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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매 추정가 25억…청빈의 상징 달항아리가 돈복 부른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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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7호 18면

조선 백자의 별난 진화

크리스티 경매에 나올 달항아리. [사진 크리스티]

크리스티 경매에 나올 달항아리. [사진 크리스티]

“달항아리 그림이 안 걸린 화랑이 거의 없더라.”

최근 몇 년간 우리나라 아트페어에 가본 사람이면 동의하는 말이다. 고미술계와 현대미술계에서 동시에 인기 많은 키워드가 이른바 ‘한국 미(美)의 대표’ 달항아리다. 세계적인 경매사 크리스티가 뉴욕 경매를 앞두고 22~24일 서울 프리뷰에 선보일 추정가 최고 25억원의 조선 백자 달항아리와 리움미술관이 28일 시작하는 ‘조선의 백자, 군자지향’에 전시할 걸작 달항아리들이 그러한 인기를 더욱 북돋울 전망이다. 그러나 ‘온유한 백색,’ ‘자연스러움,’ ‘청빈의 이상’으로 요약되는 기존 달항아리 미학과 달리 ‘재복(財福)을 불러오는 아이템’이라는 속설이 항간에 퍼지면서 달항아리와 그 그림의 인기가 과열로 치닫는다는 우려도 있다.

리움미술관, 28일부터 ‘조선의 백자’전

구본창의 사진 작품(2005~6). 리움미술관‘조선의 백자’에 나올 것으로 추정되는 오사카 미술관 달항아리(왼쪽)와 국보 달항아리 2007-1(오른쪽). [사진 구본창]

구본창의 사진 작품(2005~6). 리움미술관‘조선의 백자’에 나올 것으로 추정되는 오사카 미술관 달항아리(왼쪽)와 국보 달항아리 2007-1(오른쪽). [사진 구본창]

크리스티 코리아 삼청동 전시장에서 선보일 달항아리는 높이 45㎝가 넘는 큰 사이즈, 아름다운 유백색, 수리된 적 없는 보존 상태 등을 갖춰 “최근 10년간 경매에 나온 달항아리 중 가장 훌륭한 작품”으로 여겨진다. 일본의 개인이 소장하던 것으로 3월 21일 뉴욕 록펠러센터에서 경매에 오를 예정이다.

리움 전시에 나올 달항아리의 경우, 그 구체적인 숫자와 면면은 프리뷰 전까지 비공개다. 다만 미술관이 연초에 국보 10점, 보물 21점 등 “국가지정문화재 조선백자의 절반 이상”과 “우수한 한국 도자 컬렉션을 보유한 오사카 시립 동양도자미술관의 소장품 20여 점”이 전시에 포함된다고 밝힌 것으로 미루어 보아, 과거 리움에 전시되었던 국보 달항아리(2007-1)와 오사카의 사연 많은 달항아리가 출품될 가능성이 크다. 국보 달항아리는 높이 44㎝의 큰 사이즈와 풍만하고 균형 잡힌 형태가 특히 뛰어난 것으로 여겨진다. 오사카 달항아리는 일본 사찰에 침입한 절도범에 의해 300여 조각으로 깨졌다가 미술관에 기증돼 수년에 걸쳐 복원된 것으로 유명하다.

이렇게 일본인이 소장한 달항아리가 적지 않지만 다른 문화재와 달리 약탈의 가능성은 거의 없다.  20세기 중반까지 문화재라기보다는 17~18세기부터 만들어진 일상 용기의 한 종류로 여겨져서 쉽게 구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름도 ‘달항아리’가 아니라 그저 백자 항아리, 백자대호(白磁大壺) 등으로 불렸다. ‘달항아리’라는 서정적인 명칭은 현대미술 거장 김환기(1913~1974), 혹은 김환기의 절친이자 국립중앙박물관 관장이었던 미술사학자 최순우(1916~1984)가 창조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바로 이들이 달항아리 미학을 본격적으로 정립하기 시작한 선구자들이다.

