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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 급식 '모기약 테러' 교사…징역형에 남편 찾으며 울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자신이 근무하던 유치원 원아들의 급식통과 동료 교사의 텀블러 등에 유해물질을 넣은 혐의(특수상해미수, 아동학대처벌법 위반, 재물손괴, 절도)로 재판에 넘겨진 유치원 교사 박모(50)씨가 16일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서울남부지법 형사5단독 윤지숙 판사는 이날 열린 박씨에 대한 선고기일에서 “자신이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 아동을 상대로 범행하고 납득할 수 없는 변명으로 일관해왔다”며 이 같이 선고하고 아동 관련 기관에 대한 취업도 10년간 제한하도록 명령했다.

박씨는 2017년 3월 11일부터 2020년 11월 30일까지 서울 금천구에 있는 한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의 특수반 교사로 재직했다. 평범한 유치원 교사였던 그는 2020년 9월 교무실 내 자리배치 문제로 동료 교사와 갈등을 벌였다. 이후 자신이 동료들로부터 따돌림을 받는다고 생각했다. 여기에 2020년 10월 27일 불성실한 직무수행, 불투명한 교구·회계 관리 등을 이유로 유치원장으로부터 경고장을 받는 일까지 일어나 동료에 대한 앙심은 커져갔다.

2021년 4월 21일 오전 서울 금천구 금천경찰서 앞에서 국공립유치원 '급식 테러' 사건 엄벌 촉구를 위한 비상대책위 주최로 열린 기자회견에서 피해 어린이 학부모와 시민단체 회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2021년 4월 21일 오전 서울 금천구 금천경찰서 앞에서 국공립유치원 '급식 테러' 사건 엄벌 촉구를 위한 비상대책위 주최로 열린 기자회견에서 피해 어린이 학부모와 시민단체 회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박씨의 첫 타깃은 동료들이었다. 그는 2020년 9월 17일 동료 교사 김모(29)씨가 먹던 영양제를 꺼내 주방세제를 뿌린 수건에 펼친 뒤 맨발로 영양제를 밟고 침을 뱉었다. 그러곤 미리 준비한 주사기에 자신의 침과 디에틸톨루아미드 성분의 모기기피제, 계면활성제 성분의 유해성분 액체를 부은 뒤 영양제에 뿌려 약통에 다시 넣었다.

박씨는 2020년 11월 2일 다른 동료 오모(46)씨를 노렸다. 그는 오씨가 양배추 주스를 만들기 위해 믹서기를 주방 세탁기에 올려놓고 자리를 비운 사이 세제 가루를 믹서기에 몰래 넣었다. 다음 날인 3일에는 또 다른 동료 이모(46)씨, 성모(43)씨, 여모(50)씨가 먹는 단체 급식차 속 밥 위에 같은 세제 가루를 뿌려 주걱으로 섞어 놓았다. 이틀 뒤인 2020년 11월 5일엔 교사 성씨, 김씨, 오씨는 물론 5세반 원아 14명이 먹는 급식 차 속 반찬과 국에도 세제가루를 뿌렸다.

박씨는 2020년 11월 10일 자신이 담임인 특수반 교실에서 모기기피제·계면활성제가 든 액체를 60㎖ 물약병에 넣어 교사 오씨의 텀블러, 교사 김씨의 커피잔, 교사 이씨·성씨·여씨가 먹는 급식 차 반찬에 이 액체를 몰래 뿌려 먹도록 했다. 사흘 뒤인 같은 해 11월 13일에도 성씨의 커피잔에 물약병에 든 유해성분 액체를 뿌렸다. 박씨는 이 같은 범행이 발각돼 서울금천경찰서에서 조사를 받던 같은 해 11월 16일 동료 교사 3명의 영양제와 건강보조제를 몰래 가져가기도 했다.

서울남부지법이 16일 유치원 교사로 일하면서 동료 교사와 원아들이 먹는 급식 차, 찻잔, 텀블러 등에 유해물질을 넣은 혐의로 기소된 박모씨에게 징역 4년을 선고했다. 뉴스1

서울남부지법이 16일 유치원 교사로 일하면서 동료 교사와 원아들이 먹는 급식 차, 찻잔, 텀블러 등에 유해물질을 넣은 혐의로 기소된 박모씨에게 징역 4년을 선고했다. 뉴스1

박씨는 수사·재판 과정에서 ▶자신이 뿌린 액체는 유해성분이 아니라 물이고 ▶차나 커피가 뜨거워 이를 식히기 위해 뿌렸으며 ▶세제 가루를 뿌리는 시늉만 했을 뿐 실제로는 뿌리지 않았다고 일관되게 주장해 왔다. 하지만 윤지숙 판사는 “피고인의 변명은 폐쇄회로(CC)TV상 모습과 다르고, 피고인이 소지하던 물약병에서 계면활성제 성분이 검출됐다. (온도를) 식히기 위해 물약통의 물을 넣었다는 주장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어렵다”는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만, 윤 판사는 박씨가 자신이 담임인 특수반 원아들에게 유해물질을 묻힌 초콜릿 등을 먹였다는 공소사실은 무죄로 판단했다. 앞서 검찰은 박씨가 2020년 11월 9일 세제 가루가 담긴 액체에 초콜릿을 찍어 자신이 지도하던 아동 김모(당시 6세), 이모(당시 6세)군에게 먹인 것으로 파악했다. 또 같은 해 11월 11일 다른 반 교사와 원아들의 급식 차 양념간장 소스 통에 모기기피제 또는 계면활성제 등 유해성분 액체를 짜 넣고, 이틀 뒤인 13일엔 범행 발각에 수치심을 느껴 자신이 지도하던 황모(당시 6세)군이 뱉어내는데도 같은 성분이 담긴 액체를 물과 함께 마시도록 한 혐의도 받았다.

이에 대해 윤 판사는 “피고인의 행위가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고 수사기관이 특정한 병에서 세제 가루가 확인되지 않았다” “공소사실은 양념간장을 먹게 했다는 것인데 피고인이 넣은 곳은 양념간장통이 아니라 식판으로 보인다” “피해 아동이 뱉는 모습만으로 유해성분이라고 볼 수 없다” 등의 이유로 모두 무죄 판결했다. 피해자들은 박씨가 뿌린 유해물질을 섭취한 교사들과 원아들이 구토와 코피 등의 증상을 보였다고 호소했지만, 검찰은 “생리적 기능이 훼손 되지 않았다”며 미수로 판단했다.

박씨는 윤 판사가 자신의 혐의를 하나하나 읊으며 유·무죄 여부를 가리는 동안 피고인석 책상을 손으로 짚고 고개를 숙였다. 박씨는 구속기소돼 재판을 받던 중 2021년 6월 11일 보석으로 풀려났지만, 이날 윤 판사가 실형을 선고한 뒤 보석을 취소하자 자신의 남편을 찾으면서 울먹이기도 했다. 피해 원아의 부모들은 일부 무죄 판결을 납득할 수 없다고 성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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