는 각 나라의 주권이 미치는 영공에 속한다. 즉, 중국은 통제권을 잃은 민간 관측기구라는 주장을 펼치며 미국 등 여러 나라의 영공을 침범한 것이다.

기구가 비행한 성층권은 일반적으로 항공기가 비행하기에는 높고, 인공위성이 머물기는 낮은 고도다. 간혹 관측기구 등이 올라갈 뿐, 전반적으로 항공 우주 분야의 미개척지에 속한다. 미국도 전투기 가운데 가장 높이 올라갈 수 있는 F-22를 띄우고 단거리 공대공 미사일로 겨우 처리했다.

록히드마틴이 개발하던 HALE-D 성층권 비행선 컴퓨터 그래픽. 록히드마틴

록히드마틴이 개발하던 HALE-D 성층권 비행선 컴퓨터 그래픽. 록히드마틴

중국은 지금까지 이런 대응의 어려움을 노리고 군사적 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음에도 세계 곳곳으로 민간 관측기구라는 이름으로 정찰용 기구를 보낸 셈이다. 중국의 이런 행동은 처음이 아니다. 중국은 1980년대 중반부터 자국 어민들을 상대로 군사 훈련을 시키고, 배에 해군이나 해양경비대와 통신할 수 있는 무전기 등을 장착한 해상 민병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중국의 해상민병대는 해군이나 해양경비대 함정보다 앞서 중국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해역에서 조업하는 다른 나라 어선을 공격하거나 관공선에 충돌하는 등 도발을 수행해왔다. 중국은 해상민병대를 전쟁보다 낮은 강도의 수단을 통해 정치적 목적을 이루기 위해 사용하는 회색지대(Gray Zone) 전략의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런 수단에 성층권에 떠 있는 기구가 포함된 것이다.

새로운 공간, 성층권

성층권을 이용하려는 시도는 중국이 처음이 아니다. 2000년대 초반, 미국 등 여러 나라가 성층권에 장기간 머물면서 통신 중계, 감시와 정찰 등을 수행할 성층권 비행선을 연구했다. 미 육군과 해군은 기술 실증용 기구를 만드는 등 노력을 기울였지만, 부력 유지 등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시들해졌다.

이런 기술적 문제 외에도 성층권 비행이 어려운 이유는 더 있다. 가장 큰 문제는 고도 10㎞ 인근에서 최대 시속 500㎞의 속도로 부는 제트기류다. 둘째는 온도다. 성층권은 최대 영하 70도의 극한의 저온이기 때문에 이런 환경을 견디기 위해 특수한 설계가 필요하다.

에어버스의 제피르 태양광 무인기. 에어버스

에어버스의 제피르 태양광 무인기. 에어버스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성층권을 이용하려는 노력은 태양광 무인기로 이어졌다. 성층권 기구에 동력 장치를 달아 방향 조절은 가능하지만, 부력을 만들어내는 기구의 크기 때문에 바람에 영향을 크게 받는다. 이에 비해 태양광 무인기는 날개로 양력을 얻고 전기모터로 추진력을 얻기 때문에 바람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적게 받는다.

성층권을 이용하려는 노력은 미국보다는 유럽에서 더 적극적이다. 에어버스는 영국의 키네티크사가 개발한 제피르(Zephyr) 무인기를 2013년 사들여 계속 연구하고 있다. 최근 기록으로는 2022년 6월 15일 미국 애리조나에서 이륙한 제피르-S가 8월 19일 실종될 때까지 64일 동안 떠 있으면서 5만 6000㎞를 움직였다. 에어버스는 2034년까지 1,000대의 제피르를 하늘에 띄워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우리나라의 항공우주연구원(KARI)도 성층권에서 장기 체공할 수 있는 태양광 무인기를 개발하고 있다. 국산 태양광 무인기는 2016년 처음으로 고도 18.5㎞의 성층권을 비행한 데 이어 2019년 8월 EAV-3가 첫 비행에 성공했다. 날개 길이 20m, 중량 66㎏의 EAV-3은 2020년 8월 53시간 체공에 성공했다. 항공우주연구원은 2022년부터 2025년 사이에 상시 재난 감시를 위해 30일 이상 성층권 체공이 가능한 무인기를 개발할 예정이다.

탐지와 요격 능력 갖춰야

성층권을 이용하기 위한 방법들이 개발되면서 이용하려는 시도는 계속 이어질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다른 나라의 영공을 침범하여 주권을 침해하지 않아야 하듯이, 다른 나라도 우리 영공을 존중해야 한다.

하지만, 미국 영공을 침범한 기구에 대한 태도에서 보듯이 중국은 민간 운운하며 우리의 영공 침범을 서슴없이 할 가능성이 있다. 중국은 우리의 주권을 여러 차례 침해하려 했다. 서해와 제주도 남방해역에서 유엔 해양법에 따른 중간선을 인정하지 않으려 시도하고 있고, 서해에서는 자기들 멋대로 동경 124도 선을 설정하고 우리 해군이 이 선을 넘지 말도록 요구하고 있다.

격추된 중국 정찰 풍선 잔해를 수거중인 미 해군. 미 해군

격추된 중국 정찰 풍선 잔해를 수거중인 미 해군. 미 해군

이런 중국의 안하무인격 행동은 성층권 기구에서도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중국은 우리 군이 북한 무인기를 탐지는 했으나, 민간인 지역에 떨어질 경우 피해 등을 우려하여 요격에 나서지 못한 것을 두고 우리의 취약점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이런 취약점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 우리 군은 낮은 레이더 면적을 가지는 고고도 비행체에 대한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 우리 영공을 통과하는 허가 받지 않은 어떤 비행체도 용납해서는 안 된다. 위협은 큰 비용이 들더라도 막아야 한다. 북한 무인기나 중국의 관측기구가 무장하지 않아서 위협이 아니라는 생각은 안보를 무너뜨리는 위험한 발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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