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름이 다시 정치권에 오르내린다. 노 전 대통령을 소환한 쪽은 그가 뿌리를 둔 더불어민주당이 아닌 국민의힘이다. 친윤계 핵심인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은 13일 “당정 분리를 처음 도입한 분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었는데, 그 이후에 노 전 대통령도 ‘이 문제는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한다’고 얘기하지 않았느냐”며 당정 협력을 강조했다. 같은 날 친윤계 박수영 의원도 페이스북에 “노 전 대통령이 시작했다가 후회했던 소위 당정분리,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여당에서 노 전 대통령을 거론한 건 노 전 대통령의 2007년 발언 때문이다. 그해 6월 노 전 대통령은 한 행사에 참여해 “당정 분리를 재검토해야 한다. 당이 대통령 흔들어 놓고 대통령 박살 내 놓고, 책임 없는 정치가 돼버렸다”고 말했다. 재임 초반에 자신과 같은 뿌리였던 민주당 의원들에게 탄핵을 당했고, 재임 말기엔 자신이 창당을 주도한 열린우리당에서 대규모 의원 탈당사태가 벌어지자 일종의 회한 섞인 토로를 한 것이었다. 이와 관련해 친윤계 그룹에선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이 일체가 되어야 한다는 ‘당정일체론’까지 내세우고 있다.
여당이 정치적 주장을 강화하기 위해 야당 출신의 대통령까지 동원하는 건 이례적인 일이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여당 의원들이 노 전 대통령을 거리낌 없이 거론하는 건 윤 대통령 개인의 특징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주요 정치적 현안과 관련해 노 전 대통령을 처음 거론한 건 사실 여당이 아닌 대통령실이었다. 지난해 11월 민주노총 화물연대 파업에 대한 업무개시명령을 내린 대통령실은 “업무개시명령은 노무현 정부가 국민의 피해를 방지하고자 도입한 제도”라는 입장문을 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노 전 대통령이 업무개시명령을 도입했다는 건 윤 대통령이 참모진에게 먼저 언급했던 사안”이라고 전했다.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때도 주변에 ‘노무현 정신’이란 말을 자주 해왔다고 한다. 지난해 2월 제주 해군기지를 찾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고뇌에 찬 결단을 하셨다”며 눈물을 삼킨 건 유명한 일화다. 한 여당 초선 의원은 “대선을 뛰어 본 의원들은 윤 대통령이 노 전 대통령을 특별히 여긴다는 걸 알고 있다”며 “문재인 전 대통령이 비해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거부감은 크지 않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이 민주당 출신이라 야당의 공격을 방어하는 데 효과적인 방패가 된다는 분석도 있다. 엄경영 소장은 “여당이 노 전 대통령을 내세우면 야당 입장에선 다소 난처한 측면이 있다”며 “여당에서 노 전 대통령을 거론하는 또 다른 이유 아니겠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