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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는 로마인데....어딘가 낯선 향기의 제국[BOOK]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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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잔티움의 역사
디오니시오스 스타타코풀로스 지음
최하늘 옮김
더숲

비잔티움은 비교적 덜 알려진 ‘로마’다. 서기 330년(비잔티움 천도와 제국 분할 통치)이나 395년(동‧서 로마 분열)부터 1453년까지 1000년 넘게 유지한 이 제국은 스스로 로마로 불렀기 때문이다. 라틴어를 쓰다 7세기 들어 그리스어로 언어를 갈아탄 주민들은 자신들을 로마인으로 여겼다.

그럼에도 비잔티움은 웅장하고 역동적인 로마와는 결이 사뭇 다르고, 낯선 향기마저 느껴진다. 한국사에선 거의 고구려 광개토대왕에서 조선 단종까지, 서양사에선 고대에서 르네상스기에 이르는 장구한 세월 때문일까.

그리스인으로 자라 독일‧오스트리아에서 비잔티움학을 공부한 중세사학자로 유럽 각지에서 가르쳐온 지은이는 지금까지 비잔티움이 정치‧군사 중심으로 알려진 걸 문제로 지적한다. 무력으로 이룬 판도, 세련된 외교술과 동맹, 장엄한 의전과 관료주의, 궁중 음모, 이슬람 세력에 맞선 생존 투쟁, 십자군의 침탈, 그리고 오스만튀르크의 콘스탄티노플 점령과 멸망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비잔티움 개설서인 이 책은 최신 연구를 반영해 사회‧경제‧문화를 같은 비중으로 다룬다.

지은이는 특히 비잔티움이 7세기에 등장한 신흥 세력 이슬람의 자극을 받았음을 강조한다. 이슬람 아바스 제국이 8세기 후반 문예부흥으로 고대 그리스의 철학‧의학‧과학 분야 연구서를 잇달아 아랍어로 번역하고, 비잔티움에 사본을 요청하거나 도서관 장서를 털어갔다. 그 영향으로 수많은 비잔티움 학자가 종교와 세속 모두에 걸쳐 방대한 작품을 남기며 문예 부흥을 이끌었다는 설명이다. 비잔티움의 숨겨진 역동성이다.

이를 통해 비잔티움은 서양 중세의 문학‧미술‧신학‧법률‧교육의 산실이 됐으며 고대의 지혜를 르네상스 시기까지 보존하고 전달한 문명 수호자이자 전달자가 됐다. 9세기엔 『코란』의 일부를 그리스어로 번역해 비교와 비판에 나섰다.

지은이는 비잔티움이 어떻게 나라‧언어‧신앙을 가리지 않고 사람을 받아들였는지, 어떻게 위기에 적응하고 살아남았는지, 한쪽 발은 고대에 두고 그 시대의 책‧예술‧문화를 기독교 제국의 취향과 감성에 맞게 재창조한 것에 특히 감탄한다. 신중함과 전통 존중 속에서도 이런 열린 자세와 융통성을 유지한 게 그 오랜 세월 동안 국가와 체제가 지속 가능했던 원천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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