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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직장 관두고 요리 10년, 행복을 전염시키는 맛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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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7호 24면

이택희의 맛따라기

삼겹살을 조리하는 신민섭 셰프. 김상선 기자

삼겹살을 조리하는 신민섭 셰프. 김상선 기자

현재 삶에 만족하는지, 사는 게 행복한지 먼저 물었다. 그는 누구나 가고 싶어하는 명문대학을 나왔다. 2008년 졸업하면서 남들이 부러워하는 무선통신 회사에 들어갔다. 그러나 6년 만에 회사를 나와 음식점을 차렸다. 홍대 앞에서 시작해 2021년 5월 자리를 한 번 옮겼지만, 조금씩 성장하면서 같은 상호로 올해 열 살이 된다. 보기 드문 전업이 놀라웠는데, 첫 도전이 실패하지 않고 코로나19 팬데믹까지 겪는 긴 세월을 견뎌낸 뚝심도 대견해서 그가 어떻게 사는지 궁금했다.

서울 용산역 근처의 비스트로 ‘루블랑(Loup Blanc)’ 주인 신민섭(41) 셰프. 그는 밝은 표정으로 “만족하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재미있는 일을 하니 만족하고, 내가 생각하고 결정한 대로 내 삶을 살아가니 행복하다”는 것이다. 직장에서는 늘 수동적인 게 싫었다. 스트레스를 풀려고 이것저것 해보다 발견한 게 요리 취미다. 취미를 생업으로 바꿨다. 본인이 정말 원하는 걸 스스로 선택하고 스스로 번 돈으로 생애 처음 도모한 삶의 전환이 순조로우니 만족하고 행복하다는 설명이다.

한 걸음 더 들어가서 경제 사정은 어떤지 물었다. 남의 살림 걱정까지 할 일은 아니지만, 오래 지켜본 친근감으로 객기를 좀 부렸다. 우여곡절이 없지 않았지만, 풍족하지는 않아도 부부가 사는 데 크게 모자라지도 않다고 한다. 그러면 된 거 아닐까.

‘24시간 수비드 삼겹살’ 인기 끌어

이 충만한 만족감과 행복한 기운은 음식에 어떤 맛으로 스며 있을까. 5가지 음식을 맛봤다.

서울 용산구 한강로 3가에 있는 비스트로 ‘루블랑’의 대표 메뉴인 ‘수비드 삼겹살’. 김상선 기자

서울 용산구 한강로 3가에 있는 비스트로 ‘루블랑’의 대표 메뉴인 ‘수비드 삼겹살’. 김상선 기자

▶24시간 수비드 삼겹살 셰프 추천 대표 메뉴이고, 손님들이 가장 많이 찾는 음식이다. 통 삼겹살 300g을 진공으로 포장해 섭씨 70~71도에서 24시간 익히고, 숯불 오븐에서 센 불로 구워 마무리한다. 오븐 굽기는 훈연 향을 입히고 겉을 바삭하게 해(마이야르 반응) 느끼함을 잡으려는 것이다. 접시에 담을 때는 감자퓌레, 블루베리 콩포트, 토마토 바질 콩피, 통 겨자 등 4가지 소스와 구운 아스파라거스를 곁들인다. 소스는 삼겹살의 느끼한 맛을 커버하려고 단맛, 신맛, 짠맛, 매운맛을 고르게 구성했다. 고기는 무척 차지다. 구운 것과 전혀 다르게 부드럽고 탄력 있다. 살이 퍽퍽하거나 느끼하다는 느낌은 없다. 다양한 소스와도 잘 어울린다. 요리사의 행복이 전염되는 듯한 맛이다.

▶포르타벨라카르파치오 포르타벨라는 야생 송이버섯 향과 소고기 맛이 난다 해서 서양에서 널리 쓰는 버섯이다. 국내에서는 ‘큰송이버섯’이라는 이름으로 원주 문막의 한 농원에서만 재배한다. 신선한 포르타벨라 버섯을 얇게 저미고, 버섯과 견과류를 갈아 올리브 오일로 갠 페스토 위에 차곡차곡 올린다. 버섯에 올리브 오일을 살짝 뿌리며 접시에 봉긋하게 쌓는다. 맨 위에는 차이브를 다져 뿌린다. 버섯은 정말 고기 같은 감칠맛이 있었다. 소스를 곁들이자 맛이 훨씬 화려하고 진해졌다. 아주 재미있는 버섯을 알게 됐다.

피티비에 스타일의 비프 웰링턴. 김상선 기자

피티비에 스타일의 비프 웰링턴. 김상선 기자

▶피티비에 스타일의 비프 웰링턴 동그랗고 두툼하게 자른 채끝등심 위에 블루 도베르뉴 치즈를 덮고 감자 도피누아즈를 올려 페이스트리로 감싸 투구 모양으로 빚은 다음 고기가 미디엄으로 익을 정도로 구웠다. 감자 도피누아즈는 얇게 썬 감자를 소금·후추로 간을 하고 켜켜이 쌓아 동그랗게 모양을 만들어 살짝 익힌 것이다. 구운 비프 웰링턴은 세로로 반 잘라 접시에 올리고 데미그라스 소스를 베이스로 매콤한 맛을 더한 아메리칸 소스를 담는다. 그 위에 트뤼프 향을 가미한 하얀 베샤멜 소스를 점점이 더한다. 먹을 때는 비프 웰링턴을 소스 위에 뉘어 적당한 크기로 잘라서 먹는다. 고기·감자·페이스트리와 소스가 이리저리 어우러지면서 내는 향·맛·질감이 풍성하고, 그 변주가 다채롭다. 손이 많이 가는 만큼 맛도 깊어지는 듯하다.

