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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가에 수출 부진…정부도 '경기 둔화‘ 공식 인정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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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부산항 신선대·감만 부두 위로 먹구름이 껴 있다. 연합뉴스

지난 13일 부산항 신선대·감만 부두 위로 먹구름이 껴 있다. 연합뉴스

한국 경제가 경기 둔화 국면에 들어섰다는 정부의 첫 공식 진단이 나왔다. '경기 둔화 우려'라는 진단을 내놓은 지 9개월 만에 결국 '경기 둔화'를 현실로 인정한 것이다. 고공 행진하는 물가와 부진한 수출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됐다.

기획재정부는 17일 이러한 내용을 담은 ‘최근 경제동향(그린북)’ 2월호를 공개했다. 종합 평가를 통해 "물가가 여전히 높은 수준을 이어가는 가운데, 내수 회복 속도가 완만해지고 수출 부진 및 기업 심리 위축이 지속되는 등 경기 흐름이 둔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기재부는 지난해 6월 그린북에서 처음 경기 둔화 우려를 언급했다. 그러다 해가 바뀐 올 1월에는 '경기 둔화 우려 확대'로 표현 강도를 한 단계 올렸다. 이어서 이번 달 그린북에선 ‘경기 흐름 둔화’로 더 확정적인 표현이 등장했다.

이승한 기재부 경제분석과장은 “경기 둔화 가능성에 대한 ‘워닝 시그널’(경고 신호)을 제시한 뒤에도 수출이 굉장히 꺾이는 상황이 지속됐고, 최근엔 소비마저도 주춤한 모습을 보였다”며 “지난해 하반기부터 경기 둔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걸 (정부가) 확인한 메시지라고 판단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경제 지표는 전반적으로 나빠지는 양상이다. 특히 한국 경제의 버팀목으로 불리는 수출이 혹독한 한파를 맞고 있다. 지난달 수출은 전년 동월 대비 16.6% 감소했다. 지난해 10월 이후 4개월째 역성장이다. 무역수지는 126억5000만 달러 적자로 월간 최대 적자 폭을 찍었다. 이달 1~10일 수출은 1년 전보다 11.9% 증가했지만, 조업일수를 고려한 일평균 수출액은 오히려 14.5% 줄었다. 반도체와 중국 수출이 부진에 빠지면서 무역 전선 전반에 빨간불이 켜진 상태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지난 16일 열린 비상경제장관회의 겸 수출투자대책회의에서 “글로벌 경기 둔화 여파로 반도체 수출 감소세가 심화하고 있고, 중국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 효과도 아직은 시간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고물가에 외식 부담이 늘면서 대형마트 즉석조리 식품 수요가 늘고 있다. 16일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들이 즉석조리 식품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고물가에 외식 부담이 늘면서 대형마트 즉석조리 식품 수요가 늘고 있다. 16일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들이 즉석조리 식품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12월 산업활동동향에선 전월 대비 1.4% 증가한 소매판매를 빼면 모든 주요 지표가 ‘마이너스’를 나타냈다. 전 산업 생산은 한 달 새 1.6% 감소했다. 설비투자(-7.1%), 건설투자(-9.5%) 등도 전월보다 줄었다. 주택 시장도 매매·전세 가격의 하락세가 꾸준하다.

물가는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공공요금 인상 등으로 1년 전보다 5.2% 올랐다. 지난해 11·12월(5%)보다 오히려 물가 상승률이 소폭 반등했다. 물가의 기조적인 흐름을 보여주는 근원물가도 5% 상승했다. 고용 시장도 녹록지 않다. 1월 취업자는 전년 동월 대비 41만1000명 늘었다. 취업자 증가 폭이 빠르게 축소되면서 22개월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린북은 기재부가 매달 발간하는 경기 진단 보고서다. 정부가 현 경기 상황을 어떻게 판단하는지 공식적으로 알리는 내용이다. 책의 겉표지가 초록색이라 그린북이란 별칭으로 불린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에서 1년에 8번 발간하는 경제동향 보고서는 겉표지가 베이지색이라 ‘베이지북’으로 불리는데 이를 본뜬 명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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