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광장에 기습적으로 설치된 이태원 참사 희생자 분향소의 자진철거 기한인 15일 오후 1시가 지났다. 이날 서울시가 강제 철거에 필요한 행정대집행에 나서지 않으면서 이태원 희생자 유족 측과 최악의 갈등 상황은 일단 피했다.
그러나 서울시는 불법 점유인 만큼 철거해야 한단 입장이고, 유족 측은 마땅한 대안 없이 추모 장소로 서울광장만을 고집해 최악의 상황은 언제 터질지 모르게 됐다.
서울시 "추모 취지 공감하지만…."
서울시는 15일 오후 2시30분쯤 “유가족이 현재까지 아무런 답변 없이 대화 자체를 거부하고 있어 매우 유감스럽다”며 “시와 시민들은 충분히 인내하며 기다려왔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 “추모의 취지는 백분 공감하지만, 고인들에 대한 추모 또한 법과 원칙의 테두리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며 “서울광장의 불법 시설물 철거를 전제로, 합법적인 어떤 제안도 서로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은 여전히 변함없다”고 강조했다.
유족 “왜 겁박하나, 대집행 중단해야”
유족은 “(서울광장) 분향소를 지키겠다”며 서울시에 맞서고 있다. 이날 자진철거 시한이었던 오후 1시에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는 서울광장 분향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우리를 보호해줘야 할 정부와 서울시가 왜 오히려 우리를 겁박하는가”라며 “분향소에 대한 행정대집행을 즉각 중단하라”고 주장했다. 유족은 이날 이태원 참사 희생자를 기리는 159배를 올리고, 서울시를 규탄했다. 희생자는 모두 159명이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한 유족은 “이태원 참사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것은 참사 피해자들의 권리일 뿐만 아니라 시민들의 권리”라며 “기억과 추모의 권리를 침해하는 서울시의 위법한 행정대집행을 결코 용납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기자회견엔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관계자 등 정치권·법조계 관계자들이 참여해 유족을 지지했다. 유족은 지난해 12월 녹사평역 인근에 설치했었던 분향소를 전날 서울광장으로 이전·통합하는 등 배수의 진을 친 상황이다.
서울시 “추모도 법 테두리 안에서 이뤄져야”
서울시는 유족의 강경한 입장에 그간 강조해왔던 ‘법과 원칙’을 내세운 것으로 보인다. 오신환 서울시 정무부시장은 지난 7일 긴급 브리핑에서 “서울광장을 불법 점거하고, (시설물) 설치를 허용하라는 것은 행정원칙상 맞지 않는다”며 “단호하게 대처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분향소가 서울광장에 기습 설치된 지난 4일에 이어 6일 각각 계고장을 전달함으로써 행정대집행의 요건을 갖췄다는 입장이다. 행정대집행에 앞서 자진 철거를 유도하는 계고를 2회 이상 해야 한단 판례에 따랐단 것이다. 또 서울시는 지난 8일 오후 1시로 뒀던 자진철거 기한을 지난 7일 “유가족의 비통한 심정을 이해하고 있다”며 일주일 뒤인 15일 오후 1시로 미뤘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법상 요건은 충족됐기에 언제라도 (행정대집행이) 가능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르면 이날 오후나 다음날 시의 행정대집행 절차가 이뤄질 수 있다. 다만 행정대집행법 4조는 대상자가 동의하지 않는 상황에선 해가 뜨기 전이나 해가 진 후 행정대집행을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대집행 시 충돌 상황 발생 불가피
양측 사이 긴장감이 팽팽한 만큼 분향소 철거 행정대집행이 이뤄지면 과격한 충돌 상황은 불가피해 보인다. 이종철 유가족협의대표는 앞서 분향소 철거 시 “휘발유를 준비해놓겠다”며 분신(焚身)을 시사하기도 했다. 유족은 지난 6일 분향소로 난로를 반입하려다가 제지를 받자 서울시청 정문으로 몰려가 시·경찰과 대치하기도 했다. 시 내부에서도 “여론 등을 고려해야 한다”는 신중론도 있지만, 법과 원칙을 세워야 한다는 강경론도 적잖은 분위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