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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올핸 조류독감 전무…떼로 죽던 두루미 월동지에 생긴 일

중앙일보

입력

지난 1월 1일 새해 첫날 경기도 연천군 민통선 내 두루미 월동지 장군여울 모습. 사진 이석우씨

지난 1월 1일 새해 첫날 경기도 연천군 민통선 내 두루미 월동지 장군여울 모습. 사진 이석우씨

해마다 겨울이면 경기도 연천군 민통선 일대 임진강 유역에는 겨울철 진객으로 불리는 두루미(천연기념물 제202호)와 재두루미(천연기념물 제203호)가 겨울을 난다. 이중 두루미는 세계적으로 3000여 마리만 남은 희귀 조류인데 올해는 연천에서 월동하는 개체 수가 사상 최대 규모로 불었다.

전남 순천의 흑두루미(천연기념물 제228호) 월동지에서 지난해 말 고병원성 AI가 발생해 100여 마리가 폐사한 이후 연천도 바짝 긴장했지만, 감염이나 폐사 없이 오히려 개체 수가 늘어난 것이다.

먹이 주기 지속하고, 여러 곳으로 먹이터 분산한 효과  

겨울철 흑두루미 월동지인 순천만에서는 지난해 11월 13일부터 12월 중순까지 고병원성 AI로 192마리의 흑두루미가 집단 폐사했다. 순천시 관계자는 “지난해 11월 이후 일본 이즈미 흑두루미 월동지에서 1351마리의 흑두루미가 고병원성 AI 감염으로 폐사했는데, 이를 피해 순천만으로 옮겨온 흑두루미 가운데 일부가 폐사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순천만 습지에서는 지난 겨울 3000여 마리의 흑두루미가 월동했는데, 이번 겨울에는 지난해 11월 21일 기준 전년의 3배가 넘는 9800여 마리까지 개체 수가 늘었다가 현재는 5000여 마리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연천군에서도 바짝 긴장했다. 두루미와 흑두루미가 월동지는 달라도 여름을 시베리아에서 함께 보내는 데다, 연천에도 간혹 흑두루미가 출현하기 때문이다. 백운기(전 한국조류학회장) 국립대구과학관 관장은 “국내에서 두루미류의 집단 AI 확진은 처음 있는 일이어서,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 전국 두루미 월동지에 비상이 걸렸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28일 경기도 연천군 민통선 내 두루미 월동지 빙애여울. 사진 이석우씨

지난달 28일 경기도 연천군 민통선 내 두루미 월동지 빙애여울. 사진 이석우씨

연천 임진강 두루미 월동지, 이번 겨울 AI 전무  

연천군과 지역 환경단체 등은 즉각적인 대응에 나섰다. 우선 많은 양의 먹이를 제한된 장소에 한꺼번에 공급하는 대규모 먹이 주기 행사부터 자제했다. 정기적으로 율무와 볍씨 등을 가져다 놓는 먹이터도 민통선 안팎 임진강변 일대 여러 곳으로 분산했다. AI 확산 방지를 위해 먹이 주기 행사를 중단해야 한다는 일부 지적을 수렴하면서도 희귀 조류의 종(種) 보존을 위해 분산형 먹이 주기를 지속한 것이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두루미들은 이번 겨울을 무사히 넘길 가능성이 커졌다. 이석우 연천임진강시민네트워크 대표는 “지난 4∼6일 연천 임진강 일대에서 개체 수를 조사한 결과 사상 최대 규모인 1600여 마리의 두루미와 재두루미가 관찰됐다”며 “지난해보다 월동 개체 수가 400여 마리 늘었고, 예년과 달리 민통선 바깥 임진강 일대에서도 500여 마리가 관찰됐다”고 소개했다.

지난달 28일 경기도 연천군 군남댐 하류 민통선 바깥 지역 임진강에서 발견된 두루미와 재두루미 무리. 사진 이석우씨

지난달 28일 경기도 연천군 군남댐 하류 민통선 바깥 지역 임진강에서 발견된 두루미와 재두루미 무리. 사진 이석우씨

이 대표에 따르면 먹이 주기가 자제된 이후 두루미의 서식지가 임진강 여울을 중심으로 민통선 안팎 임진강 일대의 율무밭과 여울 등지로 확대되고, 가족 단위의 소규모 움직임이 늘었다고 한다. 그는 “월동지에서의 밀집도가 완화되고 자생력이 개선되면서 AI 발생이 전무한 것으로 평가된다”고 설명했다.

지난 9일 경기도 연천군 중면 삼곶리 민통선 바깥 임진강변 두루미 먹이터에서 연천지속가능발전협의회 주관으로 열린 두루미 먹이주기 행사. 한 참석자가 율무를 뿌리고 있다. 사진 이석우씨

지난 9일 경기도 연천군 중면 삼곶리 민통선 바깥 임진강변 두루미 먹이터에서 연천지속가능발전협의회 주관으로 열린 두루미 먹이주기 행사. 한 참석자가 율무를 뿌리고 있다. 사진 이석우씨

학계도 같은 의견이었다. 백운기 관장은 “자연 상태에서 먹잇감이 부족한 멸종위기종인 두루미류의 종(種) 보존을 위해 먹이 주기는 지속해야 한다”며 “AI 확산 방지를 위해 월동지 한 곳에 집중적으로 밀집하지 않도록 먹이터를 여러 곳으로 분산해 운영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순천만도 1월 이후 흑두루미 AI 발생 멈춰  

순천시에서도 즉각 겨울 먹이터 분산·확대에 나섰고, 눈에 띄는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순천시 관계자는 “지난 11월 흑두루미 AI 발생 직후부터 먹이터를 기존의 1곳에서 4곳으로 확대해 매주 먹이터를 다른 곳으로 이동하며 흑두루미 서식지의 밀집도를 낮췄다”며 “이후 지난해 12월 20일 이후에는 AI 발생이 단 한건도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순천만을 찾은 흑두루미의 군무. 사진 순천시

순천만을 찾은 흑두루미의 군무. 사진 순천시

순천시는 이와 함께 흑두루미를 AI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보금자리 넓히기에도 나섰다. 시는 순천만 대대뜰에 운영 중인 흑두루미 희망농업단지 62㏊ 인근 인안뜰에도 109㏊ 규모의 단지를 조성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희망농업단지는 농지에서 볍씨를 거두지 않고 먹이로 사용하는 대신 농민에게 1㏊당 360만원의 지불금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농사는 떨어진 낱알을 먹는 새에게 해를 주지 않기 위해 친환경 방식으로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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