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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노의 식탁 위 중국] 식칼이 없어 만든 칼국수 도삭면

중앙일보

입력

사진 셔터스

사진 셔터스

중국은 국수로 유명한 나라다. 스스로 국수는 중국에서 처음 만들어 세상에 퍼트렸다고 주장할 정도로 어쨌든 국수가 발달했고 즐겨 먹으며 많이 먹는다. 그런 만큼 종류도 다양해 일상에서 먹는 국수만 1200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이렇게 많고 많은 국수 중에서 이른바 중국 전역에서 10대 이름난 국수이자 5대 명물 국수를 꼽을 때 빼놓지 않는 것이 산서(山西) 도삭면이다.

요즘은 우리나라에서도 어렵지 않게 맛볼 수 있는데 이 국수 여러 면에서 특이하다. 이름부터 칼 도(刀) 깎을 삭(削)자를 써서 도삭면(刀削麵), 중국말로 따오샤오미앤(dao xiao mian)이다. 칼로 자른 것도 아닌 칼로 깎아서 만드는 국수라는 뜻이니 말하자면 중국식 칼국수다.

베개만한 큼직한 밀가루 반죽을 바이올린 켜듯 한 손으로 받쳐 어깨에 대고 다른 손에 든 칼로 감자껍질 벗기듯 쳐내는데 펄펄 끓는 가마솥 육수 속으로 날아가 떨어지는 모습이 감탄할 만한 구경거리가 된다.

실제 도삭면 만드는 모습을 보면 마치 중국 기예공연을 보는 것 같다. 산시성 성도인 타이위안太原)에서는 도삭면 만들기 경연대회도 열리는데 가장 빠른 기록이 1분에 118번을 쳐냈다고 하니 초당 두 번씩 칼질을 한 셈이다. 우승 장면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현지 음식점의 주방장만 봐도 손놀림이 현란할 정도다.

명품 국수인 만큼 도삭면 유래에도 스토리가 빠지지 않는다. 재미있으면서도 황당하지만 역사적으로 짚어볼 부분이 있다.

전해지는 속설에 따르면 도삭면은 원나라 때 생겼다고 한다. 대략 600~700년 전인데 물론 진위 여부는 알 수 없다.

징기스칸의 후예, 몽골부족이 세운 원나라지만 중원을 정복한 후 한족의 반란이 두려워 칼이나 창 같은 무기를 만들지 못하도록 집집마다 소유하고 있는 쇳조각을 모두 거두어들였다. 농기구는 관청에서 보관하다 필요할 때 나누어 주었고 심지어 음식 만들 때 쓸 부엌칼도 회수했다. 대신 10가구에서 한 개의 식칼을 공유하게 했는데 이것도 음식을 만든 후에는 거두어 몽골 관리가 보관했다.

어느 날 한 할머니가 국수를 만들려고 반죽을 했는데 막상 썰려고 보니 식칼이 없었다. 그래서 할아버지에게 다른 집에 가 식칼을 구해오라고 시켰는데 이미 몽골 관리에게 반납해 가져올 수 없었다. 맛있는 칼국수를 먹을 요량이었던 할머니, 빈손으로 돌아온 할아버지를 보고 실망을 금치 못했다. 다급해진 할아버지가 주머니에서 몰래 주워 숨겼던 쇳조각을 꺼내 건네며 이걸로 어떻게든 썰어보자고 했다. 하지만 식칼이 아닌 쇳조각으로 밀반죽이 제대로 썰어질 리가 없었다. 한숨을 내쉬는 할머니를 보고 할아버지가 아이디어를 냈다. "썰지 못하면 베어내면 되지 않겠냐"며 반죽을 움켜잡고 나무껍질 벗기듯 쳐냈는데 여느 칼국수와는 식감이 또 다른 맛있는 국수가 됐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도삭면의 유래다. 억지소리라며 웃고 넘겨도 그뿐이지만 그럼에도 한번 따져볼 부분이 있다.

먼저 도삭면 유래설의 사실여부를 떠나 원나라에서는 한족들의 반란이 두려워 주방용 식칼조차 마음대로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는 소문이 사실일까?

과장이 섞였지만 비슷한 내용이 있기는 있다. 원나라 대표 법전인 『전장(典章)』에 “한인들은 무기 소지를 금지한다. 단 병사는 금지하지 않는다”는 조항이 있다. 또 “민간인은 쇠자, 쇠 지팡이, 쇠몽둥이 등의 소유를 금지한다”는 규정도 있다. 그러나 주방용 식칼에 대한 금지 조항은 없다.

그렇지만 민간인의 무기 소지 금지는 원나라뿐만 아니라 송나라 때도 있었다. 송나라 정사인 『송사(宋史)』에 나오는 기록이다. 현대로 치자면 일종의 총기 소지 금지 조항이다.

다만 중국의 다른 어느 왕조보다 원나라에서, 그리고 피지배 민족인 한족에 대해 무기 소유를 엄격하게 통제했던 것은 분명하지만 음식 만드는 식칼까지 쓰지 못하게 할 정도는 아니었다.

물론 교과서에서 배운 것처럼 원나라 때는 몽골인, 색목인, 한인, 남인(南人) 등으로 계층을 나누어 차별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일까, 원나라를 이민족의 강점 지배가 이닌 중국 역사라고 하면서도 심정적으로는 원의 통치시기에 대한 앙금이 없지 않다.

음식 관련 속설에서 그런 한족의 심정을 엿볼 수 있는데 도삭면의 유래도 그렇고 중국 추석인 중추절에 상하이와 항저우 등 화동지방에서 토란구이를 몽골 관리에 비유하며 깨물어 먹는 풍속도 그런 예다.

어쨌거나 있는 소리, 없는 소리 다 만들어 낼 정도로 몽골의 지배시기였던 원나라에 대한 중국인의 속내가 곱지는 않은 것 같다.

윤덕노 음식문화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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