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중(對中) 자본투자 제한이 본격화하기 전까지, 월가의 돈은 중국 인공지능(AI) 업계로 몰렸다. 1일(현지시각) 미 조지타운대 유망기술안보연구소(CSET)가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5~2021년 중국 AI 기업에 투자한 기관 5곳 중 1곳이 미국 국적으로 밝혀졌다. 인텔과 퀄컴의 투자 부문을 비롯한 미국 투자회사 167곳은 7년간 401건의 거래를 통해 중국 AI 기업에 402억 달러(약 51조 7100억 원)를 투자했다. 이는 같은 기간 발생한 중국 AI 투자 거래 건수의 17%, 중국 AI 기업이 조달한 총 투자액의 37%에 달하는 규모다.
센스타임은 그때 당시 미국 투자자의 선택을 받았던 중국의 대표 AI 기업이다. CSET 보고서에 따르면, 센스타임은 혁신 벤처기업 발굴 및 육성에 앞장서온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과 완샹아메리카헬스케어 투자그룹(WHI)의 투자를 받았다.

사진 신랑차이징
美 투자자가 눈여겨본 센스타임, 어떤 회사?
센스타임은 2014년 미국 MIT 출신 탕샤오어우(湯曉鷗) 교수와 그의 팀이 함께 설립한 인공지능 소프트웨어 회사다. 안면 인식과 영상 분석, 자율주행 등 다양한 AI 기술 솔루션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안면 인식 분야에서는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갖춘 것으로 알려졌다.
2014년 3월, 홍콩 중문대학 교수로 재임 중이던 탕샤오어우는 그의 제자 루차오차오(陸超超)와 함께 가우시안페이스(GaussianFace)란 이름의 얼굴 인식 알고리즘을 개발했다.

탕샤오어우 교수. 사진 EmTech CHINA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겨 세간의 관심을 끌었듯, 가우시안페이스는 컴퓨터 프로그램 최초로 인간의 육안 인식능력을 뛰어넘어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가우시안페이스는 유명 인사 얼굴 사진 1만 3000여장을 분석해 동일 인물인지 아닌지를 판별하는 실험에서 98.52%의 정확도를 보였다. 당시 인간이 보여줬던 정확도는 97.53%로, 가우시안페이스 등장 전 이 수치를 넘어선 컴퓨터 프로그램은 전무했다.
가우시안페이스의 놀라운 성능은 곧바로 IDG캐피탈의 관심을 끌었다. IDG캐피탈은 PE, VC 및 M&A 분야에서 전문성을 축적한 중국계 투자회사다. 2014년 9월, IDG캐피탈은 탕샤오어우와 접촉해 수천만 달러의 투자금을 전하고, 센스타임의 정식 설립을 도왔다.

가우시안페이스의 정확도를 알려주는 ROC곡선. 사진 Surpassing Human-Level Face Verification Performance on LFW with GaussianFace 논문
센스타임에 관심을 가진 것은 IDG캐피탈 뿐이 아니었다. 소프트뱅크, 알리바바, 완다그룹 등도 센스타임에 대한 투자에 가세했다.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센스타임은 2015~2021년, 12건의 투자 거래를 통해 52억 달러(약 6조 6800억 원)를 조달했다.
가우시안페이스로 한계를 돌파한 센스타임은 본격적으로 ‘컴퓨터 비전’ 상용화에 나섰다. 컴퓨터 비전은 컴퓨터를 사용해 인간의 시각 기능을 재현하는 AI 연구 분야다. 센스타임은 업계 선두주자로서 컴퓨터 비전 기술을 활용한 신분 확인 및 안면 인식 결제 서비스 제공, AR 쇼핑 체험 공간 조성, 자율 주행 솔루션 개발 등에 앞장섰다.
센스타임의 AI 기술, 어떻게 활용되나?
센스타임의 주 사업은 크게 4가지(스마트 비즈니스, 스마트 시티, 스마트 라이프, 스마트 오토)로 구분된다.
① ‘인식부터 게이트 개방까지 0.3초 컷’ LG CNS와 함께한 출입통제 시스템

