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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대북 전단 금지법’ 이젠 폐기할 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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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손기웅 전 통일연구원장·한국평화협력연구원장

손기웅 전 통일연구원장·한국평화협력연구원장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무엇을 가장 두려워할까. 미국의 침공일까, 아니다. 미국이 공격하려 했다면 북한의 군사력이 미국에 감히 상대되지 못했던, 즉 핵무기가 없었던 시절에 했을 것이다. 사실상 핵무기를 보유하고 중국과 러시아가 든든하게 받쳐주는 지금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인다. 김 위원장이 먼저 일으키지 않는 한 전쟁은 없다.

필자가 보기에 정답은 북한 주민의 변화다. 북한 주민이 진실을 아는 일이 가장 두려울 것이다. 세계 최악의 빈곤과 독재 체제에서 인민의 삶이 어떻게 유린당하고 있는지, 인권·자유·민주주의가 무엇인지, 핵무기가 북한 정권의 선전과 달리 외세 침략 대비용이 아니라 김정은과 일가의 권력유지와 세습이 목적이라는 사실, 그리고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로 인한 고통을 김씨 일가와 권력층이 아니라 주민이 오롯이 감내해야 하는 현실을 깨닫는 것이다.

그것도 남쪽에 의한 주민 변화가 제일 두려울 것이다. 경제력 격차는 분단 이후 가장 크게 벌어져 무려 50배 이상이다. 인권·자유·민주주의·복지 분야에서 북한은 대한민국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동독이 서독의 영향에 의해 어떻게 사라졌는지, 주민의 요구 때문에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이 어떻게 변했는지, 유럽에 유학했던 김정은 위원장이 모를 리 없다.

북한 주민의 눈과 귀를 가리는 꼴
더 많은 북한 주민에 진실 알리고
주민 변화 통한 북 변화 이끌어야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김 위원장의 두려움 해결사는 문재인 대통령과 정권이었다. 2020년 12월 14일 민주당은 ‘남북 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이른바 ‘대북 전단 금지법’을 밀어붙였다. 북한 주민과 북한에 어떤 자료와 정보의 전달도 통제하고 어기면 처벌한다는 내용이다. 자칭 민주화 세력이 북한 주민의 눈과 귀를 가리는 악법을 만든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에게 헌상한 선물이었다.

악법도 이런 악법이 없다. 첫째, 북한 주민에 진실을 알리는 노력을 차단한다. 당시 문 정권은 북한 주민에 다가가기는커녕 김정은 위원장 눈치만 살폈다. 평화라는 미명 아래 김씨 세습 독재 체제와 공생하려 했으니 어처구니가 없는 발상이다. 헌법에 따라 대한민국 정부가 우리 국민 범주에 들어가는 북한 주민에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으면서 그 노력을 대신하려는 민간의 노력을 법으로 막았다.

둘째, ‘제3국’ 조항은 핵심 독소다. ‘제3국을 거치는 전단·물품(광고선전물·인쇄물·보조기억장치 등 포함)과 금전 또는 그 밖의 재산상 이익 등’의 북한 배부나 이동도 포함했다. ‘대북 전단 금지법’으로 부르다 보니 국민 대부분은 이 법이 접경지역에서 전단 살포를 통제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려는 법으로 오해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국민이 접경지역은 물론이고 세계 어느 곳에서라도 북한 주민에게나 북한 내부로 진실을 알리려는 노력을 통제·처벌하는 악법이다.

윤석열 정부는 ‘북한 주민 변화를 통한 북한 변화’에 주력해야 한다. 북한 주민이 진실에 눈을 뜨고 그들의 인권·자유·민주주의·복지를 주장하게 하고, 핵무기가 행복이 아니라 그들의 불행임을 깨닫도록 하고, 핵무기 없는 인간다운 삶과 체제 변화를 요구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동포이자 우리 국민인 북한 주민에게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알리는 것이 시급한 과제다. 결단과 행동은 북한 주민의 몫이다.

그 연결 고리는 북한 민주화와 인권이다. 당 강령에 ‘자유민주주의’는 물론이고 ‘자유’조차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는 민주당이 아니라, 윤석열 정부와 여당이 북한 주민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앞장서야 한다.

윤 대통령은 육성으로 발표한 것처럼 한반도 모든 주민이 자유·민주주의·인권·복지를 누리는 그 날까지 뚝심 있게 걸어야 한다. 통일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북한과의 소통과 협력이 통일이라는 분단 고착의 ‘분단 부역자’가 아니라 헌법에 명시된 통일의 길을 걷는 대한민국 대통령과 정부·국민이 돼야 한다.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면서 윤석열 정부는 대북 정책과 통일 정책의 목표를 정립해야 한다. 즉, 대북 정책의 목표는 대한민국 발전상을 제대로 인식하는 북한 주민이 한 사람이라도 더 많아지는데 둬야 한다. 통일 정책의 목표는 대한민국과 함께하려는 북한 주민을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이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 ‘대북 전단 금지법’ 폐기가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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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기웅 전 통일연구원장·한국평화협력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