그후 2000년 런던의 영국박물관(대영박물관)이 한국실을 개관하면서 주요 유물로서 18세기 조선 백자 달항아리를 ‘Moon Jar(달항아리)’라는 이름으로 내놓았고 그것이 유럽 문인·예술인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또한 2005년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이 개관전으로 ‘백자 달항아리전’을 열고 당시 문화재청장이었던 유홍준 교수가 달항아리를 “한국미의 극치”라고 평했다. 그리고 사진작가 구본창, 설치미술가 강익중 등 주요 현대미술가들이 달항아리를 모티프로 한 작품을 선보였다. 이로써 달항아리는 2000년대 들어서 ‘한국 미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았고, 대중의 인기까지 얻고 있다. 지난 12월에는 최영욱 작가의 달항아리 그림이 롯데홈쇼핑에 나와 완판되기도 했다.

외국 작가도 독특한 조형미에 반해

지난 12월 롯데홈쇼핑 최영욱 달항아리 그림 완판 모습. [사진 롯데홈쇼핑]

지난 12월 롯데홈쇼핑 최영욱 달항아리 그림 완판 모습. [사진 롯데홈쇼핑]

그런데 이러한 대중적 인기 배경에 대해 “달항아리의 아름다움에 반한 컬렉터도 많지만, 집에 두면 돈이 들어온다는 속설 때문에 달항아리 작품을 사는 사람도 많은 게 사실”이라고 익명을 요구한 한 아트딜러는 말했다. “부자 컬렉터도 조선시대 달항아리는 워낙 구하기 힘드니 이름난 현대 도예가의 달항아리를 산다. 그런데 현대 달항아리도 방탄소년단(BTS) 리더 RM이 좋아하는 권대섭 도예가 등의 작품은 워낙 가격이 높으니 일반 컬렉터는 그보다 싼 젊은 미술가 달항아리 그림을 산다. 더 주머니 사정 가벼운 이들은 달항아리 판화나 프린트를 구입한다.”

이렇듯 달항아리가 재복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것은 기존의 달항아리 미학을 생각하면 아이러니컬한 일이다. 달항아리에 대해 영국박물관은 “신(新)유학의 이상인 청빈의 구현”이라 했고 구본창 작가는 “마음을 비운 무욕의 아름다움”이라 했으며 스위스 문인 알랭 드 보통은 “겸허의 이상”이라 했다. 그러나 시중에서는 인터넷 쇼핑몰에서 “돈 들어오는 달항아리 그림” “부자 되는 달항아리 판화”가 판매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으며, 심지어 속설에서 재복의 상징으로 여겨진 황금두꺼비나 해바라기 그림을 달항아리에 입혀 만든 작품도 만들어지고 있다.

이에 대해 구본창 작가는 중앙SUNDAY에 이렇게 말했다. “달항아리는 비어 있는 느낌이면서 동시에 그만큼 많이 채울 수 있다는 느낌을 주는 볼륨감이 있다. 크고 둥그스름한 복덩이 같은 형태가 그 안에 행복과 행운을 채울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갖게 한다. 그러니 사람들이 세속적으로는 그 채움의 기대감을 물질과 연결해 돈이 들어온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달항아리는 소박하면서도 풍요로운 형태이므로 무엇이 정답이라고는 할 수 없다. 이렇게 여러 해석을 낳을 수 있는 달항아리의 독특한 조형미에 반해 외국 작가들도 달항아리를 제작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뉴욕타임스 T매거진은 다양한 재료로 달항아리 만드는 브루클린 작가들을 소개할 정도였다.

그러나 문제는 인기에 편승해 질 낮은 작품들이 양산되는 것이고, 구 작가도 그것에 우려를 표했다. “아트페어에 가면 거의 모든 화랑 부스에 달항아리 그림이 있는데, 수준이 떨어지는 것들도 많다. 달항아리, 나아가 조선 백자가 가지는 특유의 매력과 품격이 있는데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그 둥근 형태를 피상적으로 재현한 것들이 많고, 또 그저 유행에 따라 달항아리 그림을 걸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그걸 사간다. 타국의 사람들이 볼 때 한국 달항아리의 품격이 떨어질까 봐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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