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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대지진 덮친 튀르키예·시리아의 비극에 답하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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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7호 26면

오동진의 시네마 역사

영화 1

영화 1

영화는 타인의 불행에 어떤 말을, 그리고 어떻게 할 수 있는가. 무엇보다 과연 말하는 게 옳은가. 아니면 오히려 침묵하는 것이 나은가. 2월 15일 현재 사망자 수가 합계 4만에 육박하는 튀르키예-시리아 접경 사이의 대지진을 보면서 착잡한 심정이 드는 걸 어쩔 수 없어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늘 분쟁과 내전으로 얼룩졌던 곳이었고, 고단한 인생이 이어지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주요 지진 도시 중 하나인 튀르키예 남부 아다나와 가지안테프 시(市) 사이에 있는 인지를리크란 곳에는 미군 공군기지가 있고 여기 역시 거의 파괴됐을 가능성이 높다. 이 미군 기지는 매우 중요한 거점인 바, 시리아-튀르키예-이라크 국경 지역을 오가며 활동하는 무슬림 극단주의자들에 대한 군사적 대응의 근거지이다. 한 마디로 미국의 대(對) 중동 지역 군사기지다.

미 대중동 군사 거점도 파괴 가능성

영화 2

영화 2

2015년 개빈 후드가 헬렌 미렌 등을 캐스팅 해 만든 ‘아이 인 더 스카이’는 튀르키예가 그간 얼마나 분쟁과 전쟁의 배후 혹은 당사자 역할을 했는지를 알 수 있게 해 준다. 영화가 놀라운 것은 일종의 군사첩보스릴러 장르임에도 이렇다 할 전투의 스펙터클을 제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요즘 현대전이 거의 드론 폭격기 중심의, 정밀 요격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새로운 전쟁의 시대가 열렸음을 그려 낸 작품이었다. 현대전의 공군 전투기 조종사는 폭격기에 타지 않는다. 그들은 미국 네바다 사막 지역에 조성돼 있는 공군 콘솔 기지 안에서 리모콘을 조종한다. 네바다 사막에 앉아 튀르키예에 있는 드론을 상공에 띄우고 레이더를 이용해 사령부가 지시하는 지역에 미사일을 발사한다. 사령부는 영국 런던에 있고 이 작전 참모부 안에는 십여개의 모니터가 설치돼 있어 전투 지역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감시 통제하게 돼있다. 영화 속 군사적 목표 지점은 아프리카 케냐의 한 지역. 알 카에다로 의심되는 테러리스트가 자살 테러를 모의 중인 상황이다.

튀르키예의 에르도안 대통령은 1994년 마흔살에 이스탄불시장에 당선된 이래 1999년 이즈미트 강진 당시 정부에 대한 비판 여론을 등에 업고 2003년 총리가 된 후 2014년 헌법을 개정해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현재까지 20년간 독재 정치를 이어 가고 있는 그는 종종 인권 문제를 국가 간 분쟁에 이용해서 빈축을 사고 있는데, 사우디 일간지 기자 카슈끄지가 튀르키예 내 사우디 영사관에서 참혹하게 살해당한 사건을 덮는 과정 등이 그랬다. 에르도안은 2016년 자작극설까지 퍼졌던 쿠데타를 일으켜 민주화를 요구하는 사람들을 투옥시키기도 했다. 이런 문제를 지적하는 여론이 미국 정가에서 일어나면 에르도안은 튀르키예 내 미군 드론 기지에 대한 폐쇄 위협으로 맞서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번 대지진의 비극을 에르도안 정부가 어떻게 수습하고 튀르키예 국민들과 세계 여러 나라들이 어떻게 함께 극복해 나갈지가 주목되는 건 그 때문이다.

영화 3

영화 3

이라크-이란-시리아 접경 국가들과 함께 쿠르드 민족에 대한 억압과 탄압, 그 고난의 삶들도 줄곧 영화에서 다루어지고 있다. 쿠르드 출신의 감독 바흐만 고바디가 2000년에 만든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은 한 마디로 비극의 서정시다. 튀르키예-이라크 국경 마을인 ‘바네’란 곳에 살며 밀수 일로 살아 가는 12살 소년 아윱과 이 어린 아이가 부양해야 할 4명의 동생들 이야기다. 동생들 중 하나는 당장 수술을 하지 않으면 목숨이 위태로울 지경이다. 왜 ‘취한 말들의 시간’일까. 아윱이 넘나드는 국경의 산악 지대는 극도로 험한 지역이라 말이나 노새조차 술을 먹이지 않으면 걸어가기 힘든 곳이기 때문이다.

이런 영화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쿠르드 민족의 호소를 줄곧 무시하고 심지어 배신해 왔다. IS와의 싸움에서 미국은 쿠르드 민병대를 초병으로 내세웠고, 이로 인해 2014년부터 2018년까지 4년간 쿠르드인 4만명이 사망했다.

영화 4

영화 4

시리아의 알 아사드 50년 독재정부와 싸우는 반정부군을 미국이 지원하면서 역시 쿠르드 족을 이용했는데, 그럴 때마다 매번 튀르키예-시리아-이라크-이란 접경 지역 어딘가 자치국가 건설에 대한 약속을 내걸었지만 매번 그것을 배신해 왔다. 튀르키예의 반대가 극심하기 때문이고, 전술한 바와 같이 미국은 튀르키예 내 군사기지 등 국가적 이해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얽히고 설키는 국제관계가 애먼 국민들, 민중들의 삶만 구렁텅이로 밀어 넣고 있다. 그 와중에 대지진 참사까지 벌어졌다.

