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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팀 연습경기 1등에 아반떼 선물…지원-성적 환상의 콜라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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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7호 25면

[스포츠 오디세이] 현대차에 올라탄 태극양궁

도쿄올림픽 여자 단체 금 [연합뉴스]

도쿄올림픽 여자 단체 금 [연합뉴스]

‘대한민국 1등이 세계 1등’. 듣기만 해도 기분 좋은 말이다. 스포츠에서는 양궁이 그 왕관을 쓰고 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양궁 단체전이 채택된 이후 한국 여자 선수들은 9회 연속 금메달을 따냈다. 지금까지 올림픽 양궁에서 한국이 딴 금메달만 27개로 2위 미국(16개)을 크게 앞선다.

한국 양궁이 왜 강한지에 대한 연구와 분석은 산처럼 쌓여 있다. 양궁은 강하기만 할 뿐만 아니라 투명하고 모범적이기까지 하다. ‘사건 사고의 요람’ 쇼트트랙을 비롯해 온갖 비리와 추문이 끊이지 않는 종목들을 보면서 사람들은 “양궁만큼만 하라”고 말한다.

대한민국 양궁은 현대자동차그룹이 이끌고 있다. 정몽구 명예회장이 1985년부터 13년간 대한양궁협회 회장을 맡았고, 아들 정의선 회장이 2005년부터 현재까지 양궁협회를 지키고 있다. 국내 최고 기업의 든든한 지원 아래 양궁은 외풍 없이 순항하고 있다. 하지만 양궁인의 끊임없는 혁신 노력이 없었다면 수십 년간 세계 최고를 지킬 수 없었을 것이다.

양궁 대회가 열리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가는 장영술 대한양궁협회 부회장. [사진 대한양궁협회]

양궁 대회가 열리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가는 장영술 대한양궁협회 부회장. [사진 대한양궁협회]

그래서 ‘한국 양궁의 대부’ 장영술 양궁협회 부회장을 만나기로 했다. 그는 1996 애틀랜타부터 2012 런던까지 5회 연속 올림픽대표팀 감독을 역임했고, 그 후 양궁협회 전무와 부회장으로서 ‘최강 양궁’을 진두지휘했다.

양궁 지도자·심판 강습회가 열리고 있는 경북 문경의 STX연수원에서 만난 장 부회장은 “내가 드러나는 걸 원치 않는다”며 사진 촬영도 마다했다.

윈앤윈 활·파이빅스 과녁 국산이 세계 1등

양궁은 올림픽 금메달 따는 것보다 국가대표 되는 게 더 힘들다는데.
“2021년 열린 도쿄 올림픽에서 사상 첫 3관왕에 오른 안산 선수도 후반기 선발전에서 탈락했다. 다음해 봄에야 대표팀에 들어올 수 있었다. 양궁에는 금수저도 없고 흙수저도 없다. 천하의 기보배 아니라 기보배 할아버지라도 자기관리 못해서 떨어지면 나가야 한다. 요즘 MZ세대가 가장 목말라하고, 분개하는 게 기회의 공정 아닌가. 국가대표로 뽑히기까지 다섯 차례 선발전에서 쏘는 화살만 4000개다.”
서울대 양궁 강의에 기보배 선수가 강사로 들어간다고 해서 수강신청 전쟁이 있었다던데.
“서울대에서 양궁 과목 개설한 지 30년이 넘었고 원래부터 인기가 높았다(웃음). 나도 3년 동안 강의를 맡았는데 정규과목 신청자가 너무 많아 계절학기에 세 강좌를 따로 만들 정도였다. 처음에 5m 앞에서 활을 쏘다가 점차 거리를 늘리고, 학기말에는 제대로 된 사선에서 경기를 치르게 했다. 실전의 긴장감을 느껴보고, 룰을 지키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우치도록 했다.”
양궁이 어떤 쪽으로 변화해 왔나.
“1984년 LA 올림픽 때는 288발로 승부를 가렸다. 누구나 잘 쏘는 선수가 이겼다. 88년 서울 올림픽은 36발로 바뀌었고, 지금은 세트당 3발로 승부를 가린다. 스포츠는 예측 불가능하고 극적인 뒤집기도 있어야 중계를 보는 맛이 난다. 올림픽 금메달 독식하는 한국을 견제하기 위해 경기 방식을 바꿨다? 그런 건 0.1%도 없다. 세계양궁연맹도 올림픽에서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썼고, 그 덕에 후발 국가에게도 기회가 온 것이다.”
도쿄 올림픽 경기장에서 엄지를 치켜들며 환호하는 정의선 양궁협회 회장. [사진 대한양궁협회]

