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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만 잘났냐" 청탁 유혹 견뎠다...'지진 사망 0명' 도시의 비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튀르키예에서 대지진 피해가 가장 큰 지역인 하타이주(州)에 있는 도시 에르진. 인구 4만2000명인 이 도시에선 무너진 건물이 보이지 않고 차량들은 도로에서 막힘없이 다닌다. 인도를 천천히 걷거나 자전거를 탄 시민들도 눈에 띈다. BBC튀르키예가 14일(현지시간) 공개한 에르진의 현재 모습은 튀르키예에 대지진이 발생하기 전과 다르지 않다.

BBC튀르키예가 14일(현지시간) 공개한 튀르키예 에르진의 현재 모습. 튀르키예 대지진의 피해가 가장 큰 하타이주에 있는 도시이시지만 건물이 한 채도 무너지지 않았고, 사상자가 한 명도 발생하지 않았다고 한다. BBC튀르키예 트위터 캡처

BBC튀르키예가 14일(현지시간) 공개한 튀르키예 에르진의 현재 모습. 튀르키예 대지진의 피해가 가장 큰 하타이주에 있는 도시이시지만 건물이 한 채도 무너지지 않았고, 사상자가 한 명도 발생하지 않았다고 한다. BBC튀르키예 트위터 캡처

외신은 "지진 피해가 가장 큰 주에 있는데도 건물이 한 채도 무너지지 않고, 사상자가 한 명도 발생하지 않은 도시"라며 에르진을 주목하고 있다. 그러면서 에르진이 무사할 수 있었던 배경엔 불법 건축물에 대해 무관용 원칙을 고수한 에르진의 외케슈 엘마솔루 시장이 있었다고 전했다.

에르진은 하타이주 중심부에서 북쪽으로 110㎞ 거리에 있다. 지난 6일 발생한 강진의 진앙인 동남부 가지안테프에서도 서쪽으로 166㎞ 거리다. 하타이주는 이번 대지진으로 대부분의 도시가 파괴되고 5000명 넘게 목숨을 잃었을 정도로 피해가 컸다.

에르진에서도 시민들이 격렬한 흔들림을 느낄 정도로 지진의 충격이 고스란히 전해졌다고 한다. 그러나 레일리뉴스 등 튀르키예 언론은 "에르진은 하타이주에서 유일하게 (건물 파손으로 인한) 잔해가 단 한 개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엘마솔루 시장은 유로뉴스 등과의 인터뷰에서 "불법 건축물을 일절 허용하지 않았던 게 주효했다"고 말했다. 그는 불법 건축물에 대한 강경한 태도로 겪은 일화도 들려줬다. 그가 시장에 당선된 지 3개월 후 먼 친척이 불법 건축물과 관련된 부탁을 해 왔지만 이를 거절하자 "당신만 잘났느냐"며 면박을 줬다고 한다.

엘마솔루 시장은 "나는 양심을 갖고 그 어떤 형태의 불법 건축도 허용하지 않았다"며 "불법 건축을 100% 막을 수 없어도 일정 단계에서 이를 차단할 순 있다"고 말했다. 이어 "주민의 안전과 직결돼 있기 때문에 불법 건축을 막는 것은 정치적 판단을 할 문제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그는 야당인 공화인민당 소속으로 2019년 시장으로 선출됐다.

에르진의 외케슈 엘마솔루 시장. 유로뉴스·트위터 캡처

에르진의 외케슈 엘마솔루 시장. 유로뉴스·트위터 캡처

튀르키예는 1999년 발생한 강진 이후 내진 강화 등 엄격한 건축 규정을 도입했다. 그러나 제대로 시행이 되지 않은 데다 튀르키예 정부가 부실 건축물에 허가를 내주는 '사면권'을 남발해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에르진과 불과 15~20㎞ 떨어진 오스마니예는 불법 건축물이 피해를 키운 대표적인 지역으로 꼽힌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오스마니예의 할리즈 센 건축가협회장은 한때 자신이 살던 9층짜리 아파트가 무너져 내린 현장을 바라보며 "철근이 안 들어 있다. 지진에 콘크리트가 힘을 잃고 기둥과 바닥이 함께 무너졌다"고 말했다.

도시계획자이자 학자인 무라트 구벤크는 "건설업자들은 지진 때 기둥이 휘어지고 무너지는 것을 막아주는 철근의 사용량을 줄이고, 설계보다 한 층을 더 올리는 한편 관리들은 돈을 받고 이를 눈감아 준다"고 지적했다. 오스마니예 남쪽 안타키아에선 지은 지 불과 10년가량 된 고급 주택 단지가 무너져 수백 명이 매몰되기도 했다.

지진 전문가 나시 고루르 박사는 "강진 속에서 무사하기 위해선 내진 설계된 도시 건설이 필요하다. 에르진이 그 사례"라며 "불법 건축물 통제는 지진으로부터 보호하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일각에선 에르진이 하타이주의 다른 도시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지진 강도가 크지 않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 6일 발생한 지진으로 인한 튀르키예와 시리아 양국의 누적 사망자 수는 14일 기준 4만1000명을 넘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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