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데이비드 올턴 영국 상원의원이 13일 오전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태영호 의원이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로 있을 때 저를 ‘스파잉’(감시 정찰)하는 게 일이었답니다. 그러다 마음이 바뀐 것처럼 북한 사람들의 인식의 변화를 어떻게 이끌어내느냐가 중요합니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데이비드 올턴(72) 영국 상원의원은 13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가진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태 의원처럼 마음의 변화를 이끌어내려면 물론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그렇더라도 끈기 있게 추진해 나가야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올턴 의원은 영국 의회 내 초당적 북한 인권 관련 의원 그룹인 ‘APPG-NK’ 공동의장으로 있으면서 북한 인권 개선에 목소리를 내온 국제 인권운동가다. 방한 중이던 지난 10일 통일부와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이 공동주최한 ‘북한주민의 생명권 보호 및 인권 증진을 위한 국제사회의 역할’ 토론회에서 기조연설을 한 올턴 의원은 “토론회에서 젊은 청년들의 뜨거운 참여 열기에 놀랐다”며 “대한민국 정부가 청년들이 인권 보호에 이토록 관심이 높다는 걸 알아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2019년 탈북 어민 북송 사건을 두고는 “한국 정부가 사건을 처리한 방식에 상당히 실망했다”며 “대한민국 헌법에 북한도 분명히 대한민국 국민에 포함된다고 명시돼 있다. 따라서 탈북민 인권을 보호하는 건 대한민국의 의무”라고 강조했다. 올턴 의원은 인터뷰에서 여러 차례 “한국이 북한 인권 문제에 좀 더 신경을 쏟아야 한다. 목소리를 더 높여야 한다”고 했다.

13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는 데이비드 올턴 영국 상원의원. 김경록 기자
- 북한 인권 증진을 위해 오랫 동안 많은 기여를 해 왔다. 이 문제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게 된 계기가 있나.
- 약 20년 전 한 탈북자가 영국 의회로 찾아와 끔찍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자신의 처와 아이 둘이 기근으로 죽었다고 했다. 영국에 약 1000명의 탈북자가 사는데 당시 그 얘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고, 그래서 더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당시 영국과 북한의 수교 이후 영국에 북한 대사관도 생겼는데, 그런 배경에서 북한 인권 이슈에 좀 더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됐다.
“‘WMD’ 논의 많지만 ‘인권파괴’ 얘기는 없어”
- ‘APPG-NK’ 역시 영국의 북한 인권 관련 여론을 주도해 왔다.
- 초당적 의원 그룹 APPG-NK의 큰 업적 중 하나가 영국 BBC 방송에서 ‘BBC 코리아 서비스’를 개설하도록 한 것이다. 사실 영국 정부도 북한과는 수교 관계인 만큼 정치적 민감성 등을 들어 반대했고 BBC 내부에서도 재원 문제 등을 이유로 반대했다. 1948년 발표된 세계인권선언은 제19조에서 표현의 자유와 함께 정보의 자유를 규정하고 있다. 그래서 BBC가 북한 관련 방송 서비스를 안 하는 것은 인권선언에 반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북한으로 흘러들어가야 할 여러 정보가 차단돼 있는데, 여기에 맞서 싸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결국 우리의 뜻을 관철했다(※ 현재 BBC 라디오 코리아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다).
- 현재 김정은 체제의 북한 인권 상황을 어떻게 평가하나.
- 올해는 마이클 커비가 위원장으로 있었던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의 북한 인권 보고서가 나온 지 10년째 되는 해다. 이 보고서의 결론을 절대 잊어선 안 된다. 북한에서 자행되는 탈북민 처형이나 납치, 강제 낙태 등은 세계인권선언 30개 조항에 전적으로 위배되는 행위다. 북한 비핵화 이슈가 커지면서 한국의 관심이 ‘안보’ 쪽에 치우치는 느낌이 있는데 ‘북한 인권’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국제사회도 마찬가지다. ‘WMD’(대량살상무기)에 대한 논의는 많지만, ‘인권 파괴’(Human Rights Destruction)에 대해선 아무도 얘기하지 않는다.

