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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 1187㎞ 걸으니 14㎏ 빠져…사람은 생각보다 약하지 않더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국내 개인 최초로 무보급 남극점에 도달한 김영미 대장. 사진 영원아웃도어

국내 개인 최초로 무보급 남극점에 도달한 김영미 대장. 사진 영원아웃도어

“대학 시절 산악부 동기의 목소리, 친구의 아이가 부른 노랫소리, 설악산 동굴 물소리를 녹음해 갔어요. 그 공간과 포근함을 남극으로 옮겨간 게 도움이 됐어요.”

한국인 최초로 혼자서 무보급으로 지구 가장 남쪽인 남위 90도 ‘남극점’에 도달한 김영미(42·노스페이스 애슬리트팀) 대장이 등반 기간 외로움을 극복한 방법이다.

김 대장은 지난해 11월 27일 허큘리스 인렛을 출발해 50일 11시간37분 걸려 올해 1월 16일 남극점에 도달했다. 영하 30도에 육박하는 강추위에도 100㎏ 넘는 장비를 실은 썰매를 끌고 1186.5㎞를 뚜벅뚜벅 걸었다. 장비와 식량 등 어떤 보급도 받지 않고 홀로 완주했다.

14일 서울 명동의 한 호텔에서 만난 김 대장은 “체중을 5㎏ 증량해 갔는데 매일 11시간씩 걸으니 14㎏이 빠졌다”며 “귀국해 평창 집에 갔는데 엄마가 내 손을 어루만지며 ‘건강하게 돌아와 고맙다’고 하셨다”고 말했다. 또 김 대장은 “얼굴이 하나도 안 타서 사람들이 ‘남극이 아니라 남산 다녀온 것 아니냐’고 하더라”며 웃었다.

지난달 16일 완주 당시 모습. 사진 김 대장 SNS

지난달 16일 완주 당시 모습. 사진 김 대장 SNS

2004~2008년 7대륙 최고봉을 한국 최연소(28세)로 완등했던 김 대장은 2004년 노르웨이 여성 2명이 연을 이용해 남극을 횡단한 내용의 책을 보고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원래 같이 가려던 친구가 결혼해 혼자 가게 됐다. 김 대장은 “몇 년간 외국 리포트를 보고, 박영석 대장팀 멤버에게 귀동냥했다”며 “히말라야는 수직 등반이고 남극은 수평 등반이라 걷기만 하면 됐다”고 담담히 말했다.

의식주 해결에 대해선 “옷은 갈아입을 일이 없어 고민이 없었고, 텐트에서 자는 건 대학 산악부 시절 20일 이상 동계 훈련한 경험이 도움됐다”고 했다. 그는 “먹는 건 하루 4500칼로리를 맞춰 연료 주입하듯 먹었는데, 마장동에서 돼지고기·소고기를 사와 즉석 국을 동결 건조해 싸가서 매일 똑같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곳에서 황도 캔이 간절하게 먹고 싶었다”며 “귀국해 먹으니 또 남극에서 상상했던 맛은 아니었다”고 웃었다.

국내 개인 최초로 무보급 남극점에 도달한 김영미 대장. 사진 영원아웃도어

국내 개인 최초로 무보급 남극점에 도달한 김영미 대장. 사진 영원아웃도어

가장 힘들었던 건 강풍과 근육통이었다. 김 대장은 “바람이 제일 무서웠다. 체감온도는 냉동실 온도인 영하 25~28도 정도였는데, 하루에 11시간 맞바람을 견뎌야 했다. 83~84도 부근에서 초속 12m 블리자드(눈보라)가 세차게 불었다. 온몸으로 느껴 보자며 텐트를 접었다가 다시 못 치고 방전됐다”며 “스틱으로 딱딱한 얼음을 찍으며 걸어야 했는데, 목디스크가 아닐까 걱정될 만큼 통증이 심했다”고 떠올렸다. 이어 “박영석 대장이 ‘세상에 지옥이 있다면 북극’이라고 하셨는데, 영화 웨이백 대사를 빌려 남극은 ‘감옥’이었다. 남쪽으로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은 사력을 다해 앞으로 나아가는 방법뿐이었다”고 덧붙였다.

김 대장은 “‘외롭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 서울이 더 외롭다. 남극은 외로움을 느낄 만한 틈을 안 줬다”고도 했다. 그는 다음 목표에 대해 “몸을 회복하고 비행기 표를 끊는다면 그곳이 아닐까”라고 답했다. 대중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묻자 김 대장은 이렇게 말했다. “저 자신도 할 수 있을지 없을지 의심한 시간이 많았는데, 사람은 생각보다 약하지 않더라고요. 일단 부딪쳐보고 겁내지 않고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는 그런 용기를 가졌으면 좋겠어요. 전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고 떳떳하게 등반한 산악인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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