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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유홍준의 문화의 창

‘병풍의 나라’와 ‘달항아리’의 전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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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유홍준 본사 칼럼니스트·명지대 미술사학과 석좌교수

유홍준 본사 칼럼니스트·명지대 미술사학과 석좌교수

봄이 왔다. 나에게 봄은 꽃소식보다 전시회 소식이 먼저 찾아온다. 올봄은 우리 고미술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특별전으로 풍성하다.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서는 ‘조선, 병풍의 나라 2’가 열리고 있다(4월 30일까지). 병풍은 서양에는 없고, 중국·일본보다 우리나라에서 크게 발달하였다. 회화는 필연적으로 건축과 연관되어 있다. 석조, 조적조(벽돌집), 목조 등 건축 형식에 따라 장식미술이 다른 형태로 나타났다.

서양에서는 석조 건축이 발달하여 벽화가 많이 그려졌다. 보티첼리의 ‘봄’ 등 서양미술사의 많은 명작이 벽화다. 중국은 벽돌집으로 회화, 글씨, 또는 무늬 대리석 등을 벽에 붙이는 부벽화(付壁畵)가 발달하였다. 이를 ‘첩락(貼落)’이라고 한다. 일본의 목조 건축은 난방시설 없이 두툼한 돗자리인 다다미(畳)방과 마루가 후스마(襖)라고 불리는 칸막이로 분할되어 있는데, 여기에 그림을 그린 후쓰마에(襖繪)가 발달하였다. 이를 장병화(障屛畵)라고 부르며 일본 회화사의 주요 장르로 되어 있다.

병풍, 조선시대 장식미술의 꽃
한옥 구조와 기후가 낳은 형식
달항아리는 한국미의 아이콘
개인 비장품 여섯 점 특별전시

이에 비할 때 우리 한옥은 온돌방과 마루로 구성되어 있어 그림을 붙일 벽면이 제한적이었다. 그래서 발달한 것이 병풍이다. 병풍은 접을 수 있어서 간편히 이동할 수 있고 보관하기도 편리하며 쓰임새가 아주 유용하다. 실내를 장식하기도 하고, 바람막이로 사용하기도 하였고, 제사 때 설치하였고, 잔치 때는 옥외에 설치하여 축제 분위기를 돋웠다. 이 때문에 조선 시대에는 장식 병풍들이 아주 다양하게 제작되었다. 서양미술사에 벽화가 있고 중국 회화사에 부벽화가 있고, 일본 회화사에 장병화가 있다면 조선 시대 회화사에는 병풍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의 이번 전시회에는 5년 전, 용산에 영국 건축가 데이비드 치퍼필드가 설계한 멋진 신사옥의 개관전으로 열린 ‘병풍의 나라’의 ‘시즌 2’ 전시로, 이번에는 국립고궁박물관 등 15개 미술관과 개인 소장의 명품들까지 한 자리에 모아 ‘일월오봉도’, ‘십장생도’ 등 궁중 장식 병풍부터 민화 병풍까지 51점이 미의 제전을 벌이고 있다. 병풍은 낱폭으로 구성되기도 하지만, 전체를 연결하여 하나의 화폭으로 삼은 일지병풍(一枝屛風)에는 대작이 주는 감동이 따른다. 특히 청전 이상범의 ‘귀로’(10곡 일지병풍)은 희대의 명작이다.

‘백자 달항아리’, 높이 42㎝, 18세기 전반, 개인소장.

‘백자 달항아리’, 높이 42㎝, 18세기 전반, 개인소장.

서울옥션에서 새봄맞이로 마련한 ‘달항아리’전은 참으로 감동적인 기획전이다(3월 19일까지). 달항아리는 한국미술의 영원한 아이콘이다. 국보·보물로 지정된 것만도 7점이다. 달항아리는 18세기 2사분기 금사리 가마에서 제작된 높이 45㎝(한 자 반)의 백자대호(白磁大壺)를 말한다. 달덩이같이 둥근 형태에 어진 선 맛이 있고, 은은한 백색에 부드러운 질감이 갖는 듬직한 아름다움에 무수한 찬사를 낳았다.

최순우는 잘 생긴 종갓집 맏며느리를 보는 듯하다고 하였고, 이동주는 선비문화와 서민문화의 절묘한 만남이라고 하였고, 김환기는 아예 항아리 속에 묻혀 살았고, 김원용은 느끼지 못하면 말도 하지 말라고 했다. 영국의 도예가 버나드 리치는 1935년 방한 때 달항아리를 사 가면서 “나는 행복을 안고 갑니다”고 하였고 ‘007’ 영화의 배우 주디 덴치는 빅토리아 알버트 뮤지엄에서 단 한 점 가져가라면 이 달항아리를 가져가겠다고 했다.

달항아리의 전통은 오늘날에도 이어져 한익환, 김익영, 박영숙, 권대섭 등 현대 도예가들에 의해 재현되고 있고, 고영훈, 강익중, 최영욱 등은 달항아리의 화가로 되었으며,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성화대가 달항아리 형태로 만들어질 정도로 하나의 전설로 되었다.

달항아리는 2005년 국립고궁박물관 개관전으로 국보·보물로 지정된 7점과 일본 오사카 동양도서관, 대영박물관 소장품 등 9점을 전시하면서 획기적으로 알려졌다. 이후 개인 비장품들이 속속 등장하여 오는 3월 21일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도 ‘달항아리’(예상가 15억∼25억 원)가 출품되어 있다.

이번 서울옥션 전시회에는 달항아리 개인 비장품이 여섯 점이나 전시되고 있다. 저마다의 형태미와 빛깔을 자랑하는 달항아리의 축제이다. 그러나 달항아리에는 ‘백자대호’만 있는 것이 아니라 높이 33㎝(한 자 크기)의 ‘백자중호(中壺)’도 아담한 또 다른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또 달항아리의 변형으로 몸체가 긴 ‘백자장호(長壺)’에는 우아함이 있다. 그리고 순백자만이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코발트 빛 문양의 청화(靑花)백자는 고상하면서도 화려한 아름다움을 보여 준다. 이번 전시회에는 백자 대호, 중호, 장호의 명품들이 여백 있는 디스플레이로  전시되었는데 그중 ‘청화백자 당초문 장호’는 보기 드문 명품으로 작품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고미술 전시회 소식은 계속 이어진다. 오는 28일 리움에서는 ‘조선백자, 군자지향(君子志向)’이 개막된다. 틀림없이 장대한 전시회일 것이다. 또 3월 2일에는 현대화랑에서 ‘예술이 생활과 만났을 때- 조선시대 민예와 목가구’전이 열린다. 얼마나 아기자기한 전시회일까. 이렇게 올봄은 꽃소식과 함께 사랑스러운 우리 고미술의 꽃놀이가 계속된다.

유홍준 본사 칼럼니스트·명지대 미술사학과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