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에르도안 ‘박애주의’ 이미지 타격, 신오스만주의도 빨간불

중앙선데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827호 12면

지진에 흔들리는 튀르키예 대통령 리더십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이 지난 11일 튀르키예 남동부 디야바키르에서 강진 피해를 입은 주민들을 위로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이 지난 11일 튀르키예 남동부 디야바키르에서 강진 피해를 입은 주민들을 위로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 6일 발생한 튀르키예·시리아 강진 이후 국제사회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피해국들과의 친소 관계나 갈등 여부와 관계없이 너도나도 구조·구호와 인도적 지원에 앞장서고 있다는 점이다. BBC와 CNN 등에 따르면 최소 105개국이 다양한 방식으로 지진 피해자들을 돕기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비록 내전 중인 시리아에 대한 지원은 여러 문제로 인해 속도가 더딘 것으로 지적되지만 튀르키예 지원에는 역사·외교 문제로 다퉈온 나라들까지 적극 동참하고 있다. 비극적인 대재앙 앞에서 일단 갈등은 묻어둔 채 인도적 지원을 최우선시하는 모습이다.

이는 총리(2003~14년)와 대통령(2014년~현재)을 잇따라 지내며 경제 성장과 중견국 외교를 통해 튀르키예의 국제적 평판을 끌어올린 ‘스트롱맨’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69) 대통령의 외교 성과로도 평가할 수 있다. 튀르키예가 가입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와 미국·영국 등 회원국은 물론 나토 가입이 좌절된 유럽연합(EU) 회원국들도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와 이에 맞서는 우크라이나가 동시에 구조팀과 물자를 보내는 진풍경도 벌어졌다. 튀르키예가 병원을 짓고 지원했던 방글라데시 로힝야족 난민들까지 담요와 외투를 보내올 정도다.

관련기사

중견국 외교의 주도권을 놓고 튀르키예와 경쟁해온 인도의 나렌드라 모디 총리도 ‘작전명 도스트(힌디어와 튀르크어 모두 친구를 의미)’라는 이름의 대대적인 지원을 통해 ‘책임 있는 글로벌 국가’ 이미지를 극대화했다. 힌두스탄 타임스에 따르면 인도 공군이 운용하는 장거리 대형 전략수송기 C-17 11대 중 5대를 동원해 의료팀과 구호물자를 실어 날랐다.

주목할 점은 한·일 관계 못지않게 과거사·영토·민족 문제 등을 둘러싸고 튀르키예와 갈등을 빚어온 아르메니아·그리스·키프로스·불가리아 등도 신속하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는 사실이다. 특히 아르메니아가 눈에 띈다. 유로뉴스 등에 따르면 지난 11일 311㎞에 이르는 양국 국경이 1988년 아르메니아 대지진 당시 구호품 운송을 위해 일시 개방된 뒤 35년 만에 다시 열렸다. 아라랏 미르조얀 아르메니아 외무장관도 지난 15일 튀르키예 수도 앙카라를 방문해 메블뤼트 차우쇼을루 튀르키예 외무장관을 만났다.

BBC 등에 따르면 아르메니아는 100년 전 아르메니아 집단 학살을 둘러싼 역사 문제로 튀르키예와 오랫동안 갈등을 지속해 왔으며 현재도 미수교 상태다. 아르메니아는 튀르키예 전신인 오스만 튀르크가 19세기 말과 제1차 세계대전 중 기독교도 아르메니아인 60만~150만 명을 학살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지진에 따른 인도적 지원과 국경 개방이 양국 관계 정상화의 계기가 될 수 있을지 주목을 모으고 있다.

2018년 10월 이스탄불에서 발생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살해 사건을 둘러싸고 튀르키예와 충돌했던 사우디아라비아도 대대적인 지원에 나섰다. 사우디는 살만 국왕과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 겸 총리의 지시로 ‘킹살만 인도적 지원·구호 센터(KSRelief)’가 공군기를 동원해 튀르키예와 시리아에 구호물자를 공수했다. CNN에 따르면 2011년 시리아 내전이 시작된 이래 반군을 지원해온 사우디의 공군기가 시리아에 착륙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눈길을 끄는 건 사우디가 민간 모금 프로그램인 ‘사헴(기여)’을 가동했다는 점이다. 사헴 홈페이지에 따르면 165만여 명이 3억6700만 리얄(약 9800만 달러)을 기부해 조만간 1억 달러를 넘어설 전망이다. 이번 지진 피해자에 대한 민간 기부액으론 최대 규모다.

