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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정서적 내전 상태”란 원로들의 비명…정치 개혁 절실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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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14일 '2023년, 정치제도 개혁의 우선과제'를 주제로 대화문화아카데미가 주최한 토론회가 서울 여의도 글래드 호텔에서 열렸다. 왼쪽 윗줄부터 시계방향으로 김종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 김상희 더불어민주당 의원, 심상정 정의당 의원, 이종배 국민의힘 의원, 김부겸 전 국무총리, 이주영 전 국회부의장, 이홍구 전 국무총리, 정세균 전 국회의장, 이재오 국민의힘 상임고문,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사진 대화문화아카데미]

14일 '2023년, 정치제도 개혁의 우선과제'를 주제로 대화문화아카데미가 주최한 토론회가 서울 여의도 글래드 호텔에서 열렸다. 왼쪽 윗줄부터 시계방향으로 김종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 김상희 더불어민주당 의원, 심상정 정의당 의원, 이종배 국민의힘 의원, 김부겸 전 국무총리, 이주영 전 국회부의장, 이홍구 전 국무총리, 정세균 전 국회의장, 이재오 국민의힘 상임고문,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사진 대화문화아카데미]

이홍구 “사회계약 필요” 김부겸 “정치현실에 자괴감”

승자 독식 선거제 바꾸려면 여야 지도자 결단 필수

지난 14일 ‘2023년 정치제도 개혁의 우선 과제’를 주제로 열린 대화문화아카데미 토론회에선 ‘4류’로 손가락질받는 한국 정치 현실에 대한 원로들의 신랄한 진단이 이어졌다. 이홍구 전 총리는 “지난 반세기 동안 가장 큰 구호였던 민주화를 비롯해 대한민국이 상당히 발전했지만, 최근 몇 달 동안은 다시 어려워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상당히 고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20년 전 중앙일보에 쓴 자신의 칼럼을 소개하며 “민주주의 헌법을 지탱할 국민적인 사회 계약과 약속이 아직도 없다”고 지적했다. 정세균 전 국회의장은 “갈등과 대립을 양산하는 승자 독식의 정치 구조를 바꾸지 못한다면 과거의 불행을 답습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부겸 전 총리의 말이 생생했다. 그는 “정치를 30년 하고 나와 있지만 ‘정치가 이렇게 비참한 대접을 받을 분야였나’라는 자괴감이 든다. 선배로서 죄송하다. 여론조사에서 ‘나와 정치적 생각이 다르면 밥도 같이 안 먹겠다, 결혼도 안 시키겠다’는 응답이 50%다. 이 정도면 사실상 정서적 내전 상태”라고 평가했다. 이어 “‘내 지역은 괜찮겠지’ ‘나는 빠져나갈 거야’ 식으로 문제를 피해 갔는데 그 결과가 지금 우리 공동체의 분열”이라며 “이번 국회에서 부디 개혁해 달라”고 당부했다. 원로들의 목소리는 승자 독식과 극단적인 진영 충돌이 초래한 한국 사회와 정치 현실에 대한 비명으로 들렸다.

한국 정치가 이대로는 안 된다는 위기감이 비단 원로들만의 감정은 아닐 것이다. 국회 내 ‘초당적 정치개혁 의원 모임’에 절반 가까운 여야 의원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것이 그 방증이다. 정치 개혁의 종착점은 헌법을 고치는 일이겠지만, 현실적 출발점은 승자 독식과 사표(死票) 양산의 폐해를 낳고 있는 현행 국회의원 소선거구제의 개편이다. 국회 정치개혁특위의 국민 인식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72.4%가 “선거제 개편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남인순 위원장은 “선거구 획정 법정기한인 4월 10일까지 의미 있는 결과를 도출하겠다”고 했다. 물론 선거제 개편도 쉬운 과제는 아니다. 중대선거구제와 연동형 비례대표제 등 구체적 각론에 대한 여야의 계산법이 매우 다르다. 의원들에겐 공천과 당락 등 사활적 이해가 걸려 있다.

“개혁이 성과를 내지 못한 건 당리당략에 얽매인 지도자들의 근시안적 태도 때문”이란 정 전 의장의 지적처럼 선거제 개편에 탄력과 속도가 붙으려면 여야 지도자들의 이해타산을 초월한 결단이 필수적이다. 원로들 말을 빌리자면 ‘한국 민주주의의 사회계약’ ‘한국판 마그나카르타(대헌장)’를 만든다는 심정으로 정치권과 학계·언론·시민사회가 함께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