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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석의 용과 천리마] 김정은은 왜 폼페이오에게 “주한 미군이 필요하다” 했나

중앙일보

입력

중국 공산당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주한 미군이 필요하다

중국인은 거짓말쟁이 

〈YONHAP PHOTO-1921〉 김정은 위원장-폼페이오 장관, 밝은 표정으로 악수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조선중앙통신은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을 접견했다고 10일 보도했다. 2018.5.10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No Redistribution]   photo@yna.co.kr/2018-05-10 06:20:21/ 〈저작권자 ⓒ 1980-2018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YONHAP PHOTO-1921〉 김정은 위원장-폼페이오 장관, 밝은 표정으로 악수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조선중앙통신은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을 접견했다고 10일 보도했다. 2018.5.10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No Redistribution] photo@yna.co.kr/2018-05-10 06:20:21/ 〈저작권자 ⓒ 1980-2018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8년 폼페이오 전 미국 국무장관에게 했다는 말이다. 김정은의 이 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그의 말은 북‧중 관계를 까보니 “겉으론 혈맹하면서 속으로 딴생각을 하고 있었네”라는 얘기가 아니다. 외교는 원래 겉과 속이 달라 김정은의 말에 많은 의미를 둘 필요가 없다.

손가락 끝을 보지 말고 가리키는 방향을 보라는 말이 있다. 김정은의 말은 새로운 내용이 아니다. 아버지 김정일도 이미 했던 말이다. 중요한 것은 그 말을 누구에게 했나 하는 점이다. 김정은은 미국 국무장관에게 그 말을 했다. 그의 손가락 끝이 가리킨 방향이 미국이었다.

중국의 귀에 들어가면 불편할 만한 말이다. 김정은이 그것을 몰랐을 리 없다. 그런데도 김정은은 폼페이오에게 속내를 솔직하게 털어놨다. 북한에서 그런 말을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 속뜻은 이것이다. 중국을 외면할 수 없지만, 미국과 손을 잡고 싶다는 것이다.

과거 김정일도 그랬다. 김정일이 2000년 남북정상회담에서 김대중 대통령에게 이렇게 얘기했다. 김정일은 “주한 미군이 계속 주둔하되 북한에 적대적인 군대가 아니라 평화유지군 같은 역할을 해 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것은 우리 인민들의 감정을 달래기 위한 것이니 이해해 달라”고 덧붙였다. 김정일의 속내는 북‧미 수교였다. 미국이 제기하는 핵‧미사일 문제는 북‧미 수교가 된다면 포기하겠다는 의미였다.

김정일과 마찬가지로 김정은도 주한 미군에 대해 같은 생각이다. 북한은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것이 이만저만 불편하지 않다. 북한의 군사 전력은 대부분 평양과 휴전선 인근에 집중돼 있다. 반면 북‧중 국경은 상대적으로 열악하다. 설마 그럴 리야 있겠냐고 북한이 생각하는지 몰라도 중국이 유사시 쳐들어오면 속수무책이다. 따라서 김정은은 배후를 항상 걱정할 수밖에 없다. 중국은 북한에 필요하지만 부담되는 나라다. 그래서 주한 미군이 필요하다고 한 것이다.

김정일-김정은의 말을 곱씹어보면 북한 최고지도자는 현실적이고 반미가 아니다. 체제의 정당성을 위해 반미를 외치지만 속마음은 다르다. 그것은 뿌리를 더듬어가면 알 수 있다. 김일성의 아버지(김형직)와 어머니(강반석)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어머니 강반석의 본명은 강신희였고, 반석은 세례명이다. 반석은 예수의 열두 제자 가운데 한 명인 베드로를 말한다.

북한은 이를 다르게 설명한다. 반석은 베드로를 의미하는 ‘반석(磐石)’이 아니라 ‘반석(磐錫)’이라는 것이다. 세례명이 아니라 이름 돌림자로 오빠 강진석(康晋錫)과 강용석(康用錫)을 따라 이름을 지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강신희 이름을 강반석(베드로)으로 바꿔준 사람이 미국인 선교사 넬슨 벨 목사였다. 이는 북한의 설명이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북한은 주민들에게 이름 돌림자로 설명하지만, 사실은 미국이 자신들의 속내를 이해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북한이 반미가 아니라는 것을.

