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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못타도 '말 뇌물죄' 된 朴…이재명 '삼각뇌물' 입증할 檢카드는

중앙일보

입력

검찰이 지난 16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해 청구한 구속영장은 일종의 ‘예고편’으로 볼 수 있다. 성남도시개발공사에 갔어야 할 이익(4895억원)을 대장동 일당에게 몰아줬단 배임 혐의가 주된 내용인데, 이 대표가 그 대가로 대장동 수익 일부(428억원)을 받기로 했단 내용은 빠졌다.

뇌물 혐의에 대한 ‘본편’은 아직 나오지 않은 셈이다. “부정한 돈을 단 한 푼도 취한 바 없다(16일 긴급 최고위원회의)”는 이 대표의 말은 여러 혐의 중 핵심은 결국 뇌물죄가 인정되느냐 하는 점이란 걸 보여준다. 검찰은 배임 혐의를 적용해 이 대표 구속에 성공하면 그 후 뇌물 혐의 수사를 이어가겠다는 공산인데, 의율이 어려운 만큼 신중하게 접근하는 모양새다.

어려운 이유는 이 대표가 직접 받은 게 아니어서다. 428억원은 이 대표 최측근인 김용·정진상씨 등이 김만배씨 등 대장동 민간사업자에게서 받기로 약속한 돈이다. 수원지검에서 수사 중인 쌍방울그룹 사건에서도 김성태 전 회장이 경기도를 대신해 북한에 줬다는 800만달러를 이 대표에 대한 뇌물로 볼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지난 16일 구속영장이 청구된 뒤 긴급 최고위원회의를 마치고 나서는 모습. 장진영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지난 16일 구속영장이 청구된 뒤 긴급 최고위원회의를 마치고 나서는 모습. 장진영 기자

본인 아닌 다른 사람이 뇌물을 받은 이른바 ‘삼각뇌물’ 사건의 유죄 입증은 본인이 직접 받은 경우보다 어렵다. 직무관련성·대가성 있는 ‘냄새 나는 돈’, 그 이상의 스토리가 없으면 안 된다. 서울중앙지법이 최근 곽상도 전 의원 재판에서 아들이 퇴직금으로 받은 50억원을 곽 전 의원이 받은 뇌물로 인정하지 않은 건, 그 돈이 수상쩍지 않단 말이 아니라 검찰이 제시한 증거와 적용한 죄명으론 벌할 수 없단 얘기다. 이처럼 삼각뇌물의 유무죄 인정 여부는 논리와 죄명 선택에 달려있다.

① 같은 주머니, ‘경제 공동체’

화천대유자산관리에서 퇴직금 50억원을 받은 곽상도 전 의원의 아들. 2021년 10월 경찰 조사를 받고 나오는 모습. 연합뉴스

화천대유자산관리에서 퇴직금 50억원을 받은 곽상도 전 의원의 아들. 2021년 10월 경찰 조사를 받고 나오는 모습. 연합뉴스

사회통념상 본인이 직접 받은 것과 같다는 건 입증만 된다면 돈 받은 사람과 공무원을 엮을 강력한 고리가 되지만, 입증이 어렵다. 자식·연인도 경제 공동체가 아닐 수 있다. 곽 전 의원 1심 재판부는 “곽 전 의원이 아들을 대리인으로 내세워 뇌물 받은 것으로 의심이 드는 점”도 있지만 “성인으로 결혼해 독립 생계를 유지해 아버지에게 법률상 부양의무가 없는 아들이 받은 걸 곽 전 의원이 받은 것과 같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판례도 경제 공동체로 보지 않은 사건을 통해 ‘이러이러한 경우가 아니고서야 같은 주머니가 아니다’라는 식으로 쌓였다. 대법원은 ‘구청장이 가깝게 지내던 구내 단체 회장이자 연인설이 돌던 이성’이 받은 돈은 구청장이 받은 게 아니라고 봤다(98도1234). ‘군민들이 군수 사조직으로 인식하고 있는 산악회 지부’가 받은 물품도 군수가 받은 게 아니라고 봤다(2001도7056). 그러면서 동일시할 수 있는 조건을 “평소 공무원이 생활비 등을 부담하고 있었다거나 채무를 부담하고 있었다는 등의 사정이 있어서 그 사람이 뇌물을 받음으로써 공무원은 그만큼 지출을 면하게 되는 경우 등”으로 한정했다.

경제 공동체란 단어는 법적 용어는 아니지만 이른바 ‘국정농단’ 사건 수사 때 등장했다. 최순실씨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의상비 등을 대신 내준 정황 등이 있어 둘을 한 주머니로 볼 수 있단 얘기도 나왔다. 하지만 정작 특검팀은 “경제 공동체를 전제로 기소하지 않았고 이를 입증할 생각도 없다(2017년 4월, 뇌물죄 첫 재판에서)”고 했다.

