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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부활한 ‘북한=적’ 개념…북한 핵·미사일 증강 상세 기술…2022 국방백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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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국방부가 윤석열 정부 들어 처음 내는 국방백서에서 북한에 대한 적 개념을 다시 담았다. 국방백서는 국방정책을 대내·외에 알리는 목적으로 2년마다 발간된다. 지난 정부에서 삭제된 개념이 되살아난 것으로 현 정부의 대북 강경 기조가 반영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밖에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이 더 고도화했다고 평가했고, 한일 관계에 대한 비중도 늘렸다.

문재인 정부 때 삭제된 ‘북한=적’ 개념 부활

'2020 국방백서' 본문(왼쪽)과 '2022 국방백서' 본문. 국방부

'2020 국방백서' 본문(왼쪽)과 '2022 국방백서' 본문. 국방부

국방부가 16일 공개한 국방백서를 보면 “북한 정권과 북한군은 우리의 적”이라는 구절이 담겼다. 북한이 한반도 전역을 공산주의화한다는 목표로 한국을 적으로 규정한 데다, 지속적인 핵개발과 함께 군사적 위협을 가하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북한=적’ 개념은 1994년 ‘서울 불바다’ 발언을 계기로 95년 백서에 처음 나왔다가 참여정부 시절 ‘직접적 군사위협’ ‘심각한 위협’으로 대체됐다. 이후 이명박 정부 들어 2010년판에 되살아난 뒤 2018년판과 2020년판에선 “대한민국의 주권, 국토, 국민, 재산을 위협하고 침해하는 세력을 우리의 적으로 간주한다”는 구절로 바뀌었다. 정치 상황에 따라 적 개념이 수시로 바뀐다는 논란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이번에 부활한 적 개념을 놓고 국방부는 북한 위협의 실체와 엄중함을 명확히 인식할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라고 강조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국무위원장’ 호칭 빠진 김정은, ‘북·미’ 표현은 ‘미·북’으로

다시 규정된 적 개념과 맞물려 북한과 관련된 표현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김정은에 뒤따르던 ‘국무위원장’ 호칭이 모두 빠진 채 ‘김정은’으로만 기술된 게 대표적이다. 지난 백서가 국무위원장 호칭을 꼬박 붙였던 것과 차이가 있다. 2022 국방백서는 “김정은은 국무위원장, 최고사령관 및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장을 겸직하면서 북한군을 실질적으로 지휘·통제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2022 국방백서는 김정은을 언급하는 대목에서 '국무위원장' 등 호칭을 삭제했다. 국방부

2022 국방백서는 김정은을 언급하는 대목에서 '국무위원장' 등 호칭을 삭제했다. 국방부

지난번 백서에서 사용된 ‘북·미’라는 표현도 이번엔 ‘미·북’으로 바뀌었다. 앞서 통일부 역시 지난해 11월 ‘담대한 구상’이 담긴 대북정책 설명자료를 발간하며 북한과 미국의 관계를 ‘미북관계’로 지칭했다.

9·19 군사 분야 남북합의와 관련된 대목도 크게 바뀌었다. 지난 백서에 포함된 9·19합의 합의서·부속서 전문이 이번 백서에선 모두 빠졌다.

2022 국방백서는 북한의 9·19 합의 위반 사례를 17건으로 집계했다. 국방부

2022 국방백서는 북한의 9·19 합의 위반 사례를 17건으로 집계했다. 국방부

또 이번 백서는 처음으로 9·19 합의 위반 사례를 표로 정리했다. 모두 17건으로 이중 2019년 11월 서해 창린도 포사격, 2020년 5월 강원도 비무장지대(DMZ) 내 감시초소(GP) 총격을 제외한 15건이 지난해 10월 이후 발생했다. 해상완충구역 내 포병 사격, 서울 상공 무인기 침범 등이다. 백서는 “이외에도 서해안 일대 해안포문 개방, 포구 덮개 미설치 등으로 9·19합의 위반 사례가 다수 발생했다”고 서술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군사합의라는 건 서로 지킬 때 유효하다”며 “북한이 위반 행위를 또 했을 때 고민해야 할 부분 등 현재의 안보 현실을 반영했다”고 말했다. 북한의 추가적인 9·19 합의 위반이 이뤄질 경우 합의 파기도 검토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플루토늄 20㎏ 증가, 2030년 100기 이상 핵탄두 가능할 것으로 보여

북한의 위협을 강조하는 흐름은 북핵과 미사일을 서술하는 부분에서도 잘 드러난다. 핵 분야와 관련, 2022 국방백서는 북한이 핵무기의 재료가 되는 플루토늄 70여㎏을 보유하는 것으로 평가했다. 2020년 50여㎏에서 20㎏ 늘어난 수치다. 군과 정보당국은 북한이 2018년 말 영변에서 핵시설 가동을 중단했다가 2021년 7월쯤 5㎿ 원자로 활동을 재개한 것으로 보고 있다.

통상 폐연료봉을 재처리해 플루토늄을 추출하기까지 약 5개월이 소요된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2021년 2월부터 7월까지 영변에서 실험실을 가동하는 화력발전소가 운영됐다고 밝힌 바 있다. 수년 전 남겨둔 폐연료봉을 이 시기부터 재처리하기 시작했고, 2021년 7월부터는 다시 5㎿ 원자로 활동을 통해 새 폐연료봉을 만들어낸 뒤 플루토늄을 축적하는 과정을 지속하고 있다는 계산이 가능하다. 대남·대미 대화 국면에서 핵 활동을 잠시 멈췄다가 2019년 2월 하노이 노딜 후 핵개발에 다시 나선 셈이다.