더욱 관심을 모으는 대목은 국외 쿠르드족과 관련한 에르도안의 강경 입장에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튀르키예 대통령실은 에르도안 대통령이 지난 14일 앙카라에서 이라크 쿠르드 자치정부의 네치르반 바르자니 대통령을 만났다고 발표했다. 자치정부는 지진 발생 몇 시간 뒤 바르자니 대통령의 동생인 마스로르 바르자니 총리가 이끄는 의료·구조·구호팀을 튀르키예에 파견했다.

튀르키예는 자국 내 쿠르드족 분리주의 단체인 쿠르드노동자당(PKK)이 활동한다는 이유로 지난해까지 이라크 북부에 공중·지상 공격을 가해 왔다. 시리아의 쿠르드민병대(YPG)와 시리아민주군(SDF)은 미국과 손잡고 테러 조직인 이슬람국가(IS) 퇴치에도 앞장섰지만 튀르키예는 이들이 PKK와 연대할 우려가 있다며 적대시 정책을 고수해 왔다. 이 때문에 미국과도 껄끄러운 관계를 지속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가운데 자치정부의 적극적인 구호와 바르자니 대통령의 앙카라 방문이 에르도안의 쿠르드족 정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국제사회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에르도안은 이번에 국제사회에 큰 빚을 졌다. 이 때문에 에르도안이 앞으로도 공세적인 신오스만주의와 튀르크 민족주의를 지속할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신오스만주의는 튀르키예가 중동·북아프리카(MENA)와 흑해 연안 등에서 과거 오스만 튀르크 제국 시절의 영향력을 회복하고 지정학적으로도 유럽과 중동 사이에서 독자 세력화를 추구한다는 이상이다. 에르도안은 국내에선 튀르크 민족주의를 앞세워 자국 동남부에 거주하는 쿠르드족을 억누르고 동화를 강요해 왔다.

문제는 오는 5월 14일로 예정된 대선과 총선에서 에르도안과 그가 이끄는 정의개발당(AKP)이 과연 정치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느냐다. 에르도안은 과거 이스탄불시장(1994~98년)과 국회의원(2003~14년)으로 활동하면서 빈민을 구제하고 어려운 일을 당한 주민을 돕고 위로하는 ‘풀뿌리 박애주의’ 활동으로 지지 세력을 넓혀 왔다. 하지만 이런 정치적 이력과 이미지를 가진 에르도안과 AKP가 이번 대지진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국민을 제대로 지키지도, 돕지도 못했다는 비난이 가중될 경우 그간 쌓아 올린 정치적 이미지가 한순간에 무너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물론 현재 에르도안에 대적할 만한 강력한 경쟁자가 딱히 없는 만큼 재선 가능성이 낮지는 않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대지진의 여파를 조기에 수습하지 못할 경우 재선에 성공한다 해도 이전과 같은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적잖다. 그럴 경우 동서양을 아우르는 튀르키예의 지정학적 이점과 그동안 축적한 중견국 외교의 성과도 더 이상 빛을 발하지 못할 공산이 크다.

에르도안은 올해 ‘상징 정치’를 극대화할 계획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원래 6월 18일이던 선거일도 첫 다당제 선거가 실시된 날을 기린다며 한 달을 당겼다. 게다가 올해 10월 29일은 1923년 아타튀르크(튀르키예의 아버지)로 불리는 국부 케말 파샤가 공화국을 세운 지 100년이 되는 날이다. 에르도안은 이런 역사적 상징을 앞세워 안으로는 권력을 더욱 공고히 하고 밖으로는 민주주의 국가와 권위주의 국가, 유럽과 중동·북아프리카(MENA) 사이에서 국제적 위상을 더욱 높일 구상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진으로 절망한 민심을 제대로 다독이지 못한다면 ‘박애주의자’ 에르도안의 이미지는 물론 중견국 튀르키예의 위상도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 역대급 대지진이 20년간 튀르키예를 이끌어온 ‘스트롱맨’ 에르도안에게도 결코 쉽지 않은 과제를 안겨준 셈이다.

채인택 전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tzschaeit@gmail.com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