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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1인 시위자도 "나라 망신"…국회 앞 불법천막에 칼 뺀다

중앙일보

입력

15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회 정문 앞이 불법 점거 천막, 시위대 등으로 어지럽혀졌다. 김정재 기자

15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회 정문 앞이 불법 점거 천막, 시위대 등으로 어지럽혀졌다. 김정재 기자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 ‘노조법 2·3조 즉각 개정하라!’‘화물 안전운임제 사수’‘간호법 약속 이행하라’ 등의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잔뜩 내걸려 있었다. 좌우 150m 길이 인도에 펼쳐져 있는 현수기와 현수막만 70여 기가 넘었다. 빛바랜 천막 10여동도 사이사이 눈에 띄었다. 영등포구청은 일부 천막에 ‘불법 도로점용에 대한 계고 통지서’를 붙여놓기도 했다. 국회 앞에서 2년째 낙태 반대 1인 시위를 이어왔다는 복연순(70)씨조차 “천막 쳐놓은 것 싹 치워야지, 이대론 나라 망신”이라고 혀를 찼다.

이날 오후 국회 사무처는 ‘건전한 공동체 문화 조성 자문위원회’ 첫 회의를 열고 국회 앞 집회·시위 문화 개선방안 모색에 나섰다. 이광재 국회 사무총장이 비공개로 주재한 회의엔 국회 운영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강득구·최기상 의원, 국민의힘 조은희·장동혁 의원, 정의당 이은주 원내대표와 경찰청·학계·법조계 관계자 등이 참석했다.

국회 앞은 유동 인구가 많아지는 점심시간이면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정도의 소음이 동반된다. 오후 12시가 가까워지자 국회 앞은 시대위의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민중가요와 확성기를 든 일부 시민의 악다구니가 뒤섞였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이 허용하는 국회 앞 주간 최대 소음은 75db(데시벨)이다. 기자가 소음측정기를 대보니 82데시벨이 나왔다. 국회 도서관을 방문했다는 한 대학생은 “지하철역에서 나올 때마다 소음을 피할 수 없어 불편하다”며 “표현의 자유가 있다지만 시위대가 다른 방식을 활용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무처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하루 동안 국회 정문 앞에서 19건의 집회 및 시위가 열렸다. 민주노총·금속노조·화물연대·공공운수노조 등 노동단체부터 대한의사협회·대한간호협회·전국농민회총연맹 등 이익단체, 삼청교육대 피해자연합·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코로나19백신피해자 가족협의회 등으로 주체도 다양했다. 19건 중엔 2016년 1월부터 국회 앞에서 노숙을 시작한 이모씨, 2021년 8월부터 음악을 틀어놓고 중국계 종교단체인 파룬궁 탄압을 비판하는 단체도 포함돼있다.

15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회 정문 앞이 불법 점거 천막, 시위대 등으로 어지럽혀졌다. 김정재 기자

15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회 정문 앞이 불법 점거 천막, 시위대 등으로 어지럽혀졌다. 김정재 기자

최근 6개월(2022년 8월~올해 1월) 내 국회 앞 1인 시위는 788건, 집회는 152건으로 집계됐다. 집시법 11조에 따르면 원칙적으로 국회의사당 경계 100m 이내에서 집회·시위가 금지된다. 예외적으로 ‘국회의 활동을 방해하거나 대규모 집회로 확산될 우려가 없고, 국회의 기능과 안녕을 침해할 우려가 없다고 판단되는 경우’ 집회·시위를 허용하고 있어 국회 앞은 다양한 단체들의 농성 활동이 끊이지 않는다.

장기화되는 국회 앞 집회·시위 제한에 나설 경우 헌법상 보장된 집회 및 시위의 자유 등을 침해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이 국회 사무처의 부담이다. 이날 회의에선 당사자들에게 보다 효율적으로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자진 철거를 유도하는 방안 등이 논의됐다. 국회방송이나 국회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의견 표명이 이뤄지도록 하는 식이다.

당사자들과 협의가 어려울 경우, 법령의 요건을 따져 행정대집행을 실시하는 방안도 거론됐다. 국유재산법과 공유재산법은 정당한 사유 없이 국·공유 재산을 점유하고 시설물을 설치하는 경우 강제철거 등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도로법 역시 점용허가를 받지 않은 도로 점유에 대해 원상회복명령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게 했다. 철거 이후엔 환경 개선을 위해 화단을 조성하는 방법 등이 제시됐다.

이날 회의 참석자는 “집회 및 시위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함부로 침해해선 안 된다는 의견이 많이 나왔지만, 그렇다고 해서 불법성이 명확한 도로 점거, 과도한 소음을 마냥 둘 수만은 없지 않겠냐는 지적도 있었다”며 “한 사람이 몇 년 동안 한 장소를 불법 점거하면서 시위를 이어나가도록 하는 것이 성숙한 민주주의 가치에 맞는지, 만약 이를 막는다면 어떤 방법을 사용할 수 있는지 보다 구체적인 논의를 계속 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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