도쿄 올림픽 경기장에서 엄지를 치켜들며 환호하는 정의선 양궁협회 회장. [사진 대한양궁협회]

양궁은 올림픽 종목인 리커브와 올림픽 진입을 노리는 컴파운드로 나뉜다. 컴파운드는 활에 도르래를 달아 비전문가도 손쉽게 즐기도록 만들었다. 지구촌 양궁 인구 중 70~80%가 컴파운드를 쓴다고 한다. 최근 대한양궁협회가 리오 와일드(미국)를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해 화제가 됐다.

컴파운드 대표팀에 미 감독을 뽑았다.
“리커브 종목은 우리가 부동의 세계 1위지만 컴파운드는 선수층이 얇다. 지난해 양궁 등록선수 2263명 중 컴파운드는 175명밖에 안 된다. 세계대회 나가서 1등 한 적도 있는데 굳이 외국인을 뽑아야 되냐는 목소리도 있었다. 하지만 회장님은 단호했다. ‘전기차가 대세가 되면 내연기관 자동차가 소멸하는 건 시간문제다. 20년 뒤에 컴파운드만 남고 리커브가 없어지면 어떻게 되겠나. 세계 최고 지도자를 모셔서 배울 건 배우고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하셨다.”

정의선 회장, 연습경기 때 아반떼 선물도

‘한국 1등=세계 1등’의 파급효과는?
“토종 활 메이커 윈앤윈(WIN&WIN)은 호이트(미국)를 제치고 세계 최고 양궁 브랜드가 됐다. 올림픽 양궁 표적지는 국산인 파이빅스가 독점 제공한다. 우리 지도자들이 각국 대표팀을 맡아 좋은 성적을 올리는 것도 한국 양궁과 한국인의 우수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 협회가 만든 양궁 교육 영상은 질이 높기로 유명한데 영어 자막을 넣어 누구나 퍼갈 수 있게 했다. ‘노하우 유출 아니냐’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대승적으로 결단을 내렸다. 그 대신 우리는 세계 정상을 지키기 위해 어마어마한 노력을 한다.”
어느 정도 노력을 하는지 예를 들자면?
“나는 휴대폰에 ‘준비에 실패한 것은 실패를 준비하는 것’라고 써 놨다. 경기장 기온, 습도, 풍향, 풍속은 기본이고 관중의 돌출행동과 미디어의 움직임까지 예측하고 준비했다. 도쿄 올림픽에서는 TV 카메라가 우리 선수들을 근접 촬영할 거라고 예상했다. 올림픽에서 깨지지 않고 있는 연속 우승 기록 중 하나가 여자양궁 단체전이니까. 그래서 올림픽 최종선발전을 처음으로 TV 중계했다. 각 팀에서 난리가 났지만 ‘준비 안 하면 진다’고 설득했다. 역시나 도쿄에서 안산이 활 쏘는 순간 카메라가 1m 앞에서 근접 촬영했다. 미리 대비한 덕분에 우리는 여자단체 9연속 금메달을 차지했다.”
대표팀 운영 매뉴얼이 700페이지가 넘는다고 들었다.
“전지훈련이나 대회를 위해 해외를 가면 호텔에 호실별 투숙자 명단을 미리 통보해야 한다. 호텔 로비에서 우왕좌왕할 이유도 시간도 없다. 체력측정을 간다면 여자 선수는 무슨 옷을 입고, 어떤 분야를 어떻게 측정할지도 정해놓는다. 제로 디펙트(zero-defect·무결점)로 준비하지 않으면 올림픽 금메달 못 딴다. 물은 100도에서 끓지만 99도까지는 끓지 않는다.”

