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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만명 중 180명만 웃는다…생존율 0.012%의 세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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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영국남자 짐 불리의 EPL 

영국 전체 축구클럽에서 활동 중인 150만 명의 유·청소년 선수 중 프리미어리그 무대를 밟는 선수는 연간 180명 안팎으로, 생존율이 0.012%에 불과하다. 본머스 소속으로 프리미어리그를 경험한 수비수 캘럼 버클리처럼 꿈을 이뤄도 오래 버티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진 캘럼 버클리 SNS]

영국 전체 축구클럽에서 활동 중인 150만 명의 유·청소년 선수 중 프리미어리그 무대를 밟는 선수는 연간 180명 안팎으로, 생존율이 0.012%에 불과하다. 본머스 소속으로 프리미어리그를 경험한 수비수 캘럼 버클리처럼 꿈을 이뤄도 오래 버티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진 캘럼 버클리 SNS]

캘럼 버클리(27)는 축구 유망주였다. 5세 때부터 동네 축구팀 소속으로 영국 주말리그에 출전했던 버클리의 포지션은 중앙 수비수. 윈체스터 시티 유스 아카데미 소속이었던 그는 AFC 본머스의 18세 이하 팀과의 친선경기에서 후반에 교체로 들어가 골을 넣었다. 그의 재능을 눈여겨본 프리미어리그 본머스 구단이 경기 후 입단 테스트를 제안했다.

버클리는 2년간 장학금을 받는 조건으로 본머스 산하 유스 아카데미에 합류했다. 16세 이하 팀에서 시작했고, 이후 18세 이하 팀으로 옮겼다. 유스팀의 체계적인 지도를 받으며 프리미어리거의 꿈을 키웠다. 버클리는 “첫해엔 정말 재미있었다”고 당시 추억을 떠올렸다. 그러나 “2년 차에 접어들며 상황이 달라졌다. 동료 선수들이 하루아침에 라이벌로 돌변했고, 모두가 프로 계약을 따내기 위해 무한경쟁했다”고 털어놨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버클리는 17세에 프로 계약을 맺으며 본머스 1군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1년 후 본머스는 챔피언십(잉글랜드 2부리그)에서 프리미어리그로 승격했다. 버클리는 “이후 1년 단위로 계약을 연장하는 상황이 반복됐다. 내가 팀에 꼭 필요한 선수라는 걸 매 순간 증명해야 했다”고 했다.

버클리는 프로 선수로 3년 남짓 버티다 끝내 방출됐다. 그는 본머스 유니폼을 입고 단 한 차례도 프리미어리그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EFL컵 경기에 몇 차례 벤치를 지킨 것이 전부다. 프리미어리그를 떠난 그는 현재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의 애널리스트로 활동하는 틈틈이 세미프로팀의 선수로 뛰고 있다.

“놀랍겠지만 나 정도면 운이 좋은 축에 속한다”는 게 버클리의 고백이다. 그는 “본머스의 유스 아카데미에서 프리미어리거를 꿈꾸던 시절, 함께 공을 찬 동료 중 지금도 프로 무대에서 활약 중인 선수는 단 두 명뿐”이라고 했다.

잉글랜드대표팀과 토트넘의 간판 공격수로 활약하는 해리 케인은 클럽 산하 유스 출신으로는 보기 드문 성공 사례다. [AFP=연합뉴스]

잉글랜드대표팀과 토트넘의 간판 공격수로 활약하는 해리 케인은 클럽 산하 유스 출신으로는 보기 드문 성공 사례다. [AFP=연합뉴스]

축구 매체 골닷컴의 연구에 따르면 프리미어리그 산하 유스 아카데미에 참여하는 선수를 200명으로 가정할 때 프리미어리그 무대에 진출하는 선수는 한 명 남짓(0.5%)이라고 한다. 영국 공영방송 BBC의 조사에 따르면 영국 전체 축구 클럽에서 활동 중인 150만 명의 유·청소년 선수 중 프리미어리그 무대를 밟는 선수는 연간 180명 안팎으로, 생존율이 0.012%에 불과하다. BBC는 이를 ‘불가능한 꿈’으로 표현했다.

프리미어리그 구단의 올 시즌 선수 명단을 들여다보면 유스 아카데미 시스템의 냉엄한 현실이 피부에 와 닿는다. 클럽 산하 유스 출신으로 1군 스쿼드에 진출한 선수 중 성공 사례로 거론할 만한 케이스는 잉글랜드대표팀에도 뽑힌 해리 케인(30·토트넘), 마커스 래시퍼드(26·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부카요 사카(22·아스널) 정도다. 토트넘의 경우 1군 선수단 전체를 통틀어 산하 유스 아카데미 출신은 다섯 명뿐이다. 그 중 프리미어리그 경기에 출전한 경험이 있는 선수는 케인과 올리버 스킵(23), 자펫 탕강가(24) 세 명에 불과하다.

프리미어리그 유스 아카데미에서 성장 중인 선수들. [프리미어리그 홈페이지 캡처]

프리미어리그 유스 아카데미에서 성장 중인 선수들. [프리미어리그 홈페이지 캡처]

200명의 구단 유스 아카데미 소속 선수 중 단 한 명을 제외하고 프로 무대에 진출하지 못하는, 나머지 199명에게 이런 현실은 충격적이다. 잉글랜드프로축구선수협회(PFA)나 잉글랜드축구협회(FA)가 이 시스템에서 탈락한 선수들을 도울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아카데미 시스템을 거치지 않은 선수들은 하부 리그에서 기량을 갈고닦거나, 또는 1군 선수단의 테스트를 통과해 프리미어리그에 진출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방법은 통상적으로 수년간의 기간이 필요하다.

프리미어리그에 진출하는 또 다른 방법은 손흥민(31·토트넘)이나 황희찬(27·울버햄프턴)처럼 해외 무대에서 건너오는 것이다. 그들은 기량을 제대로 갖춘 이후에 프리미어리그에 합류했다. 영국의 구단 유스 시스템에 합류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해외 무대에서 기량을 갈고 닦은 뒤 프리미어리그 구단 스카우트의 눈길을 사로잡는 방식을 활용했다.

이러한 방식을 거쳐 프리미어리거로 탄생할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 손흥민은 100만 분의 1 정도의 확률을 뚫어내고 스타 반열에 오른 케이스로 봐야 한다. 하지만 상황은 변하게 마련이다. 이전에 비해 한국 선수들에 대한 프리미어리그 구단의 관심이 눈에 띄게 커졌다. 현재 김민재(27·나폴리), 이강인(22·마요르카), 조규성(25·전북), 오현규(22·셀틱) 등이 EPL 구단의 주목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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