김정은이 “중국인은 거짓말쟁이”라고 할 만한 사례는 많다. 그 한 사례를 들자면 김정일 시대의 신의주특별행정구다. 김정일은 2001년 1월 중국 상하이를 방문하고 천지개벽했다며 놀랐다. 귀국한 뒤 그 놀람을 이어 2002년 9월 신의주특별행정구를 발표했다.

중국처럼 ‘경제특구’가 아니라 ‘특별행정구’로 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경제특구’는 정치 분야를 그대로 두고 경제 분야만 특수한 경제구역으로 바꾸는 것이다. 따라서 ‘경제특구’는 모든 활동이 북한 헌법에 구속되고 독립적인 행정관리권이나 입법권‧사법권은 생각할 수 없다. 그 예로 북한은 나선경제무역지대에서 ‘경제특구’의 아픈 경험이 있다. 그래서 김정일은 새로운 시도를 하려고 했다. 정치와 경제의 모든 권한을 행정장관에게 주는 ‘특별행정구’였다. 김정일의 야심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관심을 모았던 초대 행정장관에 네덜란드 국적의 중국인 양빈을 임명됐다. 북한 사람을 임명하지 않은 것은 나선경제무역지대의 경험에 따른 것이다. 국제자본과 대기업의 투자 유치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정일은 양빈을 임명한 지 열흘 만에 낭패를 봤다. 중국이 양빈을 탈세 혐의로 체포했다. 신의주특별행정구는 바로 개점휴업 상태에 빠져 버렸다.

중국 정부와 양빈에 대한 김정일의 불만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김정일은 2002년 6월 신의주특별행정구 발표를 3개월 앞두고 중국에 3가지를 통보했다. 첫째, 평안북도 신의주에 특별행정구를 설치하는데 이해해 달라. 둘째, 양빈을 초대 행정장관으로 임명한다. 셋째, 중국 정부가 양빈의 기업과 자금 및 개인의 안정을 보장해 달라 등이다. 하지만 중국에서 돌아온 것은 양빈의 체포였다. 그리고 범죄자를 초대 행정장관으로 앉혔으니 김정일의 체면도 구겨질 대로 구겨졌다.

김정일은 양빈이 경찰에 체포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양형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을 중국으로 보냈다. 중국에 양빈을 잘 대해 줄 것을 희망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양빈은 2003년 9월 랴오닝 성 고급인민법원에서 18년형을 확정받았다.

신의주특별행정구가 발표될 당시 김정은은 스위스에서 유학을 마치고 귀국해 김일성군사종합대학에 다니고 있었다. 아버지 곁에서 아버지의 야심작이 무너지는 광경을 지켜봤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북‧중 관계의 현실을 확인했다. 그래서 폼페이오를 만났을 때 “중국인은 거짓말쟁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신의주특별행정구가 개점휴업 된 이후 북한은 제2차 북핵 위기를 맞았다. 2006년 제1차 핵실험을 감행하면서 유엔 대북 제재를 받게 됐다. 그 틈새로 중국의 기업들이 북한으로 들어왔다. 중국 상품이 북한의 장마당을 장악했고 광산개발권이 중국의 일부 기업으로 넘어갔다. 그래서 북한이 중국의 동북 4성이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게다가 천안함 폭침과 개성공단 철수로 남북관계마저 막혀 더 중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자연스럽게 북한 내부에서 ‘중국 위협론’이 대두했다. 김정은이 폼페이오에게 했던 말이 나온 배경이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폼페이오가 김정은의 속내를 더 이해하고 그를 더 이끌지 못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국내 사정이 있었지만 그를 더 설득하지 못한 것도 그렇다. 제2의 키신저나 브레진스키가 나오면서 냉전이 지구 상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절호의 기회를 잡을 수 있었는데. 신이 다시 그런 기회를 주려나.

고수석 국민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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