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최종학의 경영산책

회계감사 규제, 보완 좋지만 틀 흔들면 위험하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3면

최종학 서울대 경영학부 교수

최종학 서울대 경영학부 교수

과거 대우조선해양 사건 등 대규모 분식회계 사건이 끊이지 않고 발생한 이유는 무엇일까. 깐깐히 감사를 수행하면 기업이 감사인을 교체해버리는 일이 발생하니 감사인이 독립적으로 감사를 수행할 수 없었다. 회계법인들도 일감을 따려고 과잉경쟁을 하다 보니 보수가 적정 이하로 정해지는 경우가 많았다. 즉 충분한 시간을 투입해 제대로 감사를 수행할 여건이 부족했다. 그러니 분식회계를 사전에 적발하기가 어려웠고, 그 결과 사건이 터지자 주주나 채권자 등의 투자자와 직원 등 기타 이해관계자들이 큰 피해를 보는 일이 반복됐다.

감사 보수, 부당한 폭리일까

대우조선해양 사건 후 이런 일의 재발을 막고자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와 ‘표준감사시간 제도’가 도입됐다.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란 기업이 6년간 감사인을 자율적으로 선임하면 3년은 정부가 감사인을 지정하는 것으로, 감사인의 독립성 향상을 위해 마련된 제도다. 일부 상장기업에 대해 지정제를 실시하는 나라는 있지만, 모든 상장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것은 한국뿐일 정도로 파격적인 제도다. 표준감사시간은 ‘대략 몇 시간 감사를 해야 한다’는 기준을 마련한 것이다. 적정한 시간이 투입되어야 감사가 제대로 수행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학술연구 결과를 보면, 제도 도입 후 감사시간이 증가했고, 결과적으로 감사품질도 향상됐다. 즉 제도가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분식 사건 계기로
감사인 지정 및 표준시간제 도입
회계법인 갑질 등 불만 나오지만
투명성 향상 등 긍정적 효과 분명

대규모 분식회계 사건이 잇따르면서 회계감사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자 정부는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와 ‘표준감사시간제’ 등 규제책을 도입했다. 과거 대형 분식회계 사건을 일으켰던 대우조선해양의 경남 거제시 옥포조선소가 안개에 싸여 있는 모습. [중앙포토]

대규모 분식회계 사건이 잇따르면서 회계감사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자 정부는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와 ‘표준감사시간제’ 등 규제책을 도입했다. 과거 대형 분식회계 사건을 일으켰던 대우조선해양의 경남 거제시 옥포조선소가 안개에 싸여 있는 모습. [중앙포토]

그렇지만 이런 변화 이후 회계 관련 비용이 너무 늘었고, 회계법인이 고압적 자세로 갑질을 한다는 기업 불만이 제기됐다. 이 주장이 맞는지 살펴보자. 상장기업의 감사 보수는 자료 공개가 시작된 2006년 시간당 9만7000원에서 제도 도입 직전인 2018년에는 시간당 7만9000원까지 감소했다. 제도 도입 후 2021년 10만2000원으로 올랐다. 물가상승률을 고려하면 30%쯤 하락한 수치다. 즉 감사인이 부당한 폭리를 취한다고 보기 어렵다. 총보수는 같은 기간 2배로 올라 2021년 중위 수가(酬價)가 1억4000만원 정도다.

그러나 그 이유는 기업의 규모와 복잡성이 증가하고 내부회계관리제도에 대한 감사 등 관련 법률이 강화되어 감사 시 수행해야 할 업무가 늘어난 결과 감사시간이 1.8배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오른 수치가 대략 미국의 3분의 1, 일본·홍콩·싱가포르의 절반에서 3분의 2 정도다. 이를 보면 감사 보수가 너무 높아서 문제라고 보기 힘들다.

감사인 지정제 폐지는 시기상조

또한 감사인들이 독립적으로 행동하게 됨으로써 ‘어떤 방식으로 회계처리를 하자’는 요구를 들어주지 않게 됐고, 감사인이 회계 의사결정을 기업 대신 내리고 회계처리를 해주는 것도 불법이 됐다. 이런 비정상적인 일을 바로잡기 위해 법이 개정된 것이다. 따라서 일부 기업 입장에서는, 예전에는 기업의 요구를 잘 따르고 재무제표도 작성해주던 감사인이 그런 요구를 거절하니 당황했을 수 있다. 예외적인 경우겠지만, 감사인이 무리한 보수를 요구하거나 갑질을 한 것으로 보이는 사례, 전임과 신임 감사인 간에 맞는 회계처리가 무엇인지 다투다가 기업에 피해를 주는 사례도 수차례 발생했다.

일부에서는 잦은 감사인 교체와 일부 감사인의 능력 부족 때문에 역효과가 발생하므로 지정제를 폐지하자고 주장한다. 회계 인프라를 잘 갖춘 우수한 기업이 이런 주장을 한다면 이해가 되지만, 현실적으로 다수의 기업은 아직 회계 인프라와 감사 환경의 개선이 필요한 상황이다. 따라서 필자는 이 주장에 동의하지 못한다.

일부 문제점은 보완할 필요

어쨌든 그동안 드러난 문제점은 보완할 필요가 있다. 주기적 지정과는 별도로 직권 지정제가 실시되고 있어서 상장기업의 대략 50%가 지정 감사인으로부터 감사를 받고 있다. 즉 많은 수의 기업들에 대한 감사인이 지정되다 보니 시장기능이 지나치게 축소되는 문제가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모든 기업의 1회 지정이 이루어진 후에는 제도를 바꿔 자유선임 기간을 늘리거나 지정 기간을 줄여야 한다. 지정감사인 선정 때도 감사를 잘하는 감사인이 더 많은 기업을 맡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회계법인 입장에서도 감사 품질을 높이기 위해 교육훈련을 하고 내부통제나 품질관리 부서의 역할을 강화할 인센티브가 생긴다. 전문성이 부족한 감사인이 지정되는 문제점을 줄이려면 지정 시 해당 업종에서의 감사 경험도 고려해야 한다.

표준감사시간제도도 표준시간 추정 시 기업 규모에 대한 가중치는 줄이고, 감사위험이나 복잡성에 대한 가중치를 높임으로써 결과적으로 위험이 낮은 기업은 표준시간을 줄이는 등 보완 필요는 있다. 그러나 제도 자체는 반드시 유지해야 한다.

투명한 회계는 모두에게 윈-윈

제도의 개선 방안을 논의 중인 금융위원회가 이런 점들을 고려해, 기업 부담은 완화하지만 회계 투명성은 유지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기 바란다. 회계업계도 전임 및 신임 감사인이 자기 의견만이 옳다고 다투다가 기업에 피해를 주는 등의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공인회계사회나 회계기준원도 적극적으로 나서서 유권해석을 내리거나 갈등의 중재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장기적으로 회계 투명성이 향상되고, 정상적인 감사 관행이 정착하게 되면 주기적 지정제는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다. 대신 직권 지정제를 강화하기만 해도 효과는 충분할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처럼 갈등이 계속 발생한다면 제도가 정착되기도 전에 폐지하자는 목소리가 더 큰 힘을 얻을까 우려된다. 어느 한쪽만의 이익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회계 투명성 확보를 통해 기업 및 기업의 이해관계자들과 감사인 모두 윈-윈 하는 것이 제도의 목표임을 기억하기 바란다.

최종학 서울대 경영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