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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부채 문제부터 거론하는 닥터 둠, "본 적 없는 위기 시작" 경고[BOOK]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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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거대 위협

누리엘 루비니 지음
박슬라 옮김

한국경제신문

이 책의 저자인 미국의 경제학자는 2008년 미국 부동산 시장의 붕괴와 세계 금융 위기를 예견한 것으로 유명하다. 주로 비관적 전망을 내놓는다고 해서 그에게 붙여진 별명은 닥터 둠(Dr. Doom·파멸). 이런 면모는 이 신간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경제성장과 번영을 구가했다는 전제 아래 이제는 "대공황 이후 이제껏 본 적 없는 경제 및 금융 위기가 시작되었다"고 서문에서부터 써놓았다.

세계 각국의 인플레이션이 현실화된 지금, 경기 침체까지 함께 나타나는 스태그플레이션의 도래를 점치는 그의 주장은 이미 외신 등을 통해서도 전해진 터. 이 책은 이를 포함해 모두 열 가지를 향후 10년 내지 20년 안에 세계가 직면할 '초거대 위협'으로 꼽는다.

그 첫째 항목인 부채 위기는 저자의 문제의식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각국이 각종 재정적 지원 등을 쏟아냈기 때문만은 아니다. 저자는 그전부터 기업·금융기관·가계의 민간 부채와 정부의 공공 부채가 "통제 불능으로" 치닫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책에 따르면 세계 부채 규모는 1999년 GDP의 220%에서 2019년 320%로, 코로나19 이후에는 350%까지 늘었다. '선진경제'로 불리는 국가들에서는 이미 2019년 420%에 이르렀다.

빚은 이뿐만이 아니다. 인구 고령화 역시 이 책이 다루는 열 가지 위협 중 하나인데, 고령화에 따른 연금과 의료비 등을 저자는 기후 변화에 대처하는 비용과 더불어 '암묵적 부채' 혹은 '미적립 채무'로 표현한다. 청년 세대의 이민이 대응책이 될 수도 있겠지만, 저자는 이민자에 대한 반감 등으로 사실상 해결책이 되기 어렵다고 본다.

이처럼 막대한 부채는 적어도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 때는 없었던 문제라는 것이 저자의 지적. 이를 비롯해 대공황, 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 이후의 더블딥, 남미 부채 위기, 그 자신을 유명하게 만든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등 그간의 여러 위기를 책 이곳저곳에서 나름의 관점으로 복기하며 설명과 비판을 이어간다. 특히 느슨한 통화·재정 정책, 돈을 헤프고 쉬운 것이자 빌리기 쉬운 것으로 만드는 정책적 방향을 이 책의 전반부에 걸쳐 거듭 비판한다.

미국 연준이 이달초 기준금리 0.25% 인상을 발표한 직후 뉴욕 증권거래소 내부 스크린에 관련 소식이 비춰지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연준이 이달초 기준금리 0.25% 인상을 발표한 직후 뉴욕 증권거래소 내부 스크린에 관련 소식이 비춰지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구체적으로 저자는 디플레이션이나 로플레이션(목표치보다 낮은 인플레이션)이 다 나쁜 건 아니라고 지적한다. 미국의 중앙은행 격인 연준이나 유럽의 중앙은행들이 2% 인플레이션을 목표로 삼는 것과 다른 관점이다. 예컨대 지난 20년 동안 중국 등 신흥시장의 가세나 기술·세계화 등에 따른 물가 하향 압력 등은 좋은 디플레이션이었다는 것. 저자는 이를 뉴노멀로 삼는 대신 인플레이션 목표치를 밑돌면 양적 완화, 신용 완화 등을 서두르는 정책이 다시 거품을 부풀리기 시작해 호황과 불황의 사이클을 조장하고 가속했다고 비판한다. 1970년대의 스태그플레이션에 대해서도 두 차례의 석유 파동이라는 부정적인 공급 충격만을 탓하지 않는다. 저자는 미국의 적자, 금본위제의 종료과 달러의 평가 절하 등 재정과 통화 정책의 문제 역시 스태그플레이션을 초래했다고 지적한다.

한편으로 저자는 70년대의 스태그플레이션을 부른 공급 충격이 석유·에너지라는 단일한 영역이었다는 점도 지적한다. 이와 달리 이제는 세계를 강타할 공급 충격이 여러 가지라는 것. 인구 고령화, 탈세계화와 보호무역주의, 공급망 안전성을 높이기 위한 제조업의 리쇼어링(자국 이전) 및 프렌드쇼어링(우호국이나 동맹국으로의 이전)에 따른 비용과 가격 인상, 중국과 미국의 신냉전, 기후 변화 등 그가 열거하는 항목들은 이 책이 다루는 초거대 위협의 항목과도 여럿 겹친다. 이밖에 인공지능(AI)도 초거대 위협이다. 저자는 인공지능 때문에 일자리가 사라지고 소득 불평등이 심화하리라고 내다보는데, 기본소득 같은 대응책 역시 여의치 않다고 지적한다.

막대한 부채와 스태그플레이션, 그리고 부정적 공급 충격의 결합이 불러올 미래를 저자는 책 마지막 대목에서 암울한 디스토피아의 시나리오로 그려낸다. 그리고 이보다는 덜 암울한 디스토피아 또는 유토피아의 시나리오도 짧게나마 그린다. 유토피아를 실현하는 핵심은 기술 혁신 등을 통한 성장. 저자는 선진경제가 GDP의 5~6%에 해당하는 고성장을 지속적으로 이뤄낸다면 부채 위기 등을 돌파할 수 있다고 내다보고, 기술 혁신으로 핵융합 에너지 등을 주목한다.

불길한 예언에 귀를 기울이는 건 예언의 실현을 기대하는 대신 그 내용을 파악하고 막을 방책을 찾고 싶어서일 터. 이 책 역시 그런 관점에서 접근하는 편이 좋을 듯하다. 정교한 학문적 논증을 펼치는 책은 아니다. 경제 전문가가 아니라도 읽기 어렵지는 않지만, 관련 지식이 많지 않은 독자로서는 저자의 단호하고 단정적인 문장이 수사인지 사실인지 가끔 헷갈린다. 물론 저자는 이 책에서 '닥터 둠'이라는 원치 않은 별명 대신 부정적 측면과 긍정적 측면을 모두 살피는 '닥터 리얼리스트'(Dr. Realist·현실주의자)를 자처하고 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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