사진 LG CNS
LG CNS가 국내외 고객 170여곳의 사업장, 2만7000여개 출입 게이트에서 운영 중인 ‘출입통제 솔루션’에는 센스타임의 안면 인식 기술이 활용됐다. 센스타임의 SensePass 장비는 LG CNS의 출입통제 솔루션과 결합해 정밀한 AI 출입 통제 및 신분 확인 서비스를 제공한다. 사용자가 단말기에 얼굴을 비치면, 안면 인식부터 정보 조회 및 출입 게이트 개방까지 0.3초 만에 이뤄지며 정확도는 99%에 달한다.
② ‘상하이의 코로나 19 방역 책임진다’ 6 in 1 디지털 통행 시스템

사진 링이차이징
중국에서 코로나 19가 대유행했던 지난 4월, 센스타임은 자체 기술을 활용해 상하이의 전염병 예방 및 통제를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센스타임은 마스크 착용 식별, 체온 측정, 건강코드(健康碼) 검사, 백신 접종 내용 및 PCR 검사 결과 확인, 전자 증명서 기능을 통합한 ‘6 in 1 디지털 통행 시스템’을 출시했다. ‘6 in 1 디지털 통행 시스템’은 상하이 시내 관공서와 시장, 박물관, 문화예술센터, 양로원 등에 배치돼 방역에 필요한 신속한 검증을 도왔다.
③ ‘모션 캡처 수작업 필요 없어’ 차세대 AI 디지털 휴먼 위안샤

위안샤. 사진 바이두
센스타임은 아이화선(愛化身)과 손잡고 차세대 AI 디지털 휴먼 위안샤(元夏)를 공동 개발했다. 위안샤에는 센스타임의 기술이 활용돼 실제 사람이 모션 캡처 장비를 착용하고 움직임을 재현할 필요 없이 빠르고 저렴하게 제작됐다. 위안샤는 상하이맥서스(上汽大通SAIC MAXUS)의 G90 신차 발표회에서 사회를 맡는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아이화선은 VR과 AI 기술을 바탕으로 고객사의 메타버스 디지털 마케팅, 버추얼 휴먼 라이브 커머스 등을 지원하는 회사다.)
④ ‘AI 눈으로 도로 꿰뚫어’ L4 자율주행 로보 셔틀

사진 공식홈페이지
센스타임의 줴잉(絶影) 자율 주행 로보셔틀은 L4 수준의 자율주행 기능을 갖추고 있다. 즉, 도로와 신호등을 정확하게 식별하고, 행인과 다른 차량의 움직임을 예측해 즉각적인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다. 줴잉은 현재 상하이, 우시, 시안, 청두, 푸저우 등 여러 도시의 공항과 아파트 단지 내에서 운행되고 있다.
투자 제한 블랙리스트 올랐지만, 예상 뒤엎고 보란 듯이 상장
이렇게 승승장구하던 센스타임은 2021년 12월 위기를 맞는다. 기업공개(IPO)를 일주일 앞두고 미국 재무부의 투자 제한 블랙리스트에 추가되면서다. 미국은 센스타임이 안면 인식 기술 등을 악용해 중국 정부의 신장 위구르자치구 소수민족 인권침해를 도왔다고 의심했다. 이에 일각에서는 센스타임의 상장이 불투명해질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그러나 센스타임은 곧바로 상장 작업을 재개했고, 2021년 12월 30일 홍콩 증시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미국의 제재 속에도 센스타임은 IPO를 통해 15억주의 신주를 발행하고, 57억 7500만 홍콩달러(약 9420억원)의 자금을 확보했다.

사진 공식홈페이지
“인공지능으로 물리적 세계와 디지털 세계를 연결해 지속 가능한 발전을 촉진하고, 사람들에게 현실과 가상이 결합한 멋진 삶의 경험을 선사합니다.” 회사 공식 홈페이지에 소개된 센스타임의 비전이다. 센스타임은 이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국내외 50여 개 대학 및 연구기관과 긴밀히 협력하며, 눈부신 학술 성과를 누적해오고 있다.
얼굴 인식 알고리즘에서 시작해 다방면으로 사업을 확장해 나가고 있는 센스타임. 센스타임이 개발한 AI가 우리 삶을 얼마나 더 바꿔 놓을 수 있을까? 앞으로의 행보가 주목된다.
권가영 차이나랩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