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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없는 길을 찾아…30여년의 단편 8편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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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7호 21면

툰드라

툰드라

툰드라
강석경 지음

소설가 강석경이란 이름은 자동연상 기능처럼 그의 오래된 대표작을 떠올리게 한다. 1980년대 중반 발표돼 영화로도 만들어진 ‘숲속의 방’ 말이다. 그동안 우리는 얼마나 무심했던 걸까. 작가와 그의 세계에 대해 말이다.

그는 어디에 있었나. 작가의 말대로 세기가 바뀐 긴 세월 동안 그는 소설집을 낸 적 없었다. 87년 소설 ‘석양꽃’부터 지난해 말 작품 ‘툰드라’까지 8편의 단편을 묶은 30여 년 만의 소설집이다.

여기 실린 인물들의 사연과 삽화, 그들의 말과 행동을 그간의 작가 부재를 해명하는 알리바이로 삼아도 좋을 것이다. 가령 강석경은 ‘기나긴 길’의 화자인 희곡작가처럼 “살아 있다고 할 수 없는 무력감을 여행지에서 처음 겪”으며 “절망도 권태도 아닌 의지 박탈 상태”를 통과했는지도 모른다. 손쉬운 그래서 무책임한 상상력을 덧붙이자면, 글쓰기의 어려움 때문이다. 아니면 ‘나는 너무 멀리 왔을까’의 재연처럼, 견디기 어려운 겨울마저 받아들일 만한 계절이 되게 하는 경주에 묻혀 실종자처럼 지냈을 수도 있다.

8편을 관통하는 주제를 말해야 한다면 ‘길 없는 인생살이의 길 찾기’쯤 된다. 작품들 제목부터 그런 점을 내비친다. ‘오백 마일’ 역시 그렇다. 거리는 결국 통과해야 하는, 그러니까 살아내야 하는 인생에 대한 은유 아니겠나.

소설집의 여성들은 유교 국가 한국의 인습과 결혼 제도에 진저리를 치면서도 그 신봉자인 경우가 적지 않다. ‘오백 마일’의 인영은 상습 구타를 당하면서도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위해 감내하는 시어머니에 절망한 끝에 이혼 후 중국행을 택한다. ‘나는 너무 멀리 왔을까’의 급진 여성주의자 ‘오’는 남성 편력 백 명을 채운다고 공언하고 다녔으면서도 무의미한 악수 같은 잠자리 끝에 임신하자 결혼하자고 매달린다.

표제작 ‘툰드라’의 여성화자 주영이 그런 ‘오염’으로부터 가장 자유롭다. 유부남 치과 의사 승민과 몽골로 떠난 이별 여행에서 불륜 영화감독과 여배우를 질타하는 한국사회의 위선을 성토하기 바쁘다. 사랑에 걸려 넘어지면서도 끝내 주저앉지는 않는 여성들의 이야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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