13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는 데이비드 올턴 영국 상원의원. 김경록 기자
“탈북민 강제북송, 그러면 中과 뭐가 다른가”
올턴 의원은 이 대목에서 “한국이 북한 인권 문제에 신경을 좀더 써야 한다. 특히 탈북민 강제 북송 사건과 관련해 더 많은 관심을 쏟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탈북민 강제 북송은 1951년 발표된 난민 협약을 위반한 것”이라며 “(탈북민을 북한으로 돌려보내는) 중국도 위반하고 있으니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했다.

통일부가 지난해 7월 12일 공개한 사진으로 2019년 11월 당시 한국 정부가 판문점에서 탈북 어민 2명을 북한으로 송환하려 하자 이들이 몸부림치며 북송을 거부하는 모습이 찍혔다. 사진 통일부
- 탈북 어민 북송 사건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요구하며 지난해 윤석열 대통령에게 공개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 한국 정부가 이 사건을 다룬 방식에 상당히 실망했다. 만약 탈북 어민들이 형사사건에 연루돼 있었다면 훌륭한 법치주의 시스템을 갖춘 대한민국 법정에서 재판을 받았어야 한다. 북한에서 공정한 재판이 힘들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 아닌가. 2019년 한국 정부가 탈북 어민들 뜻에 반해 송환했는데, 탈북민 강제 북송을 하는 중국과 뭐가 다른가. 이런 방식에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겠는가. 그러면 탈북민 강제 북송에 대한 북한의 태도 변화는 절대 있을 수 없다.
- 지난 10일 통일부와 태영호 의원이 공동주최한 북한 인권 관련 토론회는 어땠나.
- 그날 굉장히 놀란 건 젊은이들 참여가 두드러졌다는 것이다. 고등학생도 있었다. 한국 청년들이 여기에 관심이 많다는 것은 상당히 고무적이고 좋은 징조라고 본다. 대한민국 정부는 북한 인권과 관련해 이런 청년들의 요구 수준이 굉장히 높다는 걸 알아야 한다. 토론회에서 태 의원은 자신이 주영 북한대사관 공사로 있을 때 저를 ‘스파잉’ 하는 게 일이었다고 했다. 제가 무슨 연설을 하는지, 어떤 서한을 보내는지 일일이 보고하고 평양에 전달하는 게 일이었다고 했다. 그러다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국가를 보면서 마음의 변화가 생겼다고 말했다. 이런 변화를 어떻게 이끌어내느냐가 관건이다. 물론 시간이 오래 걸리겠지만 시간이 걸리더라도 실망하지 말고 끈기 있게 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의 다음 세대인 청년들을 더 격려해야 한다.

지난 10일 통일부와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이 공동주최해 국회에서 열린 ‘북한주민의 생명권 보호 및 인권 증진을 위한 국제사회의 역할’ 토론회에 참석한 데이비드 올턴(오른쪽 둘째) 영국 상원의원과 권영세(왼쪽) 통일부 장관이 토론회 도중 함께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 통일부
“북한 주민들에 더 많은 자유와 기회 줬으면”
- 10일 권영세 통일부 장관과 나눈 대화는.
- 북한의 인권 문제와 관련해 한국이 그동안 너무 침묵했고 목소리를 더 높여야 할 것 같다고 얘기했다. 권 장관도 이 부분을 동의해줘서 상당히 기쁘고 고무됐다.
- 탈북민에 보내는 메시지가 있다면.
- 희망의 메시지를 드리고 싶다. 몇 년 전 한 10대 탈북 청년이 리버풀에 있던 나를 뜬금없이 찾아와 자신이 북한 수용소에서 겪은 끔찍한 여러 얘기를 들려줬다. 그 청년은 나중에 영국에서 최초로 석사학위를 받은 북한인이 됐다. 지금은 리버풀대학교에서 공부하고 강의를 나가기도 하며, 올해는 보수당 후보로 한 지역 선거에 출마하기도 했다. 나는 이 청년이 북한 주민들이 열망하는 것의 상징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북한 사람들이 대학에 다닐 기회, 해외를 자유롭게 여행하고 교류할 기회를 누리며 살 날이 왔으면 좋겠다. 예컨대 의회 진출 등을 통해 그들이 더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해주고, 더 많은 기회를 보장해줬으면 좋겠다.
올턴 의원은 영국 리버풀호프대학교 학생이던 21세 때 최연소로 리버풀 시의원에 당선됐고, 1997년 당시 존 메이저 총리에 의해 종신직 상원의원으로 지명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