지진피해 상황이 튀르키예 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꽤나 극심한 시리아에 대해서는 이래저래 더욱 할 말이 없다. 알 아사드 가문과 그들의 정당인 바트당이 지난 53년간 철권 독재정치를 일삼고 있고, 이로 인해 시리아는 지난 2011년부터 내전에 휩싸인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 내전의 중심 지역이 시리아 북부의 알레포이고 여기 역시 이번 지진 피해에서 자유롭지 못한 곳이다. 이 이야기를 담고 있는 영화가 2020년에 나와 해외 유수 영화제에서 비상한 관심을 모았던 불굴의 다큐멘터리 ‘사마에게’다.

영화 5

영화 5

‘사마에게’는 알레포에서 옥쇄를 각오하며 반정부 투쟁을 하던 학생운동 부부가 5년간의 군사 봉쇄를 뚫고 탈출에 성공하는 이야기다. 아내인 와드 알 카팁이 소형 디지털 카메라로 모든 것을 찍었으며, 봉쇄 속에서 낳은 아이가 바로 ‘사마’다. 러시아의 공습으로 폭탄이 터지는 현장(시리아 정부군을 지원하는 나라는 러시아와 이란이다), 눈앞에서 친구들이 죽어가는 장면, 어쩔 수 없이 심하게 흔들리고 뒤틀리는 디지털 영상들이 가감없이 담겨 있는데, 그게 그렇게 충격적일 수 없다.

지금 세상의 모든 난민 문제는 바로 이 시리아가 시작이며 알 아사드야 말로 원흉이다. 튀르키예 국경선을 타고 지중해를 거쳐 유럽으로 흘러 든 시리아 난민들이 유럽 각국의 극우 파시스트들에게 기회를 준 건 일종의 역설이다. 자국의 노동권을 싼 임금으로 위협하고 있다며 하층 계급들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마린 르펜, 독일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 등이 그것이다.

그래픽=김이랑 기자 kim.yirang@joins.com

그래픽=김이랑 기자 kim.yirang@joins.com

정치적 박해를 피해 시리아를 탈출하다 숱한 어린이들이 바다에 빠져 숨졌는데, 이는 화학무기로 자국의 아이들마저 살해한 정권의 악랄한 탄압을 피하다 벌어진 일이었다.

독재 정권 연장에 지진 이용할 우려

이 이야기를 기이한 코미디로 담고 있는 작품이 바로 ‘굿 포스트맨(The good postman)’이다. 이 영화는 국내에서 극히 일부의 관객들만이 본 작품이다. 불가리아-튀르키예 접경 마을에 살아 가는 한 마음씨 착한 우체부 이야기다. 주민 47명의 워낙 작은 마을이라 우체부 외에 국경 감시 일까지 하고 살아가는 초로의 늙은 남자는 어느 날 시리아 난민들이 밀폐된 차에서 질식사한 사건을 뉴스를 통해 보고는 큰 자각을 하게 된다. 난민들을 국경 밖으로 밀어 내기보다, 자신의 마을에 정착시키면 마을에 아이들 웃음소리도 들리고 좋지 않겠냐고 생각한다. 하지만 곧 마을 사람들의 반대에 부딪힌다. 현직 여성 시장은 난민이고 뭐고 허접한 사무실에 앉아서 라디오를 들으며 손톱이나 다듬으며 지낸다. 주인공 우체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직접 시장 선거에 나서기로 한다.

여성감독 나딘 라바키가 만든 2019년의 역작 ‘가버나움’은 눈물과 분노 없이 볼 수 없는 작품이다.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살아가는 시리아 난민 가족의 아이이자 12살짜리인 주인공 소년이, 자신의 여동생이 헐값에 팔려 나가고 짐승 같은 남자에게 유린 당하자 그를 칼로 찌르고 도망을 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어린 누이는 바로 직전 초경을 했으며 오빠는 그런 아이에게 자신의 러닝 셔츠로 생리대를 만들어 줬을 정도로 성숙한 꼬마였다. 시리아의 비극이 얼마나 세상을 걱정시키고 우울하게 하는지를 알려주는 영화다. 시리아가 이 지진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알 아사드 정권은 이걸 오히려 자신의 독재 정권 연장에 이용하려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 국제사회가 보내는 우려의 시각이다.

비극은 엎치고 덮치는 형국일 때가 많다. 무엇보다 재난은 매우 계급적이며 반(反)민중적이다. 튀르키예와 시리아의 비극은 그 어떤 정치적 군사적 참화에 앞서고 있다. 시리아의 난민 문제는 더욱 격화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튀르키예의 정치적 상황도 악화될 것이다. 사람들의 연대가 필요하다. 도움의 손길 이전에 관심의 증폭이 필요하다. 영화가 그런 점에서 역할을 할 것이다. 적어도 영화는 자신의 역할에 대해 그렇게 믿고 있다. 당신은 영화를 믿지 않겠지만.

오동진 영화평론가 ohdjin11@naver.com 연합뉴스·YTN에서 기자 생활을 했고  이후 영화주간지 ‘FILM2.0’ 창간, ‘씨네버스’ 편집장을 역임했다.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컨텐츠필름마켓 위원장을 지냈다. 『사랑은 혁명처럼 혁명은 영화처럼』 등 평론서와  에세이 『영화, 그곳에 가고 싶다』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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