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드라마 ‘사랑의 이해’가 지난주 막을 내렸다. 네 청춘 남녀가 서로를 사랑하지만, 삶의 무게와 현실의 벽 앞에서 엇갈리고 상처 받고, 그러면서 사랑을 이해(理解)해가는 과정을 세심하게 그려냈다는 평가다.
이들의 사랑을 가로막은 큰 요인이 계급 차로 인한 이해(利害)관계라는 점에서 드라마 제목은 중의적이다. 계급 관계가 선명한 은행 창구에서 주인공들은 각자의 처지로 갑을 관계에 갇히며 힘든 사랑을 시작한다.
고졸 텔러 안수영(문가영)은 자신을 좋아하지만, 진지한 교제 앞에서 망설이는 강남 8학군 명문대 출신 은행원 하상수(유연석)를 마음 속에서 밀어내고, ‘어울리는’ 상대인 청원경찰 정종현(정가람)과 연애를 시작한다. 같은 지점의 금수저 대학 후배 박미경(금새록)은 상수에게 구애를 하고 사내 커플이 된다.
현실적 연애 그린 드라마의 여운
영화 ‘기생충’의 멜로버전 평가도
양극화 사회서 사랑은 무엇일까
하지만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상수는 명품 재킷·외제차 등 미경의 선물 공세에 상대적 결핍을 느끼고, 더는 가까워지지 못한다. 서열은 수영-종현 커플에게도 갈등 요인이 된다. 수영이 아낌없이 퍼주는 사랑을 할수록 가난한 종현의 마음엔 빚만 쌓여간다.
이처럼 관계가 엇갈린 건, 애초에 상수가 사랑 앞에서 망설이고, 수영이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깟 사랑인데, 사랑만 하면 되는 건데, 세상은 이들의 마음이 서로 와 닿는 걸 좀처럼 허락하지 않는다. 보는 이는 마음만 갑갑해질 뿐이다.
“조선시대의 계급은 신분이 정했고, 2022년 대한민국의 계급은 돈이 정한다. 은행을 찾는 사람들에게도, 은행에서 일하는 우리들에게도 계급이 있다. 그리고 나와 그녀의 사이에도”라는 상수의 내레이션을 비롯해, 주인공들에게 내면화한 계급의식을 드러내는 대사도 많다.
“누구에게는 아무렇지 않은 게 우리에게는 절실한 게 화가 나요.”(수영), “선배, 우린 비슷하잖아.”(미경), “우리는 다르잖아요. 우리에 대해 쉽게 이야기하는 것 싫어서 그래요.”(종현)
드라마는 사랑이란 감정만으로 현실을 극복하는 건 쉽지 않다, 사랑에도 계급이 있다는 우리 사회의 ‘불편한’ 민낯을 그려낸다. ‘과연 사랑만으로 사랑이 될까?’라는 동명 소설의 문제의식을 이어받았다.
그래서일까. 정덕현 평론가는 이 드라마를 영화 ‘기생충’의 멜로 버전이라 평했다. ‘계급의 이해’ ‘사랑의 계급’이란 제목이 더 어울린다는 시청자 댓글도 많다. 드라마는 열린 결말로 끝났지만, 사랑에 끼어드는 돈과 신분의 문제를 정면에서 다룬 작품이라는 점에서 여운이 길다.
“김중배의 다이아몬드 반지가 그렇게도 좋더냐?”라는 명대사의 신파극 ‘이수일과 심순애’부터, 최근 재개봉한 영화 ‘타이타닉’ 등 계급이 사랑을 가로막는 서사는 차고 넘친다. 계급을 뛰어넘어 기어이 이뤄내고야 마는 사랑은 고귀하고 아름답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아니, 점점 그 반대로 가고 있다. 사랑 앞에서 조건을 따지면 속물이라 손가락질받는 건 옛날이야기다.
사랑도 돈으로 재단되는 이 시대, 은행만 고객을 재산으로 분류하는 게 아니다. 결혼정보회사는 더 촘촘하게 회원들을 계급화한다. 직장과 학력, 나이, 외모, 연봉에 더해 부모 직업과 재산까지 꼼꼼히 따진다. 결혼은 어찌 보면 사랑의 결실이 아닌, 조건의 결합이기 때문이다. 이런 매칭 시스템은 계급 구조를 더욱 견고하게 만든다.
가팔라지는 양극화 속에서 ‘적어도 지금 지위는 지켜야 한다’는 절박함 때문에 예비 배우자의 직업·소득·학력·집안 등을 따지는 ‘동질혼’이 이 시대의 트렌드가 됐다. 어릴 때 부모로부터 “임대 아파트, 빌라 사는 애들과는 친구 하지 말라”는 말을 듣고 자란 청년들의 머릿속엔 이미 차별과 등급이 내면화돼 있다. 끼리끼리 사귀고 결혼하려 한다.
드라마 속 안수영의 소개팅 장면은 그러한 현실을 반영한다. 안수영이 대기업 남자와의 소개팅 자리에서 자신이 고졸이란 걸 밝히자, 남자는 실망감을 감추지 못한다. 드라마에 나오진 않지만, 남자는 주선자에게 “왜 급이 안 맞는 여자를 소개해 줬냐”며 불쑥 화를 냈을 법하다.
“사람들은 물건 하나 사도 재고 따지고 후기까지 따져보면서, 사랑이란 감정에만 무진장 결벽을 떤다. 속으론 온갖 계산 다 하면서 아닌 척”이라는 상수 친구 소경필(문태유)의 대사가 가슴에 아프게 박힌다. 사랑만으로 사랑할 수 없는 세상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돌고 돌아 다시 만난 상수와 수영이 사랑의 이해(利害)를 뛰어넘어 사랑의 열매를 맺길 바란다. 드라마에서만이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