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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장사’ 은행 공공재 논란 점화, 당국 과도한 규제 우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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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7호 10면

도마에 오른 은행 ‘돈 잔치’

그래픽=김이랑 기자 kim.yirang@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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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통신 분야는 공공재적 성격이 강하고 과점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정부의 특허사업이다. 서민 가계에 큰 영향을 미치는 만큼 고통 분담에 참여해달라.” (윤석열 대통령)

“어려운 시기에 일부 고위 임원 성과급이 최소 수억원 이상 된다는 것은 국민적 공감대를 얻기 어렵다. 유동성 악화시기에 당국과 타 금융권이 도와준 적이 있는데, 이를 오롯이 해당 회사에 임원로 공로로 돌리기에 앞서 구조적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최근 은행을 향한 당국과 여론의 눈총이 따갑다. 역대급 성과급 파티 소식이 도화선이 됐다.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해 5대(KB국민·우리·신한·하나·농협) 시중은행의 성과급 총액은 1조3823억원에 이른다. 전년 대비 성과급 총액이 무려 35%나 늘어났다. 1인당 최고 성과급은 최고 15억7800만원에 달하기도 했다. 퇴직자들에게도 목돈을 두둑히 챙겨줬다. 최근 신한·KB국민·우리은행 등이 발표한 지난해 4분기 실적에 따르면, 각 은행은 4분기 직원의 희망퇴직 비용으로 1인당 3억4400만원~4억4300만원을 책정했다.

“정부 규제, 코리아 디스카운트 원인”

고금리로 기업·가계 고통이 늘어난 요즘 은행들이 나홀로 ‘돈 잔치’를 벌였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은 시민들이 서울시내 한 은행 현금인출기를 이용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고금리로 기업·가계 고통이 늘어난 요즘 은행들이 나홀로 ‘돈 잔치’를 벌였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은 시민들이 서울시내 한 은행 현금인출기를 이용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이에 대한 비난 여론이 커지는 가운데 윤 대통령은 “은행은 공공재적 성격이 있다”라고 못 박았다. 은행이 손쉽게 달콤한 과실을 독차지하지 않도록 ‘과점 체제’를 깨고 시장을 완전 경쟁 체제로 바꾸는 방안을 검토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5대 은행의 국내 예금·대출 시장 점유율은 60~70% 수준에 이른다. 16일에는 은행의 공공성 확보를 적시한 입법안도 나왔다. 김희곤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은행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하고, 총칙 성격의 1조에 “금융시장의 안정을 추구하고 은행의 공공성을 확보함으로써 국민경제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라며 은행의 공공성을 명시하는 내용을 담았다.

은행들은 서둘러 ‘10조 사회환원 대책’을 내고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민심은 여전히 싸늘하다. 사회공헌 공약도 기존 취약계층 지원 방안을 부풀려 생색내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비판으로 번지고 있다. 은행은 왜 공공의 적(?)이 됐을까.

연일 쏟아지는 은행권에 대한 질타의 배경엔, 경제 위기 국면에 은행권이 나홀로 배를 불렸다는 비판 여론이 자리잡고 있다. “대출 받은 국민들 주머니는 텅텅 비는데, 은행인지 고리대금업자인지는 돈방석에 앉아 성과급 잔치하네.” “모럴해저드라고 할 만도 하지. 고객들 등쳐서 영업 이익이 난 거지, 실력으로 노력해서 이익을 낸 건 아니잖아.” “허가낸 도둑을 잡아주세요.” 최근 꼬리를 물고 터져나오는 비난의 목소리들엔, 국민의 고통이 커지는 가운데 ‘이자 장사’로 막대한 수익을 남긴 것에 대한 분노가 담겨있다. 지난해 5대 은행이 거둬들인 이자수익은 40조원에 달한다. 전년보다 20% 넘게 증가했다. 이러한 은행 수익의 대부분이 이자수익에 전적으로 기댄 구조라는 점도 비난을 키우는 대목이다. 지난해 신한은행의 총 영업이익 중 이자이익 비율은 96.2%에 달했다. 수수료나 자문료 등 비이자수익은 고작 4%도 안된다는 의미다. 다른 은행들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KB국민은행 96.2%, 하나은행 94.3%, 우리은행 90.9% 수준이다.

그래픽=김이랑 기자 kim.yirang@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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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우리나라 은행들의 이자수익 의존 비중이 과도하게 높다”며 “저금리시대에 비이자수익을 늘리려던 노력을 하던 은행권이 금리 인상기를 맞아 다시 이자장사에 치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내 금융권의 과도한 이자 수익 의존도는 글로벌 금융그룹과 견줘보면 차이가 상당함을 알 수 있다. 한국금융연구원이 발표한 2021년 말 기준 7개 은행그룹(KB국민·우리·신한·하나·BNK·DGB·JB)의 총이익 중 이자이익이 차지하는 비중은 81.8%, 글로벌 100대 금융회사의 비이자이익 비중은 40.8%였다.

