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12시간 일하면 일년에 절반이 빨간날"…4조2교대 원하는 MZ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사진 셔터스톡

사진 셔터스톡

“12시간씩 3일간 일하고 3일 연속으로 쉬는데, 사실상 ‘주 3일 근무제’를 하는 느낌입니다. 일하는 날엔 업무에 집중하면서 푹 쉴 수 있는 시간도 늘었습니다. 무엇보다 출근 시간이 (3교대 때는) ‘새벽→낮→밤’으로 바뀌다가, ‘새벽→저녁’으로 한 번만 바뀌니 생체 리듬을 되찾은 것 같아요.”

LG디스플레이 파주공장에 근무하는 A(30대)씨는 14일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회사는 지난해 12월부터 2개 조가 12시간(주·야간)씩 일하고 나머지 2개 조는 쉬는 ‘4조2교대’ 체계로 근무 중이다. 이러면 사흘 연속 휴무를 갖는 게 특징이다. 그동안은 하루 8시간(새벽·낮·밤샘)씩 번갈아가며 일하던 ‘4조3교대’였다.

4조2교대는 하루 12시간씩 근무해 기존 4조3교대(8시간)보다 하루 근무시간이 4시간 늘어난다. 하지만 쉴 때 몰아서 쉬게 돼 총 근로시간은 같고, 휴무일이 연간 80여 일 늘어난다. LG디스플레이의 경우 휴무일이 103일(4조3교대)에서 190일로 늘었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더 일하려’ 도입된 4조2교대…이젠 ‘더 쉬고 싶어서’

주요 기업의 제조 현장에서 ‘4조2교대’ 바람이 불고 있다. MZ세대 직원들 사이에서 ‘바짝 일하고, 길게 쉬자’는 공감대가 확산하면서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 9일부터 울산콤플렉스(울산CLX)의 근무제도를 4조3교대에서 4조2교대로 전환했다. 2일간 일하고, 2일간 쉬는 시스템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연이틀 쉴 수 있고, 여가가 길어진다는 장점 때문에 젊은 직원들의 요구가 컸던 것으로 안다”며 “지난해 4조2교대를 시험 운영했고, 최근 노사 합의에 따라 전면시행하게 됐다”고 말했다.

앞서 포스코와 에쓰오일, SK실트론, GS칼텍스 등도 4조2교대를 시행 중이다. 현대제철은 올해 임·단협에서 4조2교대 도입을 합의했고, LG화학은 시험운영 시기를 검토하고 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교대근무 시간을 절약하고 안정적으로 생산라인 유지할 수 있는 게 장점”이라며 “생산성이 유지된다면 회사 입장에서도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4조2교대는 국내에선 유한킴벌리가 1998년 처음 도입했다. 외환위기 당시 감원 대신, 근무 체계를 바꾸고 남는 시간엔 교육을 통해 직원의 자기계발을 돕는다는 취지였다. 지금도 이 사례는 ‘Y-K 모델’로 불리며 성공적인 노사 상생 사례로 평가받는다. 20여 년 전 ‘더 일하기 위해’ 도입됐던 이 제도가, 최근엔 ‘더 놀기 위해서’ 확산하고 있는 셈이다.

“세대별 입장차…50대 이상은 78%가 반대”

다만 모든 직원이 4조2교대에 찬성하는 건 아니다. 그동안 이어져온 근무 시스템에 익숙한 고연차 직원들의 반발이 거세다는 전언이다. 한화솔루션 노동조합은 4조2교대 도입을 놓고 최근 설문조사를 했으나 반대 48%로 부결됐다.

김태열 한화솔루션 노조위원장은 “사내의 젊은 조합원 중심으로 근무제도 변경 요구가 있어 의견수렴을 한 것”이라며 “다만 조합원의 3분의 2 이상이 동의해야 사측과 협상할 계획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세대별로 입장차가 두드러진다. 이번 조사에서 50대 이상 조합원의 78%는 근무제도 변경에 반대했다”며 “장기간 검증된 근무체계를 바꾸는 것에 부담감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국토부 “안전사고 늘어났다” 코레일에 환원 명령도

또 다른 이슈도 있다. 가령 갑작스럽게 휴가를 낼 경우 대체근로자를 투입하는 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것이다. 한 대기업 노조 관계자는 “4조2교대에선 근무를 메워줄 예비 숙련 인력이 기존보다 더 많이 필요하다”며 “아직은 대부분의 회사가 인력이 충분치 않다”고 말했다.

실제로 안전사고가 잦아졌다는 지적도 있다. 코레일은 2020년부터 노사합의로 4조2교대를 시범 운영했지만, 국토교통부는 사고 빈도 증가를 이유로 지난달 3조2교대로 환원하거나 철도안전관리체계 승인을 받으라고 명령했다. 코레일 관계자는 “현재 철도안전관리체계 승인 절차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전문가 “장기간 영향 모니터링해야”

전문가들은 근로자들에 대한 장기간 영향을 모니터링하고, 근무체계에 반영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영면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 “젊은 세대는 장시간 노동이 어렵지 않아 4조2교대를 주장할 수 있다”며 “하지만 중장년층에겐 큰 변화이고, 신체적 무리가 따를 수도 있어 입장차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업종과 근무조건 등을 고려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여가나 학습에 대한 공감대 형성도 중요하다”며 “휴일에 투잡을 하거나 무질서하게 소비할 경우 본 업무에까지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사람이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한계가 있는데, 생산성이 하락하거나 사고가 늘어날 수도 있다”며 “먼저 근로시간을 단축하고 노동 유연화를 하는 방식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