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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정일체론’ 띄우는 친윤계…학계 “제왕적 총재 우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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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당권주자인 김기현(왼쪽), 안철수 의원. 연합뉴스

국민의힘 당권주자인 김기현(왼쪽), 안철수 의원. 연합뉴스

국민의힘 3·8 전당대회 레이스 초반 친윤계가 ‘당정일체론’을 띄우고 있다.

친윤계 핵심 장제원 의원은 13일 국회 본회의장 앞에서 기자들과 만나 “당정이 하나가 되지 못하고 계속 충돌했을 때 정권에 얼마나 큰 부담이 됐는지 우리 정당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며 “당정 분리를 처음 도입한 분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었는데, 그 이후에 노 전 대통령도 ‘이 문제는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한다’고 얘기하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을 나서는 도중 취재진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뉴스1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을 나서는 도중 취재진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뉴스1

이어 “이명박 정부도 박근혜 전 대표가 주도하던 한나라당(현 국민의힘)과 세종시 행정수도 이슈를 둘러싸고 얼마나 많은 충돌이 있었느냐”며 “당정이 하나가 되어서 같은 목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노 전 대통령은 2002년 대통령에 당선된 뒤 “대통령이 당을 장악해 의회를 지배하는 것은 유신 잔재”라며 당정 분리를 선언했다. 그간 대통령이 행사하던 공천권을 더는 휘두르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임기 말인 2007년 여당이던 열린우리당(현 더불어민주당)은 계파 난립 끝에 내분을 일으켰고, 정동영 전 의원 등 대선 주자는 연일 노 전 대통령을 비판했다. 그러자 노 전 대통령은 “당정 분리는 재검토해봐야 한다. 책임없는 정치가 되어버렸다”고 했다.

2009년 2월 이명박 대통령이 한나라당 최고위원 및 중진 의원을 청와대로 초청한 가운데 박근혜 전 대표와 어색한 표정을 짓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2009년 2월 이명박 대통령이 한나라당 최고위원 및 중진 의원을 청와대로 초청한 가운데 박근혜 전 대표와 어색한 표정을 짓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0년에는 이 전 대통령이 세종시 행정수도 이전 원안 대신 서울대·대기업을 우선 이전하는 수정안을 추진했다. 그러자 대선 주자였던 당시 박근혜 전 대표가 “원안대로 정부부처를 이전하라”며 국회에서 반대 연설까지 해 이를 무산시켰다. 이후 이 전 대통령은 정권 내내 박 전 대통령을 의식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과거 정부에서 여당과의 불협화음으로 대통령이 흔들린 사례를 열거하며 “당정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게 친윤계 논리다. 친윤계 당권주자인 김기현 의원도 이날 제주 한 호텔에서 열린 합동연설회에서 “대통령과 자꾸 어긋난 길로 가고 당정 분리라고 하며 당 지도부가 대통령을 견제해야 한다고 하면 왜 여당을 하느냐. 야당을 해야 한다”며 “우리는 대통령과 공조하고 협력해야 하는 부부관계이지 떼어놓고 사는 별거하는 관계가 아니다”고 말했다.

친윤계는 “여당의 정당 개혁 중 필요한 것이 당정 융합”(조수진 최고위원 후보), “당정 분리에 대해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박수영 의원)고 호응했다.

2006년 1월 노무현 대통령(왼쪽)이 청와대에서 열린 열린우리당 지도부 초청 만찬에 앞서 정동영 상임고문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2006년 1월 노무현 대통령(왼쪽)이 청와대에서 열린 열린우리당 지도부 초청 만찬에 앞서 정동영 상임고문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친윤계의 당정일체론은 당권주자인 안철수 의원 압박용 카드라는 해석이 나온다. 국민의당 출신이자 지난 대선에서 윤 대통령과 경쟁했던 안 의원이 대표가 되면 당정 사이가 벌어질 수 있다는 논리다. 안 의원과 경쟁 중인 김기현 의원 측 인사는 이날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윤 대통령의 성공을 바라는 당원들은 대선주자급인 안 의원이 대표가 되면 대통령과 결이 다른 목소리를 낼 것이라고 우려한다”고 말했다.

나아가 나경원 전 대표의 불출마 국면부터 논란이 된 윤 대통령의 당무 개입을 정당화하는 측면도 있다. 장 의원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미국은 대통령이 특정 대표 후보를 지지하고, 프랑스는 대통령이 명예당수로 활동한다”(장제원 의원)며 해외사례를 열거했다. 친윤계 의원은 “여소야대 상황에서 윤 대통령이 국정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고 차기 총선에서 승리하려면 일정 정도의 당무 개입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 후보(오른쪽)와 나경원 전 원내대표가 7일 오후 서울 중구 달개비 앞에서 전당대회 관련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1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 후보(오른쪽)와 나경원 전 원내대표가 7일 오후 서울 중구 달개비 앞에서 전당대회 관련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1

반론도 적지 않다. 국민의힘 당헌 7조에는 대통령의 당직 겸임을 금지하는 등 당정분리 원칙이 명기돼 있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정치외교학)는 “당정일체론은 대통령이 당보다 우위에 서라는 것이 아니라 공통된 목표를 위해 서로 적절한 견제와 협력을 해야 한다는 의미”라며 “의미를 잘못 해석해 대통령이 ‘제왕적 총재’ 같은 역할을 한다면 역풍이 불 수 있다”고 했다.

조진만 덕성여대 교수(정치외교학)도 “노 전 대통령은 정권 초 정치개혁 차원에서 당정 분리를 주장하다가 현실적인 어려움 탓에 정권 말에 이를 접었다”며 “정권 초부터 당정일체를 강조하는 것은 당내 반발을 살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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