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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차이나 중앙시평

핵 무장 여론, 이대로 좋은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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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위성락 전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리셋 코리아 외교안보분과장

위성락 전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리셋 코리아 외교안보분과장

핵무장을 지지하는 여론이 75%를 넘고 있다. 이를 주창하는 인사들의 움직임도 활발해졌다. 현 정부 들어서 뚜렷한 추세다.

핵무장은 국운을 좌우할 정도의 리스크를 가진 사안이다. 여기에 동력이 붙는데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이 우리 사회의 분위기다. 기이하고 우려된다. 이대로 가면 다음 대선에서 핵무장을 공약하는 후보가 나올 수 있다. 그러다가 핵무장이 나라의 정책이 되면 그 후에 벌어질 일은 엄청날 것이다. 이 문제를 심각하게 따져 보아야 하는 이유다.

핵무장론의 역풍은 감당불가
대미 압박용 핵카드로도 무리
감성적인 핵무장론 통제하고
확장억제 강화 전략 집중해야

우선 이 여론이 핵무장에 대한 진지한 사회적 논의의 결과물인지부터 짚어 볼 필요가 있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핵무장이 지닌 국제적 함의나 한국 같은 대외관계를 가진 나라가 직면할 엄혹한 현실에 대해 충분한 논의는 없었다. 그렇다면 지금의 여론은 점증하는 북핵 위협과 이를 통제하지 못하는 현실에 좌절하고 반감을 갖게 된 다중의 대증적이고 감성적인 반응이라고 보아야 한다.

우선, 핵무장의 함의와 한국이 직면할 현실을 살펴보자. 핵무장을 하자는 것은 북핵 대처를 위해서, 북한과 유사하게 비칠망정, 국제규범을 벗어나는 극단적 선택을 하자는 말이다. 이 경우 한국은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은 물론 전 세계 주요국가와 대립해야 한다. 한미 동맹에 막대한 손상이 오고, 국제적 압력이 전방위로 밀려들 것이다. 미·중 대립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세계가 서방 진영과 중·러 진영으로 양분되는 상황에서, 우리가 핵무장으로 양 진영 모두와 등진다면 나라는 극히 위태로워질 것이다.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 심대한 타격도 예상된다. 그러면 감성적인 핵무장 지지 여론은 일순간에 무너지고 심각한 국론 분열이 올 것이다. 우리의 정치·경제·사회적 여건이 국제 제재에 취약하므로 핵무장은 한국에 돌이키기 어려운 부담을 안길 것이다.

이런 사정을 의식해서인지 일부 핵무장론은 수정주의적 양태로 제기된다. 핵무장 카드를 흔들어서 농축 및 재처리 권리를 확보한 후 유사시에 바로 핵무장을 할 수 있도록 잠재력을 키우자는 주장이 그 예이다. 이 또한 비현실적이다. 그러면 농축·재처리 권한을 얻기 더 어려워진다. 농축·재처리는 핵무장과 무관하게 핵을 평화적으로만 이용한다는 신뢰를 주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일본은 이런 신뢰를 얻어서 그 권리를 확보했다. 우리는 과거에 핵무기 개발과 핵 물질 추출을 시도한 전력이 있다. 이제 핵무장을 위한 잠재력 확보를 위해 농축·재처리를 하겠다면 누구도 허용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은 이미 기술적으로 핵무기 제조 잠재력을 갖고 있다. 비확산 명분을 지키며 조용히 있는 것이 잠재력을 키우고 농축·재처리에 접근하는 길이다.

사리가 이러니 결국 최적의 대안은 미국의 확장억제를 보다 확실하고 강력하게 만드는 것이고, 이는 미국과의 공조를 깊이 하는 방식으로 달성해야 한다. 그런데 이에 대해서도 일각에서는 핵무장 카드를 이용해야 미국으로부터 확장억제 관련 추가 약속을 얻어내는 데 도움이 된다는 생각을 내놓고 있다. 이 또한 득보다 실이 많은 접근이다. G7에 근접한 위상을 가진 나라가 비확산 명분을 쉽게 여기고, 동맹을 상대로 벼랑 끝 전술을 구사하는 것처럼 비칠 수 있다. 실질 측면에서도 역효과가 날 소지가 있다. 확장억제를 강화하는 취지는 미국이 핵 피격 위험을 무릅쓰고 한국을 위해 북한에 핵 공격을 하도록 만들자는 것인데, 핵무장 카드로 미국을 압박할 경우 결정적인 순간에 미국이 자기희생을 감수할 마음이 커질지 의문이다. 더욱이 확장억제에 대한 한미 간 협의가 이제 막 시작되었으니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협상에 집중해야 한다. 국면을 어지럽히고 신뢰를 갉아먹을 때가 아니다.

이렇듯 여론조사 결과에 감성적인 영향이 관찰되고, 핵무장 추진이 초래할 파장이 엄중하다면 점증하는 핵무장 여론을 두고 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정부, 정치권, 전문가 집단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핵무장이 초래할 문제를 알리고 최적의 대안을 설명해야 한다. 보수·진보할 것 없이 사회 지도층이 이 작업에 힘을 보태야 한다.

흥미롭게도 비핵 평화를 내세워온 진보 진영은 떠오르는 핵무장론에 대해 그리 강한 반대를 하지 않고 있다. 압도적인 핵무장 지지 여론을 의식해서인지 모르나, 진보 진영도 나라의 미래를 위해 이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핵무장론이 이처럼 쉽게 절대다수의 지지를 얻게 된 것은 한국 외교·안보 논의 생태계가 취약하기 때문이다. 생태계가 제대로 작동했다면 진즉 핵무장의 문제점이 논의되어 다수 여론은 이를 무리한 옵션으로 간주했을 것이다.

이제라도 한국 사회가 극단적 정책을 추동할 소지가 있는 감성적 여론에 적절하게 대처할 역량을 가졌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래야 한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도가 높아진다. 확장억제를 강화하는 데 필요한 교섭력도 커진다.

위성락 전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리셋 코리아 외교안보분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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