지난해 예대금리차(대출금리와 예금 금리 차이)의 확대도 반발을 초래한 원인이다. 예금 이자 인상 폭보다 대출 이자를 더 많이 올려받았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어서다. 대출금리 폭탄을 맞은 서민들의 불만을 야기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기준금리를 연 1.00%에서 3.25%로 7차례  인상했다. 이에 따른 시장금리 상승 여파로 잔액 기준 은행 예대금리차는 2021년 12월 2.21%포인트에서 지난해 12월엔 2.55%포인트로 벌어졌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은행은 정부의 인가를 바탕으로 과점 형태로 수익을 올리고 있기에 금리 급등기엔 서민들의 이자부담을 낮춰주는 방안을 강구해야 할 사회적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 기준금리 인상이 가계대출에 미치는 영향은 한국과 미국이 크게 달랐던 것으로 나타났다. 신용상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지난해 10월 말 기준 1년간 국내 기준금리가 2.25%포인트 인상되는 동안 국내 잔액기준 가계대출금리는 1.32%포인트 올라간 반면, 미국의 경우 지난해 3분기 기준금리가 1.5%포인트 올라간 시기에 잔액기준 가계대출 상승폭은 0.24%포인트에 그쳤다”고 밝혔다. 이는 국내 가계대출 중 변동금리 대출 비중이 매우 커서 금리 인상에 취약한 구조가 원인으로 꼽힌다. 우리나라의 전체 가계대출 중 변동금리 비중은 65%(지난해 7월말 기준) 수준인 데 반해 미국의 경우 15%에 불과했다. 신 연구원은 “변동금리대출은 단기금리 변동에 따른 은행의 리스크를 대출자들에게 일방적으로 전가시킬 수 있는 상품으로 인식될 수 있다”며 “국내 은행이 취약한 장기고정금리 자금대출 수단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금융권은 이러한 ‘공공재’ 논란에 당혹스러운 분위기가 역력하다. 정부의 과도한 개입으로 금융의 안정성과 혁신을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정부는 2000년대부터 우리나라를 동북아 금융허브로 육성하겠다는 청사진을 내세웠지만, 현실에선 금융 후진국이라는 오명을 떼지 못하고 있다. 2021년에는 씨티그룹이 한국소매금융 철수를 선언하는 등 글로벌 금융사들로부터 외면 받는 ‘패싱 코리아’의 꼬리표가 붙어있다. 금융 선진국으로 인정받기 위해선 글로벌 표준에 맞는 시스템과 금융 안정성이 근간이 돼야 하는데, 정부의 잦은 정책 개입은 금융 리스크를 가중시키는 형국이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은행을 공공재로 쓰려면 주식을 다 매수해서 하던가, 글로벌 금융사의 유치는커녕 있던 외국인 자본도 다 떠날 상황”이라고 일침했다.

주가도 정부와 당국의 입김에 따라 요동치고 있다. 올해 배당 확대 기대에 고공행진하던 금융지주 주가는 “은행은 공공재”라는 윤 대통령의 발언 이후 고꾸라졌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서둘러 발을 빼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13일부터 16일까지 4거래일 동안 외국인은 신한·KB·하나·우리금융지주 등 4대 금융지주 주식을 1930억1700만원을 팔아치운 것으로 집계됐다. 이 기간 외국인이 가장 많이 팔아치운 KB금융의 매도액은 971억원에 달한다. 이어 하나금융지주 433억원, 신한지주 423억원, 우리금융지주 103억원 순으로 순매도 금액이 컸다. 이에 따라 주가도 급락했다. 4대 금융지주 중 순매도 규모가 가장 컸던 KB금융 주가는 지난 10일 대비 10.59%나 하락했다.

은행 고부가산업 관점으로 육성해야

최근 금융지주사를 상대로 배당 확대 등을 요구하며 ‘은행주 캠페인’에 나선 이창환 얼라인파트너스 대표는 “우리나라 주요 금융지주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이 비상식적으로 낮은 이유를 되짚어봐야 할 때”라고 말했다. 16일 기준 주요 금융지주의 PBR을 보면, KB금융(0.41), 신한지주(0.41), 하나금융지주(0.36), 우리금융지주(0.31) 수준이다. PBR이 1 미만이면 주가가 장부상 순자산가치(청산가치)에도 못 미친다는 뜻이다. 주주가 있는 기업임에도 정부와 당국의 규제에 따라 수시로 방침이 뒤바뀌고, 배당도 당국의 눈치를 봐야하는 상황에서 국내 은행들이 저평가의 굴레를 벗어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은 “주요 금융그룹 주주의 60~70%가 외국인인데 과도한 정부 규제는 합리적인 예측 가능성을 낮춰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의 원인이 된다”고 말했다. 경제 위기일수록 금융의 가치를 높여 국가 경쟁력을 제고하는 방안을 모색해야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오정근 건국대 IT금융학과 교수(한국금융ICT융합학회장)는 “국내에선 금융의 공공성을 과도하게 강조하고 수익 추구도 제약하다보니 혁신적인 발전이 어려운 상황”이라며 “미래세대가 원하는 일자리를 창출하고, 금융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선  은행을 고부가가치산업의 관점으로 육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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