한국 양궁이 세계 정상을 지키는 데 현대자동차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든든한 지원으로 지도자는 비리나 부정에 얽히지 않고, 선수들은 훈련과 경기력 향상에만 집중할 수 있다. 양궁 대표팀의 경기력을 올리는 데 현대자동차연구소가 기여한 바도 크다.

올림픽에서 쓰는 화살은 대부분 미국의 이스턴 제품이다. 그런데 화살마다 미세한 차이가 있고 기온이나 습도에 따라 변형도 생긴다. 2008 베이징 올림픽 때는 화살이 부러진 적도 있었다. 현대자동차에서 우리 선수들이 쓰는 화살에 대해 비파괴검사를 하고, 슈팅 머신을 개발해 품질이 균질한 화살을 고를 수 있도록 해 줬다. 선수들 손 모양 본을 뜬 뒤 각자 손에 꼭 맞는 그립을 3D 프린터로 제작해 주기도 했다.

정의선 회장의 양궁 사랑이 남다른 것 같은데.
“낯간지럽지만 얘기를 해야겠다. 회장님은 드러나지 않지만 정말 세심하게 선수들을 챙긴다. 올림픽과 주요 국제대회에서는 관중석 땡볕 아래서 응원한다. 도쿄 올림픽 때는 선수촌 식사와 별도로 선수단의 10끼 메뉴를 직접 챙기셨다. 삼계탕을 보온병에 넣어서 전달한다는 얘기를 듣고는 ‘뚝배기 같은 데 끓여서 먹을 수 있도록 해 보자’고 하셨다. 미얀마 전지훈련지에 1박2일 깜짝 방문하셔서 ‘젊은 친구들이 좋아할 예쁜 차가 나왔다’며 자체 연습경기에서 1등 한 선수에게 신형 아반떼를 선물하시기도 했다.”
양궁인들은 복이 많은 것 같다.
“물론이다. 명예회장님과 회장님이 대를 이어 양궁을 이끌어 주신 건 양궁인으로서 진심으로 감사할 일이다. 회장님이 양궁에 진심이다 보니 그 마음이 전염되는 것 같다. 협회 직원들도 지도자와 선수들에게 진심을 다하는 게 보인다. 지도자·심판 강습회 교재에 뭐가 묻었다고 하나하나 닦아 놓더라.”

장 부회장은 ‘감사와 감동의 도미노’가 한국 양궁의 보이지 않는 힘이라고 했다.

현대차-양궁협회, 경기력·경제력·기술력 어우러져 질주

김도균 경희대 교수(스포츠마케팅)

김도균 경희대 교수(스포츠마케팅)

한국 양궁이 세계 최강이 된 건 현대자동차그룹의 지원이 가장 큰 동력임은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면 현대는 왜 40년 동안 양궁을 키워주고 뒷바라지했을까. 서로 주고받는 게 확실한 윈-윈 게임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동이족(東夷族)의 활쏘기 DNA는 이미 검증돼 있다. 양궁은 심판이나 다른 외부 요인이 개입할 여지가 없어 오로지 실력으로 승부를 내는 종목이다. 양궁인들은 철저하고 투명한 경쟁 시스템으로 국가대표를 선발해 올림픽을 비롯한 국제 대회에서 탁월한 성적을 냈다. 현대는 확실한 지원과 성과 보상 시스템으로 보답했다.

한국 양궁의 기술력도 큰 힘이 됐다. 양궁 선수 출신이 만든 윈앤윈이나 파이빅스 같은 토종 브랜드의 경쟁력이 뛰어났다. 기술의 속도가 성적의 속도를 앞지른 것이다. ‘1등’ ‘원조’의 프리미엄은 쉽게 넘어설 수 없다.

종목의 전통도 큰 힘이다. ‘올림픽 금보다 어려운 태극마크’를 목표로 하고, 국가대표가 되면 당연히 올림픽 금메달을 위해 훈련하는 선수들의 마음가짐이 타 종목과 같을 수는 없다.

‘현대차에 올라탄 태극궁사’는 대기업과 스포츠 종목의 모범적인 콜라보 사례로 꼽을 만하다. 여기에는 경기력·경제력·기술력과 투명성·공정성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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