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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보사 유동성 리스크 노란불...올해 만기 돌아오는 저축성보험만 13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60대 남성 A씨는 2013년 2월 한 생명보험사의 저축성보험인 일시납 즉시연금보험에 가입해 5억원을 맡겼다. 즉시연금은 보험료를 한 번에 내는 대신 만기까지 원금을 보장해주고, 다음 달부터 이자를 연금형태로 수령하는 상품이다. A씨는 당시 10년 만기 상품에 가입했는데 공시이율이 연 4.6%일 때는 월 150만원을 수령할 수 있었다. 비과세 혜택까지 감안하면 더 많은 수익을 거둔 셈이다. 하지만 10년 만기를 앞둔 현재 공시이율은 연 3% 초반으로 떨어졌다. A씨는 “향후 기준금리 인상 여부에 따라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시중은행이나 저축은행으로 자금을 이동할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급격하게 인상하면서 생명보헙업계의 유동성에 노란불이 커졌다. 지난해 말부터 저축성보험 해약 등이 잇따르면서 중소형 생보사들을 중심으로 현금 곳간이 비기 시작한 것이다. 13일 금융감독원이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유의동 국민의힘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22개 주요 생보사의 저축성보험(이하 퇴직연금ㆍ연금저축 제외) 환급금은 53조3916억원에 달했다. 전년 대비 약 17조원(46.5%) 급증한 규모다. 환급금과 보험금, 배당금 등을 모두 더한 지급 규모는 60조원에 이를 거란 관측이 나온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만기를 채워 환금해준 금액은 14조2186억원이었는데 중도에 해지한 금액도 39조1730억원이나 됐다. 생계형 중도해지도 물론 있겠지만, 원금손실을 감수하면서까지 더 높은 이자를 주는 은행으로 옮긴 돈이 적잖았다는 의미다. 지난해 11월까지만 해도 은행권 정기예금 금리 수준은 연 5%대에 달했다.

문제는 올해도 상황이 녹록지 않다는 점이다. 22개 생보사가 판매했던 저축성보험 중 올해 만기가 도래한 보험금은 총 12조8359억원으로 추산됐다. 업계 1위인 삼성생명이 3조2793억원으로 가장 규모가 컸고, 이어 농협생명(1조9812억원), 한화생명(1조9392억원), 동양생명(1조5670억원), 교보생명(9592억원), 흥국생명(6473억원) 순이었다. 여기에 중도 해지 가능성까지 고려하면 생보사가 부담해야 할 환급금은 더 늘어날 수 있다.

한 생보업계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수신 경쟁 자제를 권고하면서 은행으로의 ‘머니무브’가 좀 잦아들었지만, 우려를 불식시킬 정도는 아닌 것 같다”며 “각 보험사에서 고금리 저축보험을 판매하거나 채권을 내다 파는 방식으로 현금 곳간을 채우면서 일단 급한 불을 껐는데, 당분간은 상황을 예의주시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보험사들은 고객들이 낸 보험료를 주식, 채권, 부동산 등에 투자해 수익을 내기 때문에 자산가치가 오르는 시기에는 환급금 규모가 커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최근처럼 자산가치가 떨어지는 시기엔 부담이 될 수 있다. 현재 유동성에 경고등이 커진 것도 지난해 기준금리가 급격히 치솟으면서 보험사가 보유 중인 채권 가격은 내려가고, 주가와 집값 또한 떨어진 영향이 크다.

그러자 지난해 1~3분기 일부 보험사는 5%를 상회하는 고금리 확정형 저축성 상품을 출시하는 등 긴급 자금조달에 나섰다. 생명보험협회에 따르면 저축성보험으로 불리는 생사혼합보험의 지난해 1~11월 초회보험료(최초 납입 보험료)는 13조5969억원으로 전년 동기(3조6492억원) 대비 272.6% 불어났다. “고금리 막차 상품”이라는 식의 '절판 마케팅'도 횡행했다. 하지만 이런 식의 ‘급한 불 끄기’는 5년ㆍ10년 후 또 다른 유동성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석호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난해 레고랜드발 채권시장 경색에 이어 고금리ㆍ고물가ㆍ저성장 기조가 유지되면서 생보업계가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안 좋은 일들이 동시에 닥친 거라지만 향후 이런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선 저축성보험 비중을 줄이고 온라인판매 플랫폼을 활성화하는 등 돌파구를 찾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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