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딸 김주애를 권력의 상징인 열병식 주석단에 세웠다. 이를 놓고 4대 세습에 의한 ‘여성 권력’의 탄생 가능성까지 제기되는데, 과연 그럴까?
실제로 김정은은 이에 앞서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에게 대남ㆍ대미 사업을 총괄하는 역할을 맡겼고, 배우자 이설주는 ‘정상국가’의 퍼스트레이디를 흉내 내는 듯한 모습을 연출한다. 또 외교의 전면엔 최선희 외무상이, 주요 행사 현장에선 현송월 당 부부장이 주도적으로 상황을 지휘하는 모습도 자주 보였다.
하지만, 이렇게 겉으로 드러난 북한의 '여성 파워'는 착시인 것으로 뚜렷하게 나타났다. 오히려 북한에서 여성의 역할과 지위는 전근대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중앙일보가 13일 통일부가 발간한『북한 주요 인물정보 2022』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10월 기준으로 최근 5년간 북한의 보도나 공개자료 등을 통해 확인된 주요 인물(당 부부장ㆍ내각 부상ㆍ군 상장 이상) 323명(사망자 제외) 중 여성은 15명에 불과했다. 비율로는 4.6%다.
여기에 공식 직책에서 해임된 경우나 최근 활동이 확인되지 않는 인물을 제외하면 숫자는 9명으로 확 줄어든다.
이렇게 남은 북한 여성 권력의 면면은 김경희 전 노동당 비서(김정은 고모), 김성혜 당 통일전선부 실장, 김여정 당 선전선동부 부부장(김정은 여동생), 김정순 조선사회주의여성동맹 위원장, 이설주(김정은 부인), 이혜정 사회과학원장, 박금희 평양교원대학 총장, 최선희 외무상(최영림 전 총리 수양딸), 현송월 당 부부장 등이다.
그나마 남은 9명 중 최소 4명 이상이 김정은의 일가이거나 북한의 핵심 '로열패밀리' 출신이다.
북한의 엘리트 여성들이 부각됐던 계기는 김정은이 북미ㆍ남북 정상회담에 나섰던 2018~2019년 무렵이다. 당시 김여정, 이설주, 현송월, 최선희 등 소위 '하노이 여성 4인방'의 일거수일투족이 국내외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북한 사회에서 여성의 영향력이 작지 않을 것이란 인식이 확산했다.
그러나 중앙일보 전수조사에 따르면 이러한 인식은 당시 극소수에 불과한 북한의 여성 엘리트들이 공교롭게 한꺼번에 세계 언론에 노출되면서 나타난 왜곡의 영향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북한 주요 인물정보에서 다룬 여성 9명에 지난해 11월 공개활동을 시작한 김주애까지 포함해도 북한 사회의 주류로 분류할 수 있는 여성은 10명에 불과하다. 북한 관영 매체에 비친 여성 엘리트의 활약상은 북한 당국이 꾸민 '착시현상'이었단 얘기다.
앞서 통일연구원도 2018년에 발간한 『김정은 정권 핵심집단 구성과 권력 동학』이란 제목의 연구총서에서 "북한은 남성중심의 지배질서 설파하는 유교 문화가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에 여성이 개인의 능력을 펼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지 않았다"며 "핵심집단은 여성의 진입장벽이 높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익명을 원한 국책연구기관 연구위원은 "일부 고위 탈북자들과 인터뷰를 진행해보면 '김정일 없는 김경희', '김정은 없는 김여정'의 위상에 대해 의문을 표시하는 경우가 많다"며 "북한이 열병식에 김정은의 딸인 김주애를 내보내면서 그가 후계자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지만, 북한이 정말 나이 어린 여성 지도자를 수용할 수 있는 환경인지에 대해선 냉정하게 짚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