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거야, 입법 독주…이번엔 노란봉투법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15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회의실에서 고용노동법안 심사소위원회 회의가 열리고 있다. [뉴스1]

15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회의실에서 고용노동법안 심사소위원회 회의가 열리고 있다. [뉴스1]

합법 파업의 대상을 확대하고, 불법 파업 시 노동자의 손해배상 책임을 제한하는 이른바 ‘노란봉투법’이 야당 단독 의결로 국회 첫 관문인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했다. 하청업체 노동자가 원청업체를 상대로 파업할 수 있고, 기존엔 불법으로 규정된 쟁의를 합법 영역에 넣는 등의 내용이다. 사측의 손해배상 청구가 있을 때 법원이 그 배상 책임을 노동자별로 일일이 정하도록 하는 내용도 들어갔다. 이에 경제계는 우려의 목소리를, 노동계는 환영의 목소리를 일제히 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15일 법안심사소위를 열고 노조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2조, 제3조 개정안을 의결했다. 2014년 쌍용차 정리해고 반대 파업 당시 노조가 사측에 47억원을 배상해야 할 처지에 놓이자 시민단체가 노란 봉투(월급봉투)에 성금을 모아준 일을 계기로 추진돼 노조법 개정안에 ‘노란봉투법’이란 이름이 붙었다.

당초 여당인 국민의힘은 개정안이 불법 파업을 조장하고 기업 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며 강력하게 반대 의사를 표시했다. 하지만 법안소위에서 과반을 차지하는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은 의결을 강행했다. 법안은 오는 21일 열리는 환노위 전체회의에서도 어렵지 않게 통과될 것으로 보인다. 환노위 소속 의원 16명 중 민주당과 정의당은 10명이다.

개정안은 노조법 2조 2호에 명시된 사용자 개념을 확장했다. 현행법은 사용자를 ‘사업주, 사업의 경영담당자, 근로자 관련 사항에 대해 사업주를 위하여 행동하는 자’로 정의한다.

재계 “노란봉투법, 무제한 파업법” 노동계 “적법파업 확대”

개정안은 ‘근로계약 체결의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하여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를 추가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원청업체 사장도 사용자에 포함되기 때문에 하청업체 직원이 원청업체를 사용자로 삼아 파업 등 쟁의에 나설 수 있다.

지금까진 불법으로 규정된 쟁의행위도 합법이 될 수 있게 바꿨다. 현행 노조법 2조 5호는 노동쟁의를 노조와 사용자 간 ‘근로조건의 결정’에 관해 발생한 분쟁 상태로 규정하고 있다. 개정안은 ‘결정’이란 단어를 삭제했다. 지금까지 임금협상 등 미래 근로조건을 결정하는 과정에서만 쟁의가 허용됐다면, 개정안 통과 뒤엔 현재 근로조건을 이유로도 쟁의할 수 있다.

개정안은 불법 쟁의행위에 따른 사용자 측 손해배상 청구가 있을 경우, 법원이 그 손해를 사람별로 일일이 따져 책임을 묻도록 하는 내용도 담았다. 현행법 3조에는 합법적 쟁의행위로 인한 손해에 대해선 사용자가 노조나 근로자에게 배상을 청구할 수 없게 하는 내용만 담겨 있다. 개정안은 법원이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할 때, 각 손해의 배상 의무자를 구별해 그 귀책사유와 기여도에 따라 개별적으로 책임 범위를 정하도록 하는 내용을 추가했다. 사실상 손해배상 청구를 하는 기업에 구체적인 손해와 노동자의 불법행위를 입증해야 하는 책임을 부과한 것이다.

아울러 신원보증인에 대해 단체교섭, 쟁의행위, 그 밖의 노조 활동으로 인한 손해에 책임이 없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쟁의행위에서 일어난 모든 손해배상 책임을 신원보증인에게 부과하는 건 기존 법체계에서 지양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단체는 거세게 반발했다. 특히 경영계는 하청 노조가 원청업체를 상대로 합법적으로 파업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개정안 조항과 관련해 “파업 만능주의를 조장하는 무제한 파업법”이라고 반발했다.

대한상의는 강석구 조사본부장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강행 처리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 강 본부장은 “이번 노조법 개정안은 사업장 점거, 생산 방해 등 노조의 불법 파업을 보호하고 계약 관계가 없는 원청업체에 대해 하청 노조가 파업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내용”이라고 지적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도 성명서를 내고 “노란봉투법은 기업할 의지를 꺾고 기업 경쟁력을 저하시켜 국가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경영계와 여당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야당이 일방적으로 노동조합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것에 대해 경영계는 깊은 유감과 우려를 표한다”고 비판했다.

노동계는 환영하는 분위기다. 한국노총은 성명을 통해 “한참 늦었지만 이번 국회에서 부족하게나마 해결의 단초를 마련하게 된 것은 다행”이라며 “여전히 진짜 사장을 찾기 위해 숨바꼭질해야 하고, 정당하고 적법한 파업을 하기가 사막에서 바늘 찾기보다 어려운 현실에서 노조법상 사용자와 노동쟁의 범위를 확대시키는 건 의미 있는 진전”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환노위 법안소위 결과를 수용해 신속한 상임위 의결과 본회의 처리에 나설 것을 여야에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등 양대 노총 위원장은 이날 “노조할 권리 보장을 위한 당면 과제인 노조법 제2조와 제3조 개정을 포함한 노동·민생 과제에 대한 국회 입법을 촉구하겠다”고 공동 결의했다.

다만 개정안이 환노위 전체회의를 통과해도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여당의 반대로 계류될 가능성이 있다. 이에 김영진 민주당 의원은 이날 의결 직후 기자들과 만나 “법사위에서 60일 경과 후에 다시 환노위로 오게 된다면 절차대로 의결하고 진행할 예정”이라며 본회의 직회부 가능성을 시사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