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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조가 있는 아침

(163) 고인(古人)도 날 못 보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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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유자효 한국시인협회장

유자효 한국시인협회장

고인(古人)도 날 못 보고
이황(1502∼1571)

고인도 날 못 보고 나도 고인 못 봬
고인을 못 봐도 여던 길 앞에 있네
여던 길 앞에 있거든 아니 여고 어떨꼬
-도산육곡판본(陶山六曲板本)

“저 매화에 물을 주라”

삶은 쉽지 않다. 어려움에 부닥쳤을 때, “아, 옛 성현 같으면 이럴 때 어떻게 하셨을까” 하는 생각이 사무치게 들 때가 있다. 그 물음에 퇴계(退溪) 선생은 말씀하신다. “옛 어른도 나를 보지 못하고 나도 그분들을 보지 못하지. 하지만 그분들이 행하던 길이 가르침으로 남아 있네. 올바른 길이 우리 앞에 있는데 따르지 않고 어쩌겠는가.”

입멸을 앞둔 붓다 곁에서 제자 아난이 슬피 울자 이렇게 말씀하신다. “울지 마라. 내가 한 말 속에 내가 있다.” 그렇다. 우리는 당대의 기록에 의해 붓다도, 공자도, 예수도 만날 수 있다.

이 시조는 이황(李滉)의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 후육곡(後六曲) 중 세 번째 시조다. ‘도산십이곡’은 전육곡과 후육곡으로 나뉘어 있는데, 전육곡에서는 세속적인 부질없는 마음을 씻어 맑고 순수한 심성(心性)을 닦으려는 의지를 읊었고, 후육곡은 학문을 닦고 심신을 수양하는 심경을 읊었다.

이황은 이언적의 사상을 이어받아 발전시킨 영남학파와 동인의 큰 스승인 유학자이다. 율곡(栗谷) 이이(李珥)와 함께 이기론을 형성해 성리학을 완성했다. 매화 사랑으로도 유명했는데 매화를 ‘매형(梅兄)’ ‘매군(梅君)’이라고 부를 정도였으며, 죽기 직전에 ‘저 매형에게 물을 주라’고 했던 일화로도 유명하다.

유자효 한국시인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