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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세컷칼럼

尹 "훌륭하더라"…그 말대로, 챗GPT에 신년사 맡기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윤석만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MBA 기말고사, 의사시험도 통과
기계의 인간화 vs 인간의 기계화
인간역량 키워가는 데 활용해야

 ‘챗GPT’의 열풍이 거세다. 일론 머스크의 ‘오픈AI’가 석 달 전 공개한 챗GPT는 자연어 처리 기술로 만든 대화형 AI다. 두 달 만에 월간 사용자(MAU) 1억 명을 돌파해 틱톡(9개월), 인스타그램(30개월) 등 주요 디지털 서비스를 압도했다. 국내에선 윤석열 대통령이 “(챗GPT로) 신년사를 써보니 훌륭하더라”고 말해 화제가 됐다. 그래서 정말 “대통령 신년사를 작성해 달라”고 해봤다.

챗GPT는 곧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으로 시작하는 800여자의 글을 내놨다. 팬데믹을 화두로 “어려움을 이겨내고 하나로 뭉친 국민이 자랑스럽다”고 했다. 그러면서 응급구조대원과 의료진에 감사의 뜻을 표하며 “그들의 용기와 이타심이 대한민국의 힘을 일깨운다”고 치하했다. 끝으로는 경제위기 극복의 자신감을 나타내며 “더욱 강하고 번영하는 국가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10여 초 만에 쓴 글치고는 훌륭했다.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와 공정·자유 등 주요 철학만 녹인다면 연설문 작성자에게 괜찮은 초안이 될 것 같았다. 이어서 “챗GPT에 대한 칼럼을 써 보라”고 했더니 1200자 분량의 글이 나왔다. 내용의 창의성과 구체성은 떨어졌지만 논리적 구성과 표현력은 흠잡을 데가 없었다.

 이미 챗GPT는 미국의 경영전문대학원(MBA)인 와튼스쿨의 기말시험을 B학점으로 통과했다. 의사면허시험에서도 합격 기준점의 점수를 받았다. 국내 챗GPT 사용자들도 감탄 일색이다. 가수 윤종신은 “챗GPT와 가사를 합작해보려 한다. 한 2년 후면 우릴 뛰어넘을지도"라고 소감을 남겼다.

그러나 과도한 맹신은 지나친 우려만큼 진실을 정확히 보지 못하게 한다. 챗GPT가 혁신적인 기술인 것은 맞지만, 당장에라도 인간의 지적능력을 대체할 것처럼 호들갑 떨어선 안 된다. 챗GPT는 스스로 생각해 답을 내놓는 게 아니라 수많은 빅데이터 학습을 통해 인간의 언어를 흉내 내고, 그럴듯한 답변을 제시한다.

이는 AI를 둘러싼 오랜 토론 중 하나인 ‘튜링 테스트’와 ‘중국어 방’ 논쟁을 떠올리게 한다. 현대적 AI 개념의 창시자인 앨런 튜링은 1950년 『계산기계와 지능』에서 컴퓨터가 사람처럼 대화할 수 있으면 인간과 같은 지능을 갖고 있다고 봤는데(튜링 테스트), 미국의 언어학자 존 설은 이를 사고 실험으로 반박했다.

 중국어를 모르는 미국인이 밀폐된 방에서 단순히 구문론적 규칙이 적힌 지침서에 따라 기계적으로 중국어를 변환한 쪽지를 밖에 내놓는다. 중국어 말뜻을 몰라도 답지를 내놓는 행위에 익숙해지면, 외부에선 방 안에 중국인이 있다고 믿게 된다. 존 설은 “기계적 변환 행위에 능숙해진다고 미국인이 중국어를 제대로 이해한다고 할 수 있느냐”고 지적했다.

챗GPT도 마찬가지다. 챗GPT는 일종의 대형언어모델(LLM)로 수많은 말뭉치에서 패턴을 파악해 문장을 만든다. 하지만 자신이 만든 문장의 의미를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며, 심지어 내용의 사실 여부를 가리거나 가치판단을 할 수도 없다. 정치·윤리적 결정이 필요한 부분은 답변하지 않는다. 언어가 생각을 결정한다는 ‘사피어·워프 가설’까지는 아니어도 언어를 매개로 고차원적 사고를 하는 인간의 지적능력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이야기다.

챗GPT를 올바르게 쓰는 방법은 계산기를 대하는 것과 비슷하다. 계산기로 고차원적 수학 연구를 할 수 있게 됐듯, 챗GPT는 인간의 역량을 높이는 좋은 도구가 될 수 있다. 자료수집 시간을 대폭 줄이고, 글의 초안을 잡는데 도움 받을 수 있다. 음성 서비스와 연계하면 독거노인과 유아 등의 돌봄 로봇에 적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도구로서 챗GPT의 장점은 취하고 부작용은 보완하는 게 올바른 AI 사용법이다. 영국의 130여 개 대학이 성명을 냈듯 논문 표절 문제는 AI 카피 킬러 같은 기술을 정교화하는 방향으로 풀어야 한다. 챗GPT 개발 책임자인 미라 무라티 오픈AI CTO(최고기술책임자)의 말처럼 "거짓말을 지어내거나 (범죄에) 악용될 수" 있어 대비가 필요하다.

기술 자체엔 옳고 그름의 가치판단이 내재돼 있지 않다. 좋게 쓸지, 악용할지는 인간에게 달렸다. 지난해 10월 학자·전문가·CEO 등이 모여 ‘디지털 소사이어티’라는 모임이 출범했다. 기술혁신에 따른 문명적 변화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방법을 찾는 게 목표다. 이런 단체가 많아져 기술이 인류 전체의 이익을 높일 수 있는 방향으로, 책임감 있고 윤리적으로 쓰일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우리가 고민할 것은 ‘기계의 인간화’가 아니라 ‘인간의 기계화’란 점을 잊지 말자.

글=윤석만 논설위원  그림=김아영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