칡소 삼각 살에 통겨자를 섞어 무친 타르타르 따땡. 김상선 기자

칡소 삼각 살에 통겨자를 섞어 무친 타르타르 따땡. 김상선 기자

▶화식(火食) 칡소 타르타르 따땡 충남 아산 ‘아침목장’에서 쇠죽 끓여 먹이며 키운 칡소 삼각살에 통 겨자를 섞어 무친 타르타르를 뒤집어 놓은 브리오슈 버거 번에 담아 내온다. 아보카도를 깍둑 썰어 올리고 오징어 먹물 튀일을 몇장 꽂아 장식했다. 타르타르는 서양식 육회다. 따땡은 다 익으면 접시를 덮고 팬을 뒤집어 그릇에 옮기는 사과 타르트 방식을 발견한 따땡 자매의 이름을 빌려 브리오슈를 뒤집어서 타르타르를 담은 이 음식 이름에 썼다. 삼각살은 우둔 아래 뒷다리 설도의 일부다. 편견이겠지만, 소고기 타르타르는 먹을 때마다 한식 육회보다 맛이 낯선 느낌이다.

와인에 소 양지를 졸이듯 찐 뵈프부르기뇽. 김상선 기자

와인에 소 양지를 졸이듯 찐 뵈프부르기뇽. 김상선 기자

▶뵈프부르기뇽 부르고뉴 방식의 소고기찜. 양지나 사태고기를 와인과 육수로 졸이듯 찌는 요리다. 실제 음식도 한식 사태찜과 비슷했다. 루블랑 메뉴 가운데 가정에서도 해 먹을 만한 음식 추천을 요청하자 신 셰프는 주저 없이 뵈프부르기뇽을 권했다. 그의 레시피는 다음과 같다.

시간 준비 20분, 양념에 재우기 3시간, 조리 2시간 15분

재료 소 양지 800g(큰 토막), 레드 와인 4.5컵, 코냑 3큰술, 타임 줄기 2개, 으깬 마늘 4쪽, 해바라기 씨 기름 0.5컵, 밀가루 2큰술, 양지 육수 2.5컵, 부케가르니 1개, 당근 2개, 양파 1개, 양송이버섯 100g, 두꺼운 베이컨 3분의 2 컵, 다진 파슬리 잎 2큰술, 소금, 후추, 크림드 매시 포테이토.

조리 ①소고기에 와인, 코냑, 타임, 마늘을 섞고 밀봉해서 냉장고에 3시간 이상 재운 다음 건져 물기를 제거한 후 소금·후추로 살짝 간을 한다. ②기름을 두르고 중불로 달군 냄비에서 고기 겉을 갈색으로 익히고, 밀가루를 체로 쳐서 고기에 뿌린 후 2~3분 더 익힌다. ③준비한 육수와 고기 재운 양념 물을 넣고 끓이다가 부케가르니를 넣고 중약불로 낮춘 후 거품을 걷어낸다. ④가끔 저어주면서 거품을 걷어내고, 뚜껑을 반쯤 덮어서 1시간 45분 정도 끓인다. ⑤마무리 50분쯤 전에 다른 팬에 기름을 두르고 뜨겁게 달군 뒤 당근·양파를 갈색으로 익혀서 끓는 국물에 넣는다. ⑥고기가 다 익어갈 무렵, 다른 팬에 오일을 두르고 버섯과 베이컨을 볶아 국물에 넣는다. ⑦소금·후추로 간을 맞추고 파슬리를 넣어 잘 섞은 다음 매시 포테이토를 곁들인다.

저녁엔 테이블마다 와인 주문 필수

그의 음식은 전반적으로 순수하고 정직했다. 맛은 순하고 부드럽다. ‘하얀 늑대’라는 상호의 색조와 공명하는 맛이다. 개업을 준비하면서 상호를 고민할 때 늑대를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를 봤다. 늑대가 포식자이지만 잡아먹기만 하는 게 아니라 생태계 선순환에 필요한 생명체인 걸 알았다. 자신이 펼칠 공간도 사회 생태계에 선한 기여를 하는 곳이 됐으면 좋겠다는 염원을 담아 늑대(Loup)로 정했다. 선함을 표현하려고 하얀색(Blanc)을 입혔다.

루블랑은 점심에는 프랑스 가정식 단품을 내고, 저녁은 와인 중심 비스트로로 운영한다. 저녁에는 테이블마다 와인 1병은 주문해야 한다. 7만~150만원 가격대에 350여 가지 와인을 갖추고 있다.

“시작하는 데 나이는 상관없다. 시작할 수 있다는 마음만 있으면 언제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신 셰프는 또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고 있다. 요리 10년을 결산하는 요리책을 내는 꿈이다.

이택희 음식문화 이야기꾼 hahnon2@naver.com 전 중앙일보 기자. 늘 열심히 먹고 마시고 여행한다. 한국 음식문화 동향 관찰이 관심사다. 2018년 신문사 퇴직 후 한동안 자유인으로 지내다가 현재는 경희대 특임교수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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