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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기억] ‘숨비소리’ 처럼 긴 호흡으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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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7호 31면

‘좀녜’, 제주도 온평리, 2003년. ⓒ김흥구

‘좀녜’, 제주도 온평리, 2003년. ⓒ김흥구

‘좀녜(해녀의 본딧말)’가 떠오르고 있다. 검은 바탕을 사선으로 가르는 흰 줄은, 물 위에서 부둥켜안고 숨을 쉴 수 있는 테왁과 연결된 닻줄이다. 망망하고 어둔 바닷속에서 나아가야 할 방향을 가리키는 이 줄을 해녀들은 ‘생명줄’이라고 부른다. 그 생명줄이 너무도 희어서 먹먹하기까지 한 이 사진은, 2003년 아직 사진가라는 명칭을 얻기도 전인 20대의 청년 김흥구가 찍은 것이다.

“그냥 따라 들어갔어요. 물속에서의 모습을 보고 싶었거든요. 개헤엄을 치면서요. 그때는 어렸으니까.”

당시 사진학과 학생이었던 김흥구는, 수업이 끝나면 배를 타고 제주도로 건너가 주말을 꼬박 해녀들과 함께 생활하며 ‘바당 어멍(바다 어머니, 제주 방언)’들의 삶을 기록했다.

해산물을 건져 올리는 온평리의 어멍 해녀를 따라 물속으로 들어갔듯이, 밭으로 집으로 마을로 해녀들을 따라 들어갔다. 물질을 마치고 돌아와 혼자 늦은 끼니를 챙기는 모슬포의 어멍 해녀 옆에, 수압을 견디느라 얻은 귓병 때문에 약봉지를 털어 넣는 비양동의 할망 해녀 곁에, 비 오는 날에도 바다로 나가는 서천진동의 어멍 해녀들 무리 끝에 어린 김흥구가 있었다.

2003년, 여전히 재학생이던 김흥구의 사진 시리즈 ‘좀녜’가 기성 사진가들을 제치고 제1회 GEO-OLYMPUS 사진상 대상 수상작이 되었다. 그때의 수상으로 이른 나이에 당당히 ‘다큐멘터리 사진가’라 불리게 되었지만, 그것은 ‘좀녜’의 완결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더 깊이 따라 들어가고자 스쿠버다이빙을 배우고, 더 멀리 ‘물질 나간’ 원정해녀들을 찾아 일본을 드나들었다. 2016년에 ‘좀녜’를 전시로 책으로 세상에 내보이기까지, 그렇게 하나의 사진 시리즈를 완성하는 데 십수 년의 세월이 걸린 것이다.

고령화로 인해 머지않아 사라질 것이라는 예측대로 이미 ‘좀녜’ 사진 속 여러 해녀들이 세상을 떠났다. ‘개헤엄을 치며’ 그녀들을 따라 바닷속으로 뛰어들었던 청년도 어느새 장년이 되었고, 다큐멘터리 사진의 환경이 척박하기만 한 이 땅에서 곧고 힘든 걸음을 이어가는 중이다. 스무 살 그때로부터 이제까지, 또 앞으로의 ‘사진가 김흥구’를 응원하며 이 글을 쓴다.

박미경 류가헌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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