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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손민호의 레저터치

하늘을 팔아먹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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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손민호 기자 중앙일보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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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호 레저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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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섬 신화의 주인공 강우현(69) 제주 탐나라공화국 대표는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괴짜 경영인이다. 수많은 일화 중에 하나만 꺼내자면, 그는 글씨를 거꾸로 쓴다. 가령 ‘대한민국’을 쓴다면 맨 마지막 글자 ‘국’의 받침 기역부터 써서 맨 첫 글자 ‘대’의 디귿에서 끝낸다. 큰 붓 든 그가 일필휘지로 ‘거꿀체’를 시연하는 장면은 언제 봐도 감탄을 자아낸다. ‘역발상 경영’을 주창한 주인공다운 기행이다.

남이섬에서 나와 제주도에 내려간 지 9년. 제주 서쪽 중산간에서 꾸역꾸역 땅을 파며 ‘미스테리 파크’를 만들던 강 대표가 어느 날 메타버스 얘기를 꺼낸 적이 있다. “메타버스 시대 우리는 탐라버스를 탄다”고 선언했었던 것 같다. 처음엔 미국의 글로벌 IT업체에서 일하는 외아들로부터 NFT 같은 첨단용어를 배웠나 보다 했다. 그런데 얼마 뒤 그가 카이스트 석사과정 학생을 대상으로 메타버스 강의를 했다고 말했다.

“미래는 기술이 만드는 게 아니야. 상상이 만드는 거지. 기술만으로는 디지털 세상을 실현할 수 없다는 걸 카이스트는 알았던 거지. 상상하면 나 아니겠어?”

강우현 탐나라공화국 대표가 분양한 하늘등대 이미지. [사진 강우현]

강우현 탐나라공화국 대표가 분양한 하늘등대 이미지. [사진 강우현]

지난달 중순. 강 대표가 개인 SNS에 괴이쩍은 공고를 올렸다. 이름하여 ‘하늘등대 특별 분양’. 탐나라공화국 하늘을 쪼개 분양한다는 내용이었다. 봉이 김선달은 평양 대동강물을 팔아먹었다는데, 21세기 괴짜 CEO는 제주도 하늘을 팔겠단다.

“탐나라공화국의 지상과 하늘을 연결하는 등대를 만들어. 지름 2m 높이 20m의 하늘등대야. 이 등대에서 하늘에 불빛을 쏴. 등대마다 불빛이 다른 건 알고 있지? 불빛을 쏘는 하늘을 360개로 나눠서 주소를 매기고 그걸 분양해. 분양을 받으면 각자 불빛을 갖게 되는 거지. 불빛이 영상이야. 돌아간 어머니 영상을 인공지능으로 재현한 음성과 저장하면 디지털 묘지가 되는 거고, 하늘에 데이터를 모으면 이름 그대로 클라우드 서비스가 되는 거야. 그게 모이면 대체 불가능한 자산, NFT가 되는 거고.”

분양은 지난 1일 시작했다. 하늘등대는 108개 한정으로 한 개 가격은 999달러(121만원)였다. 오는 21일이 마감 예정일이었는데, 분양 첫날 절반이 팔렸고 1주일 만에 거의 모든 등대가 팔려 서둘러 마감했다. 분양을 신청한 대부분이 정확히 무슨 얘긴지는 모르겠으나 기발한 발상 같다며 강 대표의 상상놀이에 기꺼이 동참했다.

‘겨울연가’를 본 동남아 관광객이 겨울 남이섬에 몰려오던 시절. 눈이 안 오면 강 대표는 밤새 얼음을 얼렸다. 그들이 보고 싶은 건 눈이 아니라 겨울이란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남이섬 고드름을 귀한 기념품인 양 품고 돌아가던 동남아 관광객의 얼굴이 아직도 선하다. 가상현실의 세계, 중요한 건 기술이 아니다. 상상이다. 기술이 구현하는 세상을 상상하는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