2022 국방백서는 북한이 핵무기 재료인 플루토늄 보유량을 70㎏으로 평가했다. 2년 전 50㎏에서 20㎏ 늘어난 수치다. 국방부

2022 국방백서는 북한이 핵무기 재료인 플루토늄 보유량을 70㎏으로 평가했다. 2년 전 50㎏에서 20㎏ 늘어난 수치다. 국방부

한국국방연구원(KIDA)에 따르면 북한은 현재 68~78㎏의 플루토늄을 보유한 것으로 추정되고, 2030년에는 그 양이 107~123㎏에 달할 것으로 예측된다. 핵탄두 1기에 필요한 플루토늄이 6㎏ 정도라고 보면 현재 플루토늄으로 약 13기의 핵탄두를 만들 수 있고, 2030년엔 약 20기까지 가능하다. 기존 연구는 플루토늄 외에도 고농축우라늄(HEU)을 포함해 북한이 만들 수 있는 핵탄두 양을 80~90기로 분석하고 있다. 즉 2030년엔 100기 이상 핵탄두를 보유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북한이 핵탄두 보유량에 중점을 두는 정황은 이미 포착돼왔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해 말 전원회의 보고에서 “현 정세가 나라의 핵탄 보유량을 기하급수적으로 늘일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KIDA는 북한이 목표로 하는 핵탄두 보유량이 300여 기에 달한다고 보고 있다.

탄도미사일 7종류 추가

핵 보유량과 함께 핵투발이 가능한 탄도미사일 종류 역시 늘어나고 있다. 이번 백서에는 2020년 백서에 없었던 북한 탄도미사일 7종류가 추가됐다. 여기에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인 화성-17형과 북극성-4ㅅ·북극성-5ㅅ·극초음속 미사일 2종 등 준중거리탄도미사일(MRBM)은 물론 근거리탄도미사일(CRBM)과 단거리탄도미사일(SRBM)인 고중량탄두형이 포함된다.

2022 국방백서는 북한 탄도미사일 7종류를 추가했다. 빨간 표기가 추가된 미사일. 국방부

2022 국방백서는 북한 탄도미사일 7종류를 추가했다. 빨간 표기가 추가된 미사일. 국방부

백서에 처음 등장한 CRBM의 경우 지난해 4월 김 위원장 참관 하에 발사된 신형 전술유도무기를 의미한다. 당시 북한은 “전선 장거리 포병부대들의 화력 타격력을 비약적으로 향상시킬 것”이라며 “전술핵 운용의 효과성과 화력임무 다각화를 강화한다”고 설명했다. 전술핵을 아우르는 여러 종류의 탄두를 방사포처럼 한국을 겨냥해 쏘겠다는 의미다. 국방부 관계자는 “한국의 전술지대지유도무기 케이티즘(KTSSM)과도 유사하다”며 “견고한 지하시설을 정밀타격할 목적도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고중량탄두형은 2021년 3월부터 시험발사가 이뤄지고 있는 북한판 이스칸데르 개량형을 뜻한다. 해당 미사일의 탄두 중량은 2.5t, 사거리는 600㎞라는 게 북한의 주장이었다. 탄두 중량이 2t, 사거리가 800㎞인 한국의 현무-4를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군 관계자는 “우리가 갖고 있는 미사일 능력을 상쇄하기 위해 북한이 개발 중인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역시 한국을 향한 핵 공격을 시사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본=가까운 이웃 국가’로 격상

대외 관계와 관련해선 일본에 대한 서술이 우호적으로 바뀐 점이 눈에 띈다. 2020년 백서는 일본을 “양국 관계뿐만 아니라 동북아 및 세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서도 함께 협력해 나가야 할 이웃 국가”라고 표현하는 데 그쳤다. ‘일본=동반자’라는 2018년 백서 표현이 2년 뒤 격하된 것으로 당시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 등 악화된 대일 관계가 영향을 미쳤다.

2022 국방백서는 일본을 '가까운 이웃나라'로 표현했다. 또 중·일·러 대신 '일·중·러'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국방부

2022 국방백서는 일본을 '가까운 이웃나라'로 표현했다. 또 중·일·러 대신 '일·중·러'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국방부

반면 이번 백서는 “한·일 양국은 가치를 공유하며, 일본은 공동이익에 부합하는 미래협력관계를 구축해 나가야 할 가까운 이웃 국가”라고 명시했다. ‘동반자’까지는 아니더라도 ‘가까운’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대일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각국 국방교류협력을 소개하면서도 한·일 협력은 한·중 한·러를 제치고 가장 먼저 서술됐다. 통상 사용되는 중·일·러 대신 '일·중·러'라는 표현이 등장하기도 했다. 2020년 백서에선 한·일 협력이 한·중과 한·러 사이에 자리한 바 있다. 국방부 관계자는 “북한 위협이 커지는 등 변화하는 안보 환경에서 일본과 협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호주와 인도의 군사동향이 서술된 점도 이번 백서에서 새로 나온 내용이다.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동북아 위주로 군사 정세를 다룬 지난 백서보다 영역이 확장된 것이다. 2022 국방백서는 “미국, 유럽 등 주요 국가는 인도·태평양 지역의 전략적 중요성에 주목해 독자적인 인도-태평양 전략을 제시하는 등 관여를 확대하고 있다”고 썼다.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발맞추는 행보로 분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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