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기준금리 밑돌자 예금서 45조 증발…‘역 머니무브’ 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경제 02면

출판사 대표인 50대 박모씨는 이달 초 만기가 된 30억원어치 예금을 두고 고민에 빠졌다. 지난해에는 금리가 연 5%인 정기예금에 넣어두었는데, 다시 예금을 들려니 연 3.5% 수준으로 떨어져 있어 재예치를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은행 프라이빗뱅커(PB)의 상담을 받은 박씨는 정기예금에 넣어뒀던 돈 대부분을 빼서 채권·상장지수펀드(ETF)·주가지수 연동예금(ELD) 등에 투자하기로 했다.

박씨처럼 예·적금에서 투자 상품으로 돈을 옮기는 사람이 늘고 있다. 고위험 자산 투자에 들어가 있던 자금이 지난해 금리 상승기에 안전자산인 은행 예금으로 흘러 들어가는 ‘역(逆) 머니 무브’ 현상이 나타났다면, 올해부터는 다시 증시 등으로 빠져나가는 ‘머니 무브’가 일어나고 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14일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5대 주요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이 판매하는 주력 정기예금 상품의 최고 금리(우대금리 포함)는 연 3.35~3.62%(만기 12개월 기준) 수준이다. 이들 상품의 지난달 평균 금리는 연 3.95~4.84%였다. 한 달 새 0.6~1.22%포인트 하락했다. 실제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정기예금 상품이 연 5%대 금리에 판매되며 자금을 흡수했다. 이날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2년 12월 통화 및 유동성 통계를 보면 지난해 12월 금융기관의 정기 예·적금 잔액은 전월보다 31조6000억원 불었다. 직전 달인 11월에도 정기 예·적금은 역대 가장 큰 폭인 58조5000억원 늘었다.

올해 초 흐름은 지난해와 다르다. 금융 소비자는 은행에서 돈을 빼 들고 펀드·주식 등 자산시장을 찾아가고 있다.

한은의 최근 집계에 따르면 지난달 은행의 수신 잔액은 전월 대비 45조4000억원 감소했다. 특히 수시 입출식 예금이 59조5000억원 줄며 통계 작성 이래 최대 감소를 기록했다. 정기예금도 9000억원 줄었다.

반대로 지난달 자산운용사 수신 잔액은 전월 대비 51조4000억원 늘며 증가세로 돌아섰다. 단기 금융상품에 투자하는 머니마켓펀드(MMF) 잔액은 39조원 증가했다. 주식형·채권형 펀드도 각각 4조1000억원, 2조원 늘었다.

앞으로도 은행 예금금리의 추가 하락이 예상되는 상황이라 예·적금 상품의 투자 매력은 더 떨어질 전망이다. 게다가 정부에서 연일 “은행 고금리로 국민 고통이 크다” “은행의 금리 산정·운영이 보다 투명하고 합리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공개 지적도 은행에 압박이 되고 있다. 정치권이 대출금리 인상을 억제하니 예금금리도 낮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금융 소비자는 우선 빚부터 갚으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예금금리와 달리 대출금리는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은행 가계대출은 전월 대비 4조6000억원 줄며 관련 통계를 작성한 2004년 1월 이후 19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감소했다.

채권 투자에 대한 수요는 늘어나는 중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개인 투자자는 지난해 12월 1조7084억원의 채권을 순매수했는데, 올해 1월 순매수 규모는 3조176억원으로 증가했다.

김대수 신한PWM 여의도센터 PB팀장은 “지난해에는 정기예금만 해도 고민이 없었지만, 올해는 적극적인 투자로 돌아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은행채 5년물 등 채권 투자로 넘어가는 고객이 많다”고 설명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