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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추억] 금기였던 월북 문인 연구에 물꼬 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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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오탁번 전 한국시인협회장

오탁번 전 한국시인협회장

월북 문인에 관한 논의가 금기시되던 시절, 문학사 최초로 시인 정지용에 대한 논문을 쓴 오탁번(사진) 시인이 별세했다. 80세.

15일 한국시인협회는 고려대 명예교수이자 국문학자인 오탁번 시인이 지난 14일 오후 9시 세상을 떠났다고 전했다. 충북 제천에서 태어난 고인은 고려대 영어영문학과 재학 중 ‘신춘문예 3관왕’으로 이름을 알렸다. 196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동화 ‘철이와 아버지’가, 196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 ‘순은이 빛나는 이 아침에’가, 1969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처형의 땅’이 당선됐다.

1971년 정지용을 연구한 석사 논문으로 주목을 받았다. 정지용은 최근에야 1950년 9월 인민군에 의해 납북 도중 숨진 사실이 알려졌지만 당시는 월북 문인을 언급하는 게 금기였다. 오 시인 논문을 계기로 1980년대 월북 문인을 재조명하는 연구가 활발해졌다.

고인은 이후 수도여자사범대학 국어과 조교수를 거쳐 1978년부터 고려대 국어교육과 교수로 강단에 섰다.

1998년 계간 ‘시안(詩眼)’을 창간했고, 2008년부터 2010년까지 한국시인협회장을 지냈다. 『아침의 예언』 『너무 많은 가운데 하나』 『생각나지 않는 꿈』 등 시집과, 『처형의 땅』 『새와 십자가』 『저녁연기』 등 소설집을 남겼다. 평론집 『현대문학 산고』를 비롯해 『헛똑똑이의 시 읽기』 등 다양한 산문집도 냈다.

한국문학작가상(1987), 동서문학상(1994), 정지용문학상(1997), 한국시인협회상(2003), 김삿갓 문학상(2010), 은관문화훈장(2010), 고산문학상 시 부문 대상(2011)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은자 시인(전 한림대 교수)과 자녀 정록(고려대 교수)·가혜씨가 있다.

유자효 한국시인협회장은 “시와 함께 살아간, 시로 자신을 형상화한, 시로 생애를 완성한 대표적인 시인”이라고 애도했다. 빈소는 고려대 안암병원 장례식장 303호, 발인은 17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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