② 같이 꾸민 한통속, ‘공모공동정범’

박근혜 전 대통령(왼쪽)과 최순실씨(오른쪽). 연합뉴스

박근혜 전 대통령(왼쪽)과 최순실씨(오른쪽). 연합뉴스

최순실 특검팀은 다른 논리를 택했다. 최씨의 딸 정유라씨가 삼성전자로부터 말 세 마리를 받는 과정에 박 전 대통령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공동정범’ 이론이다.

주범·종범은 한 범죄에서 주연과 조연이 있어 더 나쁘고 덜 나쁜 사람이 있단 얘기. 하지만 공동정범은 똑같이 나쁜 둘(혹은 그 이상)이 공동주연을 맡아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이다. 말 한 번 타본 적 없는 박 전 대통령은 어떻게 말 뇌물수수자가 됐을까. 최씨와 박 전 대통령은 “뇌물이 전부 비공무원(최씨 모녀)에게 귀속된 경우 경제적 공동체가 인정되지 않는 한 뇌물죄 공동정범이 될 수 없다”며 항소했다. 하지만 서울고법은 “반드시 공무원(박 전 대통령)에게 뇌물이 귀속돼야 한다든가, 둘이 경제적 공동체 관계에 있어야만 공동정범이 되는 건 아니다(2018년 2월 판결문 중)”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그보단 ‘공동가공의 의사와 그 공동의사에 의한 기능적 행위지배’가 핵심이다. 법원이 확정한 사실관계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은 기업 애로사항을 듣는다며 이재용 당시 삼성 부회장을 단둘이 만나 승마 지원을 요구했고, 최씨도 말을 받을 때 대통령의 힘 덕인 걸 알았다.

박 전 대통령도 같이 꾸민 일이니 같이 책임져야 한다는 이 이론은 대법원에서도 다수에 의해 인정되긴 했지만, 당시 대법관 13명 중 4명은 “뇌물의 성질에 비춰 비공무원이 전적으로 사용할 것임이 명백한 경우엔 공동정범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별개의견을 내기도 했다(2019년 8월 판결문 중). 실제 사례에서 공동정범 이론을 논란의 여지 없이 적용하기란 쉽지 않음을 보여준다.

③ 누굴 위한 쓰리쿠션인가, ‘제3자 뇌물’

정옥근 전 해군참모총장. 2009년 재임 시절 청해부대 3진 출항식에 참석해 아덴만으로 떠나는 해병대원과 악수하는 모습. 중앙포토

정옥근 전 해군참모총장. 2009년 재임 시절 청해부대 3진 출항식에 참석해 아덴만으로 떠나는 해병대원과 악수하는 모습. 중앙포토

지름길이 막혔다면 우회로도 있다. 형법엔 뇌물수수(129조1항)와 별도로 제3자 뇌물제공(130조)이 있다. 그냥 뇌물죄는 대가성까지만 입증하면 되지만, 제3자 뇌물죄는 부정한 청탁이 있었단 것도 입증해야해 더 어렵다. 기소하는 입장에선 일반 뇌물죄를 선호하나, 일반으로 걸었다 무죄가 나온 뒤 제3자 뇌물죄로 바꾸거나 추가하기도 한다.

정옥근 전 해군참모총장 사례가 대표적이다. 아들의 요트회사가 STX그룹으로부터 후원비 명목으로 받은 돈 7억7000만원을 정 전 총장이 받은 뇌물로 볼지가 쟁점이었다. 하급심은 검찰 주장을 받아들여 뇌물죄로 봤지만, 대법원은 “후원금을 받은 건 요트회사인데 정 전 총장이 직접 받은 것과 동일하게 평가한 것은 잘못(2016년 6월)”이라며 원심을 파기했다. 검찰은 제3자 뇌물로 길을 틀었고 결국 그렇게 유죄가 확정됐다(2017년 4월). 파기환송 전과 형량은 같았다(징역 4년).

부정한 청탁은 그냥 ‘잘 봐달라’‘잘 봐주겠다’ 식으로 추상적이고 막연해선 안 되고, 구체적 현안이 있어야 한다. STX는 유도탄 고속함, 차기 호위함 등 선박 수주 사업을 진행 중이었고, 미르·K재단에 돈을 댄 삼성전자의 경우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란 이슈가 있었다.

청탁이 오간 과정은 묵시적·암묵적이어도 된다. 정 전 총장이 STX 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현안 사업과 계약·납품을 해결해 주겠다, 아들 회사에 돈을 달라”고 한 건 아니지만, 다른 사람을 시켜 후원금을 독촉한 게 묵시적 청탁으로 인정됐다. STX해양 사외이사인 전직 해군작전사령관을 통해 “참모총장이 얘기했는데 STX에서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